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語西話] 갈대밭에서 달마대사를 만나다

원철·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장 입력 2021. 10. 22.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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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전망대에 올랐다. 광활한 순천만 습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전생에 나라를 구해야만 만날 수 있다는 홍보용 사진에 등장하는 황금빛 저녁놀 풍광은 애당초 기대하지 않았다. 흐린 날씨에 단색조 갯벌과 S자형 물길이 어우러진 그 자체로 수묵화 한 폭이다. 바다에도 물길이 있다는 사실을 두 눈으로 확인하면서 연신 감탄사가 이어진다. 갯벌을 휘돌아 지나가며 장대한 갈대숲으로 이어지는 물길은 그대로 파노라마였다. 때마침 물길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던 작은 배마저 갈대숲 속으로 흔적을 감춘다. 강희안(1418~1464)의 작품인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선비가 물을 바라보는 그림) 주인공처럼 난간에 기대 서서 턱을 괸 채 한동안 ‘물멍’을 때렸다. 그리고 동시에 ‘갈대멍’도 함께 때렸다.

/일러스트=이철원

갈대가 서로 얽혀 있는 것을 노속(蘆束)이라고 한다. “갈대 세 묶음을 빈 땅에 세우려고 할 때는 서로서로 의지해야 서있을 수 있는 것과 같다(如三蘆立於空地 展轉相依而得竪立)”고 했다. 사람 역시 관계를 이루면서 서로 기대고 함께 살아야 한다는 비유를 에둘러 말한 것이다. 진리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때로는 평범한 말 속에 비범함이 녹아 있는지라 주고받는 대화 과정까지 포함하여 ‘노경(蘆經·갈대경)’이라는 소제목을 달았다. 잡아함부(雜阿含部)에 포함된 ‘갈대경’이다. 전망대를 내려오는 길 끝에서 다시 만난 갈대밭에 또 몸을 맡겼다. 서걱거리는 가을 소리가 귓속으로 들어오면서 사람도 갈대 속에 그대로 파묻힌다. 갈대와 사람이 하나가 되다 보니 갈대에 ‘경’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를 알 것도 같다. 갈대끼리만 서로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갈대도 서로 의존하는 관계임을 알려줬기 때문이다.

달마대사는 갈대 한 줄기에 의지하여 양쯔강(揚子江)을 건넜다고 한다. 양무제(梁武帝·464~549)와 결별하는 순간의 전후 사정은 이후 많은 선사에게 타성을 깨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또 여러 화가가 그린 일필휘지 선화(禪畵) ‘달마절로도강도(達摩折蘆渡江圖·달마대사가 꺾은 갈대를 타고서 강을 건너가는 그림)의 소재가 되었다. 어떻게 갈대를 타고 강을 건널 수 있을까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들을 향해 ‘시경(詩經)’에는 “누가 하수(河水·황하)를 넓다고 하는가? 갈대 하나로도 충분히 건널 수 있도다”라고 꾸짖었다. 보잘것없는 갈대에 의탁할지라도 의지만 강하다면 넓은 강물도 어렵잖게 건널 수 있다는 뜻일 게다. “코끼리 아저씨가 가랑잎 타고 태평양 건너갈 때…”라는 대중가요 가사도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재야 고수들은 시대와 지역을 가리지 않고 언제나 격(格) 밖의 안목을 보여준다.

갈대가 주는 가을의 긴 여운을 만끽하고자 개방형 셔틀 전동차를 마다하고 일부러 동천변을 따라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갈대밭 속에 모습이 이국적인 ‘낭트’라는 간판을 내건 카페가 보인다. 회색 너와지붕 아래 판자를 이어가며 벽을 두르고 푸른 페인트 칠을 했다. 벽 중간을 빙 둘러 돌아가며 창문을 냈다. 그야말로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가 들리는 곳이다. 자매 도시인 프랑스 낭트 지방의 전통 가옥을 재현했다고 한다.

갈대집이라고 한다면 서울 노원구(蘆原區)도 빠질 수 없다. 옛날 수락산 아래 평원(原)에는 갈대(蘆)만 무성할 뿐 인가가 전혀 없었다. 따라서 함경도 방향으로 오가는 행인들이 불편을 많이 겪었다. 그래서 나라에서 갈대밭에 원(院·식당을 겸한 여관)을 건립하여 길손들이 쉴 수 있게 했다. 그래서 ‘노원(蘆院)’이라고도 불렀다. 하긴 무조건 갈대만 무성하다고 사랑받는 것이 아니다. 적당히 쉬어갈 곳이 있어야 나들이도 여행도 즐거운 법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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