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지 길이 왜 짧아졌지? 가격 안올리는 척하면서 올렸다 '그림자 인플레이션'

최규민 기자 2021. 10. 22.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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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z Pick: 같은 값에 상품 質 하락

최근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가 5개월 연속 5%대 상승률을 이어가며 30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 중이다. 이런 와중에 통계에 잡히지 않는 ‘그림자 인플레이션(shadow inflation)’까지 기승을 부리며 서민들의 삶을 더 팍팍하게 만들고 있다. 그림자 인플레이션은 명목 가격은 같더라도 상품이나 서비스의 질이 하락하는 현상으로, 소비자들의 만족도와 생활 수준을 떨어뜨린다는 점에서 인플레이션과 사실상 같은 효과를 낸다.

가장 흔한 게 상품 용량 축소다. 월마트는 12개들이 화장지 가격을 14.97달러로 유지하는 대신 길이를 30% 줄였고, 제과회사 프리토 레이는 도리토스 과자 용량을 9.75온스에서 9.25온스로 5% 줄였다.

코로나 팬데믹 타격을 심하게 입은 업종에선 서비스의 질 하락도 두드러진다. 요즘 미국 항공편을 이용하는 고객들은 상담원 전화 연결을 위해 몇 시간씩 기다리는 것이 예사다. 호텔 투숙객들은 동일 가격을 지불하고도 예전과 같은 객실 청소 서비스나 무료 조식 등의 서비스를 누리기 어려워졌다. 대형 호텔 체인 힐턴 월드와이드 홀딩스는 미국 내 자사 호텔 대부분에서 “특별 요청 없이는 객실 청소 서비스를 한 번으로 줄이고, 장기 투숙객의 경우 5일에 한 번 제공한다”고 밝혔다. 다른 대형 호텔 체인인 매리엇 인터내셔널은 무료 조식 뷔페를 취소하고 자판기 도시락 서비스를 시범 운영 중이다.

호텔 체인 매리엇 인터내셔널이 운영하는 중저가형 호텔 브랜드 ‘페어필드’에 설치된 조식 뷔페 대용 자판기. /매리엇

다른 업종에서도 인력 부족과 공급난 때문에 고객 불편이 커졌다. 도요타와 혼다 차량을 주문한 구매자들은 1년 이상을 기다려야 하고, 가구를 주문한 소비자들은 내년까지 기다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CNN은 “현재 가구 배송이 석 달에서 여섯 달까지 지연되고 있으며, 앞으로 배송 기간은 더 길어질 예정”이라고 전했다. 시장조사 업체 JD파워에 따르면, 평이 가장 좋은 소매 매장에서도 소비자가 5분 이내 고객 응대를 받을 확률이 57%에 불과하다. 2018년 68%에 비해 10%포인트 이상 떨어졌다. 뉴욕타임스는 “많은 기업이 가격을 올리는 대신 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했다.

그림자 인플레이션 때문에 현재의 5%대 물가상승률조차 과소평가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의 노동통계청이 추적하는 273개의 품목 중 237개는 품질 변화를 측정하지 않는다. 전(前) 미 의회 공정경제위원회 소속 경제학자 앨런 콜은 “과거엔 기술 발달로 인한 품질 상승을 측정하지 못해 인플레이션을 과대평가하고 생활 수준 향상을 과소평가했지만, 지난 18개월 동안은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나마 상품의 품질 하락은 헤도닉 회귀분석 등을 통해 어느 정도 측정이 가능하지만, 서비스의 질 하락은 파악하기가 더욱 어렵다. 과거 연준에서 인플레이션을 연구한 앨런 데트마이스터 UBS 이코노미스트는 “품질이란 게 매우 주관적인 것이어서 정부가 통계에 반영하고자 해도 매우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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