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간소음 기준, 현실에 맞게 낮춘다

김은경 기자 2021. 10. 22. 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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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음 측정했던 1754건 중 현 기준 초과한 경우는 7.8%뿐
아이 뛰는 소리도 해당 안돼.. 환경부 보고서 "기준 바꿔야"

경기도 남양주시 한 아파트 2층에 사는 이재용(41)씨는 6개월째 층간소음으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퇴근 후 저녁이면 윗집 남자아이 2명이 뛰고 달리는 소리에 온 신경이 곤두서 제대로 쉬질 못해서다. 이씨는 “3개월 전부터는 수면제와 신경안정제까지 복용하고 있다”며 “이명이 생길 지경”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장과 함께 찾아가 부탁해보고, 심할 땐 경찰에 신고도 했지만 윗집은 “자꾸 찾아오지 말라”며 퇴짜를 놨다고 한다.

이씨는 참다못해 한국환경공단 산하 중재 기구인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에 소음 측정을 신청했다. 실제 소음을 재보고 이를 증거 삼아 소송을 제기하거나 중앙 공동주택관리 분쟁조정위원회 등에 조정을 신청할 참이었다. 지난달 초 하루 동안 집을 비우고 거실에 장비를 설치해 측정한 결과는 1분 평균값 ‘40dB’. 그런데 “이 정도는 층간소음으로 볼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2014년 정부는 공동주택 층간소음의 범위와 기준을 담은 규칙을 만들었다. 이에 따르면 발소리 등 직접충격소음은 주간(오전 6시~밤 10시)에 1분간 평균 43dB을 넘거나, 57dB 넘는 소음이 1시간 이내에 3번 이상 발생해야 층간소음으로 인정된다. 이씨는 “하루하루 삶이 괴로운데 이 소리가 법적으로는 층간소음이 아니라니 화가 치민다”고 했다. 환경공단에 따르면 층간소음 상담 신청 건수는 2017년 2만2849건에서 코로나 사태가 터진 지난해 4만2250건으로 3년 새 2배 가까이 늘었다. 올해는 9월 현재 3만4759건으로 이 추세대로라면 작년 규모를 넘어설 전망이다. 하지만 이씨처럼 대화로는 해결이 안 돼 이웃사이센터에서 직접 소음 측정을 했는데도 ‘기준 미달’이 나오는 경우가 대다수다. 2017년부터 올해 9월까지 소음을 측정한 1754건 중 현행 기준을 초과한 건은 138건(7.8%)에 그친다. 기준치를 넘으면 이를 근거로 분쟁조정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할 수 있다. 기준치를 넘지 않으면 분쟁 조정이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 이후 층간소음 민원이 연간 40%가량 느는 등 갈등이 심각해졌지만, 법적 기준이 지나치게 높아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지적이 많다. 환경공단에 따르면 ‘아이가 뛰는 소리’로 발생하는 층간소음은 40dB 정도다. 실제 층간소음 갈등의 대부분(67%)이 ‘뛰거나 걷는 소리’ 때문이지만 현행 기준을 잣대로 보면 문제가 없는 셈이다. 차상곤 주거문화개선연구소장은 “소음 측정값을 기초로 중재의 물꼬를 터야 하는데, 법적 기준을 충족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보니 극단적인 경우 폭력 등 사적 보복으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최근 ‘층간소음 기준이 지나치게 높다’는 내용의 용역 보고서를 기반으로 기준을 완화하는 검토안을 마련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르면 내년 중 국토교통부와 협의를 거쳐 개정될 전망이다.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환경부에서 받은 용역 보고서에는 “현재 층간소음 기준이 분쟁의 원활한 해결이라는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는 지적이 담겼다. 보고서는 이웃사이센터에서 실시한 170여 건의 공동주택 층간소음 측정 결과를 정밀 분석하고 청감실험과 설문조사를 시행해 이 같은 결론을 도출했다.

분석 결과 현행 기준인 43dB 소음에서 ‘성가심(annoyed)’ 비율은 84%, ‘매우 성가심(highly annoyed)’ 비율은 30%로 높게 나타났다. 층간소음 여부를 결정하는 잣대는 이보다 더 낮아야 한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본 연구에서 분석된 성가심 비율 등을 고려해 실생활 시 거주자가 참을 수 있는 소음 기준을 설정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고 했다.

보고서는 구체적인 기준치를 명시하지는 않았다. 다만 결론에서 “세계보건기구(WHO)에서 권장 기준으로 활용되는 소음의 ‘매우 성가심’ 비율은 10%”라며 “이에 해당하는 소음은 1분간 평균 38dB”이라고 해 이 수치가 척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43dB에서 38dB로 낮아지면 기준 초과율은 2.8배 정도 늘어난다. 노웅래 의원은 “시민들의 눈높이에 맞는 수준으로 층간소음 기준을 재설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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