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나라서 온 詩集
고(故) 이윤설(1969~2020) 시인의 시집 ‘누가 지금 내 생각을 하는가’(문학동네)가 발간됐다. 암과 싸우다 지난해 10월 51세 나이로 세상을 떠난 시인의 첫 시집이자, 1주기에 맞춰 펴내는 유고 시집이기도 하다.
이윤설 시인은 2006년 조선일보와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동시에 당선되며 등단했다. 본지 신춘문예 당선작 ‘나무 맛있게 먹는 풀코스법’은 사랑하는 이를 떠나 보낸 심정을 나무 먹는 것에 비유한 작품. 당시 심사위원인 문정희·황지우 시인은 “활달한 상상력과 살아있는 시어를 부리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평했다.
시로 등단하기 이전에 극작가였던 시인은 드라마·영화 시나리오 작가로도 열정적으로 일했다. 남편 노우진(55)씨는 “아내가 2019년 여름 암 투병을 시작하면서도 영화 시나리오를 탈고했고, 방송사와 계약한 드라마 각본을 만졌다”고 말했다.
이윤설 시인은 지난해 8월 병세 악화로 중환자실에 입원하고서 동료 문인인 윤석정 시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첫마디는 “석정아, 나는 시인으로 죽고 싶다.” 병실에서 거동하지 못했지만, 간병인에게 부탁해 화장(化粧)을 하고서 윤석정 시인을 맞았다고 한다. 윤 시인은 “혀가 굳어 발음이 정확하지 않았지만 온 힘을 다해 ‘시집을 발간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그간 발표된 작품들과 노트북에 남겨진 시들을 윤 시인이 정리해 출판사에 전했다.
발랄함이 시인의 무기였다. ‘지구 반대편으로 떠나기로 했다 오버/미안해 말아라 오버(오버)’. 죽음을 앞둔 그는 남은 이들에게 장난스럽게 무전을 건넨다. 박상수 문학평론가는 “그에게 삶의 모든 것은 원망스럽고 저버리고 싶은 것이지만, 그럼에도 인간에 대한 희망과 애정을 떨쳐낼 수 없다”고 했다.
시집 표지 앞날개의 ‘시인의 말’ 자리엔 글이 놓였다. “혹여 시집 마무리를 못하게 되면 이 글로 대신해달라”는 시인의 요청이 있었다고 한다. ‘인간으로 살아봤고 꿈을 가져봤고 짝도 만나봤고/ 죽어서 먼지가 될지 귀신이 될지 우주의 은하수가 될지/ 알 수 없지만/ 온 것이 안 온 것보다 낫다./ 허나 다시 오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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