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벤투리, 데니스 스콧 브라운, 스티븐 송(中)
[효효 아키텍트-103] 2017년 스티븐 송은 벤투리와 스콧 브라운이 스티븐 아이즈너(Steven Izenour)와 공저로 1972년 첫 발간된 <라스베이거스의 교훈>(Learing from Las Vegas)을 45년 만에 국내에서 정식 번역본으로 발간하면서 책임감수를 보았다. <기호와 시스템으로 읽는 건축> 또한 스티븐 송이 감수하여 2009년 한국에서 출판한 바 있다. <라스베이거스의 교훈>은 이전에도 번역본으로 나왔으나 원저자와 특별한 관계인 한국계 건축가가 감수를 보았다는 데 의미가 있다.
미국 컬럼비아 건축 대학원장을 지낸 마크 위글리(Mark Antony Wigley·1956~ )는 벤투리와 스콧 브라운이 저술한 <건축의 복합성과 대립성>(C&C in architecture:Complexity and Contradiction in Architecture, 1966년), <라스베이거스의 교훈>을 서구 건축의 4대 목록으로 꼽는다. 다른 두 권은 팔라디오(Andrea Palladio·1508 ~ 1580)의 <건축에 대한 네 권의 책, 1570년>, 르 코르뷔지에 <새로운 건축을 향하여, 1923년>이다.
<라스베이거스의 교훈>은 부부가 1968년 가을, 예일대 건축과 대학원생들을 이끌고 라스베이거스로 향한 결과물이기도 했다. 일사불란한 통일성보다는 복잡다단한 모순이, 기하학적 순수성보다는 다혈질의 열정이, 모더니즘의 형식주의보다는 역사성(history)과 버내큘러(vernacular·지역성)를 강조하는 건축의 문맥(contextualism)을 주장했다.
미국에서 꽃피운 팝아트는 영국에서 출발했다. 비틀스(Beatles)의 앨범 재킷을 디자인한 피터 블레이크(Peter Blake·1932 ~ )는 리처드 해밀턴과 함께 영국 팝 아트의 창시자로 불린다. 그는 '신의 고물상'(God's Own Junkyard)이라는 작품에 '롱 아일랜드 더클링'(The Long Island Duckling)을 그려 넣었다.
공간, 구조, 프로그램이라는 건축적 체계들이 전체적 상징 형태로 인해 감춰지거나 왜곡되는 경우 '건물 자체가 조각품이 되는' 유형을 피터 블레이크의 '롱 아일랜드 더클링'을 기리는(혹은 조롱하는) 뜻에서 오리라고 부르는 것이다.
'장식 헛간'은 실용적 건축에다 상업적 간판을 붙인 건축이다. '헛간'은 자동차 도로의 시각적 풍부함에서 나온다. '오리'는 기표(signifier·記標)와 기의(signified·記意)가 닮은꼴이므로 벤투리의 관점에서 '아이콘'(icon)이다. '헛간'은 기표와 기의가 관습과 문화로 연결된 것이므로 '상징'(symbol)이다. 벤투리에게 근대건축은 '상징성을 잃은 오리'다. 그는 근대건축의 엄격함을 탈피한 '기호의 건축'과 '기호의 도시'를 강조한다.
<라스베이거스의 교훈>은 건축은 내부 셸터(shelter·거주 공간)로서의 역할과 사인(signage·기호)이라는 소통, 장식, 정보, 상징적 측면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며 건축의 양면성(또는 이중성)에 주목했다.
2009년 4월 벤투리와 스콧 브라운은 그들의 은퇴 행사의 일환으로 런던의 AA대학에 초청받았다. 벤투리는 강의 도중 스티븐 송을 일으켜 세우고 자신들의 건축이론을 새롭게 확장시켜나가는 신세대 건축가라고 소개하였다. 이러한 벤투리의 행동이 서구 건축계에 스티븐 송 자신이 녹아들어 가는 데 크게 작용한다는 것을 알기까지는 수년이 지나야 했다.
2010년 1월 예일대학교에서 벤투리와 스콧 브라운의 업적을 기리고 토론하는 국제학회가 열렸다. 당시 예일대 학장 로버트 스턴(Robert A.M. Stern)은 벤투리와 스콧 브라운 사이가 그렇게 좋지 않았음에도 학회를 개최해 주었다. 이 학회에서 피터 아이젠먼(Peter Eisenman·1932~ )은 벤투리와 스콧브라운은 건축 담론에 혁신적 변화를 주도했고 이를 통해 완전히 새로운 사고의 가능성을 열였다고 평가했다.
스티븐 송은 학회에서 얻어진 주제들로 새로운 토론을 이어나가는 내용의 <Learning from 'Learning-From'>이라는 글을 발표하였다.
벤투리가 저서에서 자주 언급하는 '추하고 평범한'이라는 개념을 '재현'(再現)에 중점을 두는 19세기 사실주의 회화와 연결시킨다. 이는 1960년대 앤디 워홀의 '캠벨 수프 깡통'과 같은 '반복된 재현'을 통해 '달라진 매체, 스케일, 콘텍스트를 통해 특별해진' 무언가와 맞닥뜨린다. 상업적 풍경을 객관적으로 기록하는 벤투리와 스콧 브라운의 방법론도 팝 아트에서 온 것이다. 두 사람은 주위를 관찰함에 있어 평가를 배제-무표정한(deadpan)-함으로써 새로운 통찰이 가능하다 믿었다.
스티븐 송은 이 글에서 <건축의 복합성과 대립성>의 오해된 내용에 대해 설명한다. '어렵게 합해진 전체'(difficult whole) 개념, 견고함, 유용함, 아름다움 사이의 새로운 평형을 이루기 위해 삶의 모든 것을 끌어안아야 한다. 사회와 도시 경관(景觀)의 다양성이 여러 차원의 해석을 고취하는 긴장감을 유발, 이 긴장은 복합적 통합에서 해소된다고 보았다. 벤투리는 건축이 쉬운 통합에 의존하는 대신 스케일과 콘텍스트가 모순되는 팝 아트를 관찰하며 배워야 한다고 말했음을 상기시켰다.
스티븐 송은 <라스베이거스의 교훈>과 관련, 자동차 도시의 탄생 이해, 정보화 시대의 도상학, 상징성, 커뮤니케이션의 역할 재평가,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 로스앤젤레스를 제치고 라스베이거스를 선택한 것처럼 전체를 이해하기 위해 변수들을 분리했고 디자인 단계에서 이를 다시 종합했다.
스티븐 송은 "벤투리와 스콧 브라운은 투철한 이론가이자 예술가이면서도 이웃집 할아버지, 할머니이다. 인간이 중심에 놓인 건축이 아니면 지속가능한 건축이 될 수 없다고 늘 강조한다"고 전했다.
미국내 비주류 건축가였던 부부는 다시 옛날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어떤 면에서는 주류에도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두 건축가는 시스템 바깥에서 싸웠고 아웃사이더였다. 이들은 특히 1979년 프리츠커상 초대 수상자인 필립 존슨(Philip Johnson·1906~2005)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벤투리와 스콧 브라운은 필립 존슨을 포스트모더니즘과 구분되는 '포모'(PoMo)로 구분지었다. 포모는 모더니즘과의 완전한 분리주의자를 말한다. 로버트 스턴은 벤투리와 스콧 브라운을 '모더니즘까지 포함해 서구 인문주의라는 문화적 전통의 연속성을 인정한 전통적 인물'로 본다.
모더니즘의 시조로 불리는 미스 반데어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1886~1969)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필립 존슨은 한때 벤투리 부부가 정통파 근대건축의 모순을 지적한 저서 <건축의 복합성과 대립성>에 동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이 책은 "견고함, 유용함, 아름다움이라는 전통적인 비트루비우스(Vitruvius : 로마 시대 건축가) 요소를 수용함으로써 건축은 필연적으로 복합적이고 대립적일 수 밖에 없다.… 배제를 통한 손쉬운 통합보다 수용을 통한 어려운 통합을 구현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복합성과 대립성'(Complexity and Contradiction)은 르 코르뷔지에의 '집은 살기 위한 기계다'(House is a machine for living), 루이스 설리번의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는 명제의 모더니즘에 반응·대립하는 개념이다.
필립 존슨은 뉴욕의 권력자였다. 당대 팝 아트를 대표하는 앤디 워홀을 비롯한 미술가, 주요 고객, 정치인들과 연결되어 있었다. 필립 존슨과 마크 위글리가 공동 기획한 1988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 '해체주의 건축' 전시에 참여한 프랭크 게리, 자하 하디드, 렘 콜하스 등 건축가 모두 2000년대 신자본주의 시대의 '스타 건축가'가 되었다. 필립 존슨에게 건축계 변방인 필라델피아의 벤투리와 스콧 브라운 부부는 계륵(鷄肋)이었다.
벤투리 부부가 주장하는 이론이 유럽에서 반향을 일으키자 이들을 따돌림 시켰다. 필립 존슨은 이들 부부를 자신의 연회에 초대해 놓고도 말 한마디 걸지 않는 망신을 주곤 했다. 특히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생으로 영국 AA서 수학한 스콧 브라운은 비주류일 수밖에 없다.
스티븐 송은 비주류였던 부부 건축가가 세계적 석학의 반열에 오른 배경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건축의 복합성과 대립성>은 기존 건축 질서에 도전하는 얘기이다. 이 책이 출간된 1965년 이전에 비슷한 얘기를 했던 건축가들은 필립 존슨을 중심한 뉴욕 건축가 집단에 의해 사장된다. 벤투리는 '건축이 복합적이어도, 대립되는 요소가 있어도 괜찮다. 건축은 또한 소통하는 역할도 해야 한다. 난 그런 건축도 좋다'라는 얘기를 르네상스 건축가들이 인간적 요소를 많이 포함하면서, 경건함을 추구했던 클래식 건축가들에게 도전하는 방식과 비슷하게 하였다. 실제로 르네상스 건축가 얘기도 책에서 많이 하였다. 이러고도 당시 젊었던 벤투리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의 취향으로 얘기했지 (난 그런게 좋다) 정면으로 도전하지는 않았다. 건축가로서는 변방인 필라델피아에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라스베이거스의 교훈>은 기존 건축가들이 라스베이거스는 악의 도시이고 상업적이어서 고고한 건축가들은 배울 점이 없다고 할 때 정면에서 "라스베이거스 또한 우리가 배울 점들이 있다"는 주제였기에 주류 사람들이 싫어하였다."
"건축계에서는 이단아, 아웃사이더였고 기존의 질서에 자꾸 도전하는 건축가 부부로 알려지게 되었다. 나중에는 뉴욕의 주류 건축가들이 자신들은 "화이트"(불순하지 않은)이고 벤투리와 스콧 브라운 같은 건축가들은 "그레이"(이도 저도 아닌 회색)라고 이름을 붙여 공식석상에서 자꾸 싸움을 걸었다."
지지 세력도 있었다. 이론가 출신의 램 콜하스(Rem Koolhaas·1944년~ )나 젊은 세대인 덴마크 코펜하겐 출신의 비야케 잉겔스(Bjarke Ingels·1974 ~ ) 등은 벤투리와 스콧 브라운을 지지하는 이유로 '건축 이론이 풍부해진 시작점'이라고 보고 있다.
이들 부부는 스티븐 송과 최초 인연이 되었던 '어떤 건축가가 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답을 내놓았다. '르네상스 건축가 같은 이가 되라. 이론, 저술, 토론, 교육, 작품 등 어느 한 군데에서도 밀리면 안 된다'면서 자신들이 비주류로 살아온 경험과 제자가 미국 사회에서 유색인 건축가로 생존하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평소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에 회의적이었던 스티븐 송은 건축가는 많은 정보를 갖고 있고, 사회적 발언권이 있어야 한다는 게 지론이다. 실제 사회적 리더십을 가지기 위해 실천했다.
스티븐 송은 로스앤젤레스의 캘리포니아 주립대(UCLA) 부설 미술관인 해머 미술관(Hammer Museum) 이사회 멤버이다. 또한 그는 영국의 건축학교인 AA와 같은 성격의 SCI-Arc(Southern California Institute of Architecture)의 이사회 멤버이기도 하다. 이러한 지위는 그의 사업에 많은 도움이 된다.
미국 동부인 뉴욕 및 필라델피아에서 경력을 쌓았던 스티븐 송이 서부인 로스앤젤레스에 사무소를 둔 것은 유럽과 연결된 뉴욕보다는 실리콘밸리 중심으로 젊은 인재들이 모이며 아시아권과도 거리나 정서적으로 가깝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프리랜서 효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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