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보석이 춤으로 "보석도 발레도 갈고닦아야 빛나죠"

최보윤 기자 입력 2021. 10. 22. 03:06 수정 2021. 10. 22. 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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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발레단 신작 '주얼스'.. 강수진 단장·루싱거 회장 대담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서 신작 ‘주얼스’를 선보이는 국립발레단 신승원 수석무용수. /국립발레단

‘대부분의 남자들이 뉴욕 맨해튼 5번가 반클리프 아펠 보석상에 들어갔을 때, 어느덧 쪼그라든 은행 계좌를 상처처럼 달고나올 것이다. 하지만 이 남자, 조지 발란신은 달랐다. 그가 반클리프 아펠 매장에 발을 디디자, 발레가 탄생했다. 보석상 주인 클로드 아펠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 반짝이는 진열장은 화려한 발레리나의 환영으로 가득 찼다. 우아하면서도 어쩐지 관능적인 에메랄드에 대한 욕망은 서로 애타면서도 주저하게 되는 연인으로 변해있었고, 루비는 브로드웨이 스타처럼 화끈해졌다….’

지난 1967년 4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의 기사 일부다. 당시 뉴욕시티발레단을 이끈 러시아 출신 안무가 조지 발란신(Balanchine·1904~1983)이 창작한 발레 ‘주얼스’(Jewels·보석)가 세상에 나온 장면을 담고 있다.

주얼스_에메랄드 ⓒ국립발레단_Photo by 손자일

‘주얼스’ 탄생에 영감을 준 반클리프 아펠은 프랑스 보석 브랜드. 창업자 조카인 클로드 아펠이 뉴욕으로 건너간 뒤 발란신에게 열어줬던 매장이 발레의 역사를 바꾼 것이다. ‘주얼스’는 명칭 그대로 에메랄드, 루비, 다이아몬드의 느낌을 무대로 옮긴 총 3막의 추상 발레. 뉴욕 링컨센터에서 초연된 이후 ‘발레 역사에 남을 보석 같은 작품’이란 찬사와 함께 파리오페라발레단·볼쇼이발레단 등 해외 유명 발레단의 주요 공연작으로 자리 잡았다.

1976년 클로드 아펠의 동생 피에르 아펠(맨 왼쪽)과 뉴욕시티발레단 주역 발레리나 수잔 패럴, 안무가 조지 발란신(맨 오른쪽). /반클리프 아펠

“매일 연습하고, 지쳐도 일어나고, 스스로와 싸우며 단련해 나가는 거죠. 하루하루 갈고 닦아 마지막 순간에 감정까지 하나 되는 혼연일체로 무대를 완성할 때, 그 희열감과 황홀감이란! 발레리나, 발레리노가 수많은 시간을 들여 작품을 만들어나가는 것과 보석 장인들이 끊임없이 연마해 최상의 결과를 내놓는 과정은 정말 흡사하다고 생각해요. 과거 발란신과 클로드 아펠이 서로 영감을 받으며 교류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공감에서 나오지 않을까요?”

주얼스_에메랄드 ⓒ국립발레단_Photo by 손자일
강수진 국립발레단 단장, 니콜라 루싱거 반클리프 아펠 아시아퍼시픽 회장

최근 만난 국립발레단의 강수진 단장 겸 예술감독이 흑백으로 된 발란신의 사진을 보며 말을 건넸다. 오는 24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주얼스’를 신작으로 선보이는 강 단장은 “7년 전 예술감독으로 임명된 뒤 첫 인터뷰에서 ‘발레단을 운영하면서 원석을 찾아 보석처럼 빛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이야기했는데, 마치 운명처럼 ‘주얼스’를 선보일 수 있게 돼 행복하다”며 웃었다.

주얼스_에메랄드 ⓒ국립발레단_Photo by 손자일

화상으로 강수진 단장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던 니콜라 루싱거 반클리프 아펠 아시아퍼시픽 회장도 호응했다. “멈추어 있는 보석을 보면서 무용으로 재탄생시킬 수 있을 거란 생각을 당시에는 아무도 하지 않았을 거예요. 클로드 아펠과 발란신을 빼고는요. 아름다운 결과 뒤에 엄청난 고통과 인내, 땀방울이 있다는 것을 그 둘은 바로 알아차린 것이죠.”

주얼스_루비 ⓒ국립발레단_Photo by 손자일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안무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발란신은 기존 고전주의 발레 테크닉을 극대화하면서도 무대와 의상을 단순화해 ‘음악의 시각화’를 추구했던 인물. ‘신고전주의’ 발레의 창시자로도 불린다. 음악의 면면도 화려하다. 에메랄드는 가브리엘 포레의 작품으로 프랑스 낭만주의를, 루비는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작품을 통해 뉴욕의 재기 넘치는 풍성함을, 다이아몬드는 차이콥스키의 음악에 맞춰 러시아 궁중 발레의 웅장함을 표현했다.

주얼스_다이아몬드 ⓒ국립발레단_Photo by 손자일

루싱거 회장 역시 발레 마니아였다. 국내 초연하는 ‘주얼스’가 해외 유명 발레단과 어떤 차이점이 있을지 궁금해했다. “발란신 재단에서 발란신과 오랜 기간 함께 춤췄던 산드라 제닝스를 연습코치(레페티터·répétiteur)로 보내주셨어요. 단원들이 발란신 당시를 최대한 느끼면서 상상력으로 재해석할 수 있게 북돋웠죠. 에메랄드는 좀 더 평화로우면서 로맨틱해요. 무용수들이 신나게 표현하는 루비의 무대를 보고 있으면 저 또한 매우 즐겁죠. 다이아몬드가 가진 순수함과 간결함이 궁극의 미를 창조하는 걸 지켜보는 순간은 정말 짜릿해요.” 무대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무대 뒤로 향했다. 무용수들의 솟아 오른 핏줄, 뒤틀어진 근육, 극도의 절제… 땀방울과 황홀이 거기 있었다.

주얼스_다이아몬드 ⓒ국립발레단_Photo by 손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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