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의 성공'에 미뤄진 축배..세계는 '뉴스페이스' 향해 달린다

곽노필 2021. 10. 22.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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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호 발사]한국의 우주개발 계획과 과제
정부는 2030년까지 한국형 발사체로 달 착륙선을 보내는 걸 목표로 삼고 있다.

누리호 성공 축배의 남은 부분을 채우는 것은 내년으로 미뤄지게 됐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국의 우주개발 청사진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세계의 우주 경쟁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 2010년대 이후 우주산업으로 몰리는 돈이 급증하고 있다. 투자정보업체 스페이스 캐피털에 따르면 올해 3분기까지 우주기업에 대한 민간투자액은 100억달러(약 11조8천억원)를 넘어섰다. 이는 사상 최고였던 지난해 98억달러보다도 많은 규모다.

때마침 한국의 우주개발을 옥죄었던 족쇄도 모두 풀렸다. 1979년 이후 발사 거리와 탑재 중량에 제한을 가해왔던 한-미 미사일 지침이 지난 5월 종료됐기 때문이다.

달 궤도선 상상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제공

■ 정부 계획은?

정부는 이미 달라진 상황을 반영해 지난 6월 제3차 우주개발진흥 기본계획을 수정했다. 이 계획에서 우선적으로 역점을 두고 있는 건 누리호의 신뢰성 확보다. 2020년 전세계에서 발사한 로켓 114기 가운데 10기가 실패할 정도로 신뢰성은 최우선 과제다. 네차례의 반복 발사를 위해 6800억원을 투입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누리호로 달 탐사선을 발사하려면 누리호 성능을 높이는 고도화 작업이 필요하다. 누리호도 500㎏의 소형 탑재물 정도는 달까지 보낼 수 있지만, 탐사 기능을 할 수 있는 착륙선을 보내려면 새로운 발사체 개발이 불가피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러나 지난 6월 예비타당성 검토에서 누리호 엔진 고성능화 방안은 일단 유보됐다.

정부는 대안으로 누리호 상단에 고체추진단 킥모터를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누리호로 달 탐사선을 지구 저궤도에 보낸 다음, 여기서 고체 킥모터로 달 궤도까지 투입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어떤 우주 프로그램을 기획하느냐에 따라 누리호의 미래가 달라진다.

미사일 지침 이후 손 놓고 있던 고체연료 발사체 개발도 재개된다. 정부는 2024년까지 소형 고체연료 발사체를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고체연료 로켓은 누리호 같은 액체연료 로켓보다 구조가 단순해 저비용, 단기 발사에 적합하다. 정부는 이런 점을 반영해 고체연료 로켓 개발은 기업 중심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안재명 카이스트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앞으로는 누리호 같은 국가 주도의 고성능 발사체와 민간 중심의 소형 발사체라는 포트폴리오를 갖춰 각각의 수요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형 위성항법시스템은 8기의 위성으로 구성된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제공

그동안 몇차례 미뤄졌던 달 탐사는 내년부터 시동을 건다. 먼저 내년 8월 한국형 달 궤도 탐사선(KPLO)이 미국 스페이스엑스(X)의 로켓에 실려 날아오른다. 달 궤도선은 내년 말 궤도에 도착한 뒤 달 상공 100㎞ 궤도를 돌며 1년간 탐사 활동을 한다. 총중량 678㎏의 달 궤도선은 이달 말까지 조립 작업이 모두 끝난다.

위성을 궤도에 올려보낸 후 지상으로 돌아오는 스페이스엑스의 팰컨9 1단계 추진체. 스페이스엑스 제공

■ 달라진 국제 우주산업 환경

한국이 누리호 개발에 매달려 있는 사이 국제 우주산업 환경은 크게 변했다. 정부 대신 민간기업이 우주 기술과 산업의 주역으로 떠오르는 뉴스페이스 시대를 맞았다. 체제나 국력 경쟁 차원에서 이뤄지던 우주개발에도 저비용, 고효율을 우선하는 시대가 됐다.

현재 세계 발사체 시장의 최대 화두는 로켓 재사용 기술이다. 로켓을 재사용하면 비용을 크게 낮출 수 있다. 독보적 기술력을 갖춘 스페이스엑스는 재사용을 위한 1단계 추진체 회수 기록이 100번을 넘는다. 한 로켓을 최대 10번까지 쐈다. 1단계 추진체는 전체 로켓 발사 비용의 60%를 차지한다. 저비용을 내세워 세계 발사시장 점유율 20%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은 독자적으로, 일본은 독일·프랑스와 함께 재사용 기술 개발을 시작했다.

로켓랩의 소형 위성 전용 발사체 일렉트론. 로켓랩 제공

기술은 확보했지만 성공 축배를 들지 못한 한국으로선 갈 길이 멀다. 누리호는 소형 발사체였던 나로호보다 성능이 훨씬 뛰어난 중형 발사체다. 하지만 주요국의 주력 로켓에 비하면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또 하나의 화두는 소형 위성 시장을 겨냥한 발사체 개발이다. 소형화 기술이 발전하면서 500㎏ 미만의 소형 위성 발사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특히 저궤도 군집위성을 이용한 통신망 구축이 주요국들의 경쟁 무대가 됐다. 시장조사업체들은 2020년 28억달러(3조3천억원)에서 2030년 137억달러(16조1천억원)로 시장이 커질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국내엔 민간기업이 소형 발사체를 개발해도 이를 쏠 발사대가 없다. 정부는 우선 2024년까지 나로우주센터에 고체로켓용 민간 발사장을 구축할 계획이다.

누리호는 높이는 맨 왼쪽 아리안 5호와 비슷하지만, 추력은 10분의 1이 안 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이런 일련의 흐름은 한국 우주 정책에 새로운 화두를 던져준다. 내년 누리호 발사가 성공하게 되면 한국의 우주 인프라 구축은 1차적으로 완성된다. 누리호 이후엔 그 인프라를 세계 흐름에 맞춰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개량하는 것이 우선 과제로 떠오를 것이다.

황정아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최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주최로 열린 ‘한국 우주개발의 미래’ 토론회에서 “한국의 우주개발사는 누리호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라며 “누리호 이후엔 기술보다 목표와 비전을 먼저 세우고 그에 맞는 기술을 개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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