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지금 필요한 건 '카카오의 사과'가 아니다

김신영 기자 입력 2021. 10. 22. 03:21 수정 2021. 10. 23.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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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기업 국감 한다더니
"사랑받는 기업 돼라" 잔소리만
독점 견제할 정교한 장치로
신생 기업 성장 보장해야
총수 불러 호통친다고
플랫폼 독점 문제 해결되나
김범수 카카오 의장이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중소벤처기업부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얼굴을 만지고 있다. 국회는 '플랫폼 국감'을 선언하고 김 의장을 세 번이나 국감에 불렀지만 질의는 과거의 재벌 길들이기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국회사진기자단

한국의 대표 플랫폼 기업 카카오의 김범수 의장이 이번 국정감사에 세 번 증인으로 나왔다. 각각 다른 상임위에서 의원들은 대기업의 ‘갑질’을 반복해 추궁했다. 김 의장의 답변은 작정한 듯 ‘죄송하다’로 수렴됐다. 골목 상권을 침해하고, 문어발식 사업 확장을 했다며 거듭 고개를 숙였다.

디지털 기술이 만들어낸 새로운 사업 모델인 플랫폼 기업은 공급자·소비자를 연결하는 서비스로 돈을 번다. 초반에 많은 회원을 확보하는 기업이 압도적 시장 지배력을 장악하는 특징이 있다. 태생적으로 독과점으로 이어지기 쉬워서, 그 폐해를 방지할 장치 마련은 주요국 정부와 정치권의 중대한 과제로 떠오르는 중이다. 미국에선 아마존(쇼핑 플랫폼)·페이스북(소셜네트워크)·구글(검색) 등이 수시로 의회 앞에 선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이런 흐름을 앞장서서 이끌고 있다. 독점 기업 제재는 연방거래위원회(FTC)와 법무부 반(反)독점국이 주도하는데 이 두 조직의 수장에 플랫폼 기업 전문가를 앉혔다. FTC 위원장엔 32세인 리나 칸 컬럼비아대 법대 교수, 법무부 반독점국장은 ‘구글 저격수’로 불려온 변호사 조너선 캔터를 임명했다. 이 둘과 함께 빅테크 기업의 시장 장악을 비판해온 팀 우 백악관 기술·독점정책 특별보좌관(컬럼비아대 법대 교수)으로 이뤄진 이른바 ‘우·칸·캔터’ 삼각 편대가 정권의 최우선 과제로 플랫폼 기업의 독점 문제를 수술할 준비를 하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6월 리나 칸 컬럼비아대 법대 교수를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TC) 위원장에 파격적으로 임명했다. 칸은 대학원생 시절 '아마존의 반독점 역설'이라는 논문을 쓴, 플랫폼 기업에 대한 독점 규제 전문가다. 사진은 지난 4월 상원 인사청문회에서 답변하는 모습. /로이터

바이든은 칸을 지목하며 그가 쓴 논문 ‘아마존의 반독점 역설’에 주목했다고 한다. 논문을 구해 읽어 보았다. 논지는 명료했다. 플랫폼 기업은 시장 지배력을 확보하고서 갑자기 서비스값을 올리는 ‘약탈적 가격’, 독점력을 토대로 연관 산업으로 진출해 경쟁사의 성장을 차단하는 ‘수직적 통합’을 통해 결국은 소비자의 선택권과 경제 활력을 저해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약탈적 가격 등의 용어가 딱딱하게 느껴진다면 한국 사례를 보면 된다. 모바일 메신저 독점사인 카카오는 계열사를 통해 택시 호출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다가 90% 넘는 점유율을 확보하자 소비자와 택시 기사 모두에게 우선 배차를 받으려면 돈을 내라고 청구서를 내밀었다. 약탈적 가격의 교과서적인 사례다. 카카오는 최근 비난이 일자 배차 확률을 높여주는 ‘스마트 호출’ 등을 없애겠다고 했지만 눈가림이라고 생각한다. ‘승차 거부 없는 자동 배차’라는 얼토당토않은 광고 문구를 내걸고(승차 거부는 원래 불법이다) 수수료를 받는 ‘카카오T 블루’ 서비스는 여전히 운영 중이다. 택시 기사에게 부과하는 우선 배차 수수료도 아직 없애지 않았다.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카카오택시에서 자동 결제를 하면 카카오페이를 통해 요금 지불이 된다. 카카오톡 안에서 이뤄지는 ‘선물하기’도 마찬가지다. 한국 온라인 선물하기 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이 서비스의 결제는 무엇으로 할까. 역시 카카오페이다. 다른 서비스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수직적 통합의 전형적 사례다.

이런 논란이 커지는 와중에 국회가 플랫폼 국감을 선언했다. 관심 갖고 보았다. 하지만 논의는 골목 상권으로 상징 되는 약자와 ‘공룡’ 플랫폼을 편 가르고 질책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의원들이 호통을 치는 국감의 관행은 오래 봐온 재벌 길들이기를 떠올리게 한다. 김범수 의장과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를 불러 상생하라고 질책하며 “사랑받는 기업이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몰아세운다. 여기서 사랑 타령이 왜 갑자기 나오는지 모르겠다.

미국은 독점 기업의 등장을 정치에서 왕(王)이 출현하는 것에 맞먹는 위협으로 본다. 반독점법의 핵심 법인 셔먼법을 1890년 제정하며 상원의원 존 셔먼이 한 말이다. “우리가 정치적 힘을 가진 왕을 견딜 수 없다면 생산·교통·생필품의 판매를 장악하는 경제의 왕을 용인해선 안 된다.” 팀 우 백악관 보좌관은 독점 견제의 역사가 곧 미국 성장의 역사였다고 뉴욕타임스에 썼다. 1980년대 IBM의 컴퓨터 산업 독점에 정부가 칼을 대자 마이크로소프트(MS) 같은 신생 소프트웨어 강자가 탄생했고, 과도하게 성장한 MS에 1990년대 제동을 걸었을 때 그 틈을 비집고 구글·아마존 같은 웹 기반 기업이 자랐다는 것이다. 미국은 이제 새로운 공룡으로 자란 빅테크 기업이 ‘왕’이 되지 못하게 막아 미래의 기업이 태어날 환경을 마련하려 하고 있다.

한국이라고 다르지 않다. 플랫폼 기업의 순기능을 인정하면서도 독점을 견제할 정교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경제 생태계의 활력을 끌어올릴 가장 중요한 화두일지 모른다. 대선을 앞둔 정치권의 편 가르기식 빅테크 길들이기, ‘사랑받는 기업’ 같은 한가한 잔소리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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