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상념[이준식의 한시 한 수]<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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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덩굴, 늙은 나무, 황혼의 까마귀.
형용사와 명사만으로 건조한 듯 그러나 물씬 스산함이 밴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애끓는 이, 하늘 끝에 있네.' 이 한마디는 절제의 고비를 한사코 헤집고 나온 애틋한 속내이리라.
'겨울 까마귀 점점이 날고, 흐르는 물은 외딴 마을을 휘돈다. 저녁 해 막 저물려는데, 바라보는 이 마음 쓸쓸하기만 하네.' 이 시를 모태로 삼아 마치원은 과감하게 서술어를 생략하는 시적 변용을 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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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길, 서풍, 여윈 말./저녁 해 서쪽으로 지는데, 애끓는 이, 하늘 끝에 있네.
(枯藤老樹昏鴉. 小橋流水人家. 古道西風瘦馬. 夕陽西下, 斷腸人在天涯.)
―‘가을 상념(추사·秋思)’‘천정사(天淨沙)’ 마치원(馬致遠·1250?∼1323?)
절제된 언어에 감정조차 절제되어 있다. 형용사와 명사만으로 건조한 듯 그러나 물씬 스산함이 밴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토막토막의 명사들을 적절히 배열하고 형용사가 풍기는 분위기를 챙겨보면 어렴풋한 대로 화자의 동선(動線)과 심경이 잡힐 듯싶다. 화룡점정(畵龍點睛)의 극적 묘미는 마지막 구절에 담긴다. ‘애끓는 이, 하늘 끝에 있네.’ 이 한마디는 절제의 고비를 한사코 헤집고 나온 애틋한 속내이리라. 그 속내는 을씨년스러운 가을 저녁을 배경으로 북받쳐 오른 연심(戀心)일까, 아니면 객지에서의 노스탤지어일까.
‘들녘을 바라보며’라는 수 양제(煬帝)의 시가 있다. ‘겨울 까마귀 점점이 날고, 흐르는 물은 외딴 마을을 휘돈다. 저녁 해 막 저물려는데, 바라보는 이 마음 쓸쓸하기만 하네.’ 이 시를 모태로 삼아 마치원은 과감하게 서술어를 생략하는 시적 변용을 시도한다. 환골탈태의 맛을 되살린 것이다.
당대의 시, 송대의 사(詞)에 이어 이 노래는 원대에 발전한 산곡이라는 운문 장르다. 제목 뒤에 붙은 ‘천정사’는 곡조 이름으로 노래의 형식을 규정한다. 원대는 몽골족이 중원을 지배한 시대. 원 왕조는 몽골족을 1등급으로 우대한 반면 주류였던 한족은 3등급(북방계)이나 4등급(남방계)으로 천대했다. 시재와 문장력이 권력 기반이 되었던 사회 분위기가 바뀌면서 정통 시문보다는 희곡이 보편화됐고, 독립 장르였던 산곡은 마치 오페라의 아리아처럼 희곡 속 필수 요소로 삽입됐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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