내전에 코끼리 진화? 상아 없이 태어나는 암컷 늘었다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2021. 10. 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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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샷] 모잠비크서 전비 벌러 밀렵 성행하자 상아 없는 암컷들 늘어
모잠비크 고롱고사 국립공원의 코끼리 암컷들이 내전 당시 성행한 밀렵으로 상아 없는 형태로 진화한 것으로 드러났다./JOYCE POOLE/ELEPHANTVOICES

아프리카에서 내전(內戰)이 이빨 없는 코끼리를 진화시켰다. 상아(象牙)를 찾는 밀렵이 성행하자 엄니가 빠진 코끼리가 생존에 유리해졌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인간이 유발한 급작스런 변화는 코끼리의 보존은 물론 전체 생태계에도 해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 프린스턴대의 세인 캠벨-스태튼 교수 연구진은 21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모잠비크에서 상아를 얻기 위한 밀렵이 성행하자 아프리카 코끼리 암컷들이 엄니 없는 형태로 진화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내전 속 상아 없는 암컷 2배 가까이 늘어

1970~1990년대 모잠비크 내전 동안 전쟁 경비를 조달하기 위해 상아 무역이 성행했다. 상아를 얻기 위한 밀렵으로 모잠비크 고롱고사 국립공원의 코끼리 개체수는 2500여 마리에서 2000년대 초반 200여 마리로 급감했다. 그 사이 상아가 없는 코끼리가 늘어났다.

내전 이전에는 자연 상태에서 상아 없이 태어난 암컷은 18.5%를 차지했다. 상아가 없는 코끼리는 밀렵꾼이 외면했다. 그러자 내전 이후 암컷 91마리가 상아 없이 태어나 전체에서 33%를 차지했다. 캠벨-스태튼 교수는 “수학 모델로 분석한 결과 상아를 가진 코끼리만 골라 죽이는 밀렵이 결국 상아 없는 코끼리를 자연선택하는 압력으로 작용한 결과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앞서 다른 야생동물에서도 인간의 사냥이 급격한 변화를 가져온 사례가 있다. 2009년에는 캐나다 앨버타주에 사는 큰뿔야생양이 사냥으로 인해 뿔 크기가 20년 동안 20%나 줄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스리랑카에 사는 아시아 코끼리 수컷 중 상아를 유지하는 비율은 5%가 채 되지 않는다.

연구진은 이번에 상아 없는 코끼리를 진화시킨 유전자 변화는 정확하게 규명하지 못했다. 다만 상아 없는 코끼리가 유독 암컷에서만 나타났다는 점에서 X 성염색체에 있는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겼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암컷은 XX 성염색체를 갖고 수컷은 XY 성염색체를 가진다.

연구진은 X 성염색체 한쪽에 돌연변이가 생겨 상아가 사라졌다고 추정했다. 이 경우 암컷은 다른 쪽 X 성염색체는 정상이어서 생존에는 문제가 없지만, 수컷은 X 성염색체가 하나밖에 없어 치명적이라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즉 돌연변이로 암컷은 상아를 잃지만 수컷은 아예 태어나지도 못해 상아 없는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프린스턴대 연구진은 X염색체에 있는 AMELX와 MEP1a라는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일어났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두 유전자는 사람에서 코끼리의 엄니에 해당하는 앞니 발달과 관련이 있다. 태아에서 해당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임신 후반기에 유산된다.

상아 없는 암컷을 유발한 유전자 돌연변이. X성염색체에 있는 AMELX와 MEP1a 유전자는 코끼리 엄니의 각 부분 발달에 관여하는데 이곳에 돌연변이가 생겨 상아 없는 코끼리 암컷이 진화한 것으로 추정됐다./Science

◇코끼리와 관련된 다른 동물도 영향

상아 없는 코끼리는 겉모습만 바꾼 게 아니다. 돌연변이 유전자를 가진 수컷은 태아 상태에서 죽어 결과적으로 코끼리 개체수를 감소시킨다. 코끼리는 엄니로 나무껍질을 벗겨 먹고 땅을 파서 물을 찾는다. 엄니가 없는 코끼리는 밀렵꾼을 피할 수는 있지만 다른 면에서 살아남기가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연구진은 코끼리 배설물을 분석했더니 상아 없는 코끼리는 다른 코끼리와 다른 식물을 먹는다는 것을 알아냈다.

코끼리에 간접적으로 의존하는 다른 동물들도 상아가 사라진 진화로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이를 테면 코끼리가 물구덩이를 파지 못하면 다른 동물도 물을 구하기 힘들 수 있다. 결국 코끼리의 급격한 변화는 전체 생태계 먹이사슬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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