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입양 서류 모두 허위였다, 한국은 왜.. 입양아 출신 스웨덴 기자의 추적

원다라 2021. 10. 22. 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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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 게이트, 본보와 서면 인터뷰]
친부모 찾으려 했지만 입양서류 모두 '허위기재' 
46년 만에 한국 돌아와 입양실태 취재해 기고
스웨덴 정부 '해외입양 실태조사' 결정 이끌어내
"국회 발의 '보호출산제' 폐기 등 입양문화 개선을"
엠마 게이트.

"친부모를 찾기로 결심했지만 찾을 수 없었어요. 제 출생에 대한 정보가 모두 거짓이었기 때문입니다."

한인 입양아 출신인 스웨덴 기자 엠마 게이트(47)씨는 21일 한국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계기'를 이렇게 밝혔다. 게이트씨는 지난해부터 가족과 함께 한국에 머물면서 한국의 입양 실태를 취재해 스웨덴 언론에 송고하고 있다. 그의 기사는 현지 주요 일간지에 게재되고 있고, 스웨덴 정부가 한국을 포함한 해외 아동의 입양 실태를 조사하겠다고 발표하는 계기가 됐다. 스웨덴 거주 입양인은 4만 명가량이고, 그중 한국계가 9,000명으로 가장 많다.

1974년 3월 1일 인천에서 태어난 게이트씨는 그해 스웨덴으로 입양됐다. 스톡홀름에서 부모님과 언니, 남동생과 함께 자란 그는 15세 때까지만 해도 활달하고 사교적인 성격이었다. 그가 자기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건 16세 때였다. 보수 정당이 갑자기 인기를 끌었고, 거리를 걷다가도 인종차별적 언사를 겪는 일이 반복됐다. '나는 이방인이구나' '나는 내 금발머리 친구들과 같은 미래를 꿈꿀 수 없겠구나' 하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섭식장애를 겪었고 계속 자살을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입양된 것은 축복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어린 시절 내내 '입양되지 말았어야 했는데'라고 생각했습니다."


45년 만에 친부모 찾기 결심했건만

스웨덴 기자 엠마 게이트가 지난 5월 작가 황석영씨를 인터뷰하는 모습.

게이트씨가 다시 한국을 생각하게 된 것은 고등학교 졸업 후 건너온 미국에서였다. 스웨덴 문학 작품을 소개하는 출판 에이전트로 일하다 우연히 문학잡지에 실린 황석영 작가의 인터뷰를 읽으면서다. 2001년, 게이트씨는 입양된 지 27년 만에 처음 한국을 찾았다. 한국은 한때 아이를 해외로 보내야 할 만큼 가난했던 나라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번화하고 현대화한 곳이었다.

여태 입양 기록이 담긴 서류도 지니고 있었지만, 친부모를 찾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부모에게 축복받지 못한 생명이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스웨덴으로 돌아가서도 '내가 자랐어야 했을' 한국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스웨덴 한국 학교에 한국어 수업을 신청했고, 그곳에서 만난 한인 입양인 남성과 결혼했다. 2012년 딸이 태어났다. 자신들과 머리카락 색이 같은 아이를 키우면서 친부모 생각이 더욱 간절해졌다. 45세였던 2019년 여름, 게이트씨는 친부모를 찾기로 결심했다.

해외 입양인이 친부모를 찾기로 결심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건 드문 일이 아니다. 신필식 입양인연대회의 사무국장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은 입양아가 잘 자라서 가족을 찾는 '감동적 장면'이지만, 실제 입양인들은 가족을 찾겠다고 결심하고도 여러 번 마음을 바꾸는 일이 적지 않다"면서 "스스로 마음의 상처를 극복하고 친부모를 기꺼이 용서하겠다는 마음을 먹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혼모-아이 생이별 조장하는 한국

어렵게 내린 결심이 무색하게도, 게이트씨는 초장부터 당혹스러운 사실을 접했다. 스웨덴 입양기관에 의뢰해 확인한 결과, 자신을 입양 보낸 한국 기관이 작성한 입양 서류가 전부 허위였던 것이다. 이 서류에 자신의 뿌리가 담겨 있다는, 아무런 의심도 품지 않았던 믿음이 산산조각났다.

게이트씨는 지난해 직접 한국으로 날아왔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다. 그는 이내 자신이 매우 흔한 사례라는 것을 알게 됐다. 당시 한국 입양기관들은 엄마에게 아이의 친권을 포기할 것을 권했고, 뒤늦게 친부모가 아이를 찾게 될 '번거로움'을 방지하려고 입양 서류를 임의로 기재했다. 이 과정에서 아이가 서구 국가에서 더 나은 삶을 살게 될 거라고 강조하면서 '양육을 포기하는 것이 모성애'라는 생각을 주입했다. 경제적 빈곤과 미혼모를 터부시하는 문화 또한 엄마가 "아이 행방을 다시는 찾지 않겠다"고 약속하도록 내몰았다.

스웨덴 기자 엠마 게이트가 스웨덴 언론에 기고한 한국의 베이비 박스 실태 사진.

게이트씨는 40년이 지나도록 달라지지 않은 현실에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 유기를 부추기는 '베이비 박스'가 좋은 것으로 포장되고 있었고, 다른 국가들과 달리 한국은 정부가 아닌 사설 입양기관이 입양 절차 전반을 관장하고 있었다.

나아가 국회엔 '보호출산제'가 발의됐다. 원치 않은 출산을 한 경우 친부모 신상을 적지 않고도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다. '아이가 버려지는 것을 막기 위한 법'이라는 게 입법 명목이지만, 게이트씨 눈에는 40여 년 전 자신의 가짜 입양서류를 합법화하는 것과 다름없어 보였다. 게이트씨는 "보호출산제는 미혼모가 자기 아이를 등록하고 법원에 가서 입양 동의를 하도록 하는 중요한 과정을 없애는 제도"라면서 "산모의 익명성은 보호되겠지만 아이가 나중에 가족을 찾을 수 없게 된다"고 비판했다. 그는 "한국은 편부모에 대한 문화가 많이 개방됐고 지원도 늘어난 만큼 이 법안은 통과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게이트씨 부부는 두 딸을 한국에 있는 국제학교에 보내고 있다. 두 아이가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우리들이 한국에서 자랐다면 가졌을 경험'을 주고 싶다는 게 부부의 바람이다. 게이트씨는 아직 친어머니와 형제들이 어딘가 살아있을 것으로 믿고 있다. "한국에서 입양 실태를 취재하는 동안 내 엄마가 나를 포기하도록 강요받는 과정이 어땠을지 실감했습니다. 하지만, 아마 슬프게도, 저는 그들을 평생 만나지 못할 거예요."

원다라 기자 d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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