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칼럼]공화당은 반기업 정당

김상용 기자 2021. 10. 22.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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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바이든정부 백신 의무접종 계획에
대기업들 지지에도 공화당은 훼방
민주당 정책 실패 끌어내기 위해
인프라 투자 등 번번이 기업과 대립
[서울경제]

대기업들은 직원들의 코로나19 백신 의무 접종을 압도적으로 지지한다. 최근 대기업 최고재무책임자(CFO)들을 대상으로 CNBC가 실시한 서베이에 따르면 100명 이상의 종업원을 거느린 업체인 경우 임직원 전원에게 백신 접종 혹은 진단 검사를 받도록 의무화한 조 바이든 행정부의 계획에 전체 응답자의 80%가 ‘완전히 동의’했다. 또 이미 상당수 업체들이 직원들에게 회사의 이 같은 방침을 전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그레그 애벗 텍사스주지사는 의무적 백신 접종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다시 말해 단순한 백신 접종 권장에 자신의 권한을 사용하기를 거부한 게 아니라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민간 기업이 자사 종업원 혹은 고객들에게 백신 접종을 요구하지 못하도록 훼방을 놓은 셈이다.

뒤이어 지난 일요일 테드 크루즈 공화당 상원의원은 댈러스에 기반을 둔 사우스웨스트항공사의 연이은 결항이 사측의 백신 접종 의무화 결정에 반발한 종업원들의 집단 직장 이탈에 따른 것이라는 근거 없는 소문을 요란스레 떠벌렸다. 항공사 경영진과 노조가 한목소리로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 당초 노예제 반대에 기반을 뒀던 공화당은 도금 시대 이래 대기업과 긴밀히 연합했다. 연합이라기보다는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는 기업들에 사실상 사로잡혔다고 보는 것이 무방하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공화당이 누진과세와 노조 활성화 같은 정책 아이디어를 상당 부분 수용하면서 대기업과의 연합이 다소 느슨해졌지만 로널드 레이건이 감세와 규제 해제라는 어젠다로 인기몰이를 하면서 이전의 밀월 관계가 완전히 복원됐다.

사실 대기업의 이익을 앞세우고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사회적 이슈를 최대한 활용해가면서 인종적 적대감에 호소하다 매번 선거가 끝나기 무섭게 친기업 어젠다로 돌아서는 정당으로 공화당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 전의 일이 아니다. 바로 이것이 2004년에 나온 토머스 프랭크의 저서 ‘캔자스에서 일어난 일’의 핵심 주제였다. 또 트럼피즘이 기세를 얻기 전까지 공화당이 채택한 정책 모델이었다. 그러나 이제 공화당 정치인들은 결정적 이슈에 대해 주저 없이 기업들과 대립각을 세운다. 둘 사이의 엇박자는 단지 백신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방대한 인프라 투자를 지지하는 대기업들은 민주당의 정책이 성공하는 것을 원치 않는 공화당의 반대편에 서 있는 셈이 되고 말았다.

기본적으로 공화당은 민주당과 현 행정부의 실패를 끌어내기 위해 본격적인 방해 공작을 벌이고 있다. 공화당 지도자들은 미국이 엉망으로 망가지는 광경을 보고 싶어한다. 그래야 그들에게 정치적 반사이익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설사 오랜 우군인 기업이 해를 입는다 해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분명히 말하건대 대기업은 절대 선량한 친구가 아니다. 그들이 백신 접종 의무화와 기반 투자를 지지하는 것은 그것이 기업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적극적인 기후변화 대응책을 비롯한 바이든의 나머지 다른 어젠다에 끈질기게 반대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더 많은 세금을 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화당과 대기업 간의 충돌은 미국 정치의 새로운 반전 포인트다. 아마도 지금쯤 대기업 총수들은 마음속으로 ‘우리가 대체 무슨 일을 저지른 걸까’ 반문하고 있을지 모른다. 사실 공화당은 이미 오래전부터 급진성이 크게 늘어난 데 비해 합리성은 대폭 줄어들었다. 지금 공화당은 뉴트 깅그리치가 하원의장이었던 1990년대 혹은 그 전에 시작된 이 같은 변천 과정의 정점에 서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기업들은 계속 공화당을 지지했다. 사실 미국상공회의소 같은 유수한 재계 기구들은 과격해지는 공화당과의 동반자 관계를 한층 더 발전시켰다. 감세와 규제 해제를 얻을 수 있다면 어느 정도의 광기는 견딜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기업들은 그들이 조종석에 앉아 있지 않을 뿐더러 재정적으로 뒷바라지를 해준 정당에 거의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기업들은 그들이 극단으로 치닫는 정치 집단을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현실적으로 그들은 급진화한 정당에 이용당하고 있다. 문제는 앞으로 기업들이 여기에 어떻게 대응할지에 모아진다.

김상용 기자 kim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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