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급발진·과속·역주행 탄소중립 정책

김승범 사회정책부 차장 2021. 10. 22.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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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에너지 비율 현재의 10배로
상용화 시점 모르는 기술 대거 활용
전문가들 “전기 요금 2~3배 올라”
생색은 정부가, 뒷감당은 국민이

현 정부에 탈(脫)원전은 ‘신성불가침 영역’이다. 정부가 탄소 중립을 추진하면서 탄소 배출이 없는 원전을 활용하면 좀 더 쉽게 목표에 이를 수 있을 텐데 멀쩡한 원전을 없애면서 굳이 어려운 길을 가겠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영국·프랑스 등 주요국이 탄소 중립 달성을 위해 적극적인 원전 확대에 나선 가운데, 우리만 이런 세계적 흐름에서 벗어나 역주행하고 있다. 하지만 탈원전에 대한 정부의 신념은 흔들리지 않는 모습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서울 용산구 노들섬다목적홀에서 열린 2050 탄소중립위원회 제2차 전체회의에 참석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2021.10.18./뉴시스

탈원전과 탄소 중립을 동시에 실현하는 것은 정부 스스로도 인정했듯 매우 도전적이고 결코 쉽지 않은 목표다. 하지만 정부는 한국식 ‘2050 탈원전 탄소 중립’을 향해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은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율을 20%로 늘리는 것이었다. 이 목표치는 최근 대통령의 한마디 이후 20%에서 30%로 올라갔다. 2050년 재생에너지 비율을 현재의 10배 수준인 61~71%까지 끌어올린다는 내용이 담긴 정부 탄소 중립 시나리오가 18일 확정됐다.

문제는 국민 의견 수렴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구체적 준비도 없이 급하게 시동부터 거는 게 맞느냐는 점이다. 원전 비율을 29%에서 2050년 6%로 낮춘 상태에서 석탄 발전을 없애야 하고, 석탄보다는 덜하지만 역시 온실가스가 나오는 LNG(액화천연가스)도 쓰기 어렵다 보니 재생에너지 의존도가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높아졌다. 탄소 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2050년까지 서울 면적(605㎢)의 10배 넘는 땅을 태양광 판으로 덮어야 한다. 국민은 날씨와 시간에 따라 발전량이 들쭉날쭉한 재생에너지를 늘렸다가 전기 끊기는 일은 없을지 걱정하고 있다.

재생에너지의 간헐성도 우려스럽지만, 언제 상용화될지 모르는 기술을 정부가 대거 활용하겠다고 한 것도 불안감을 키우는 요소다. 탄소 중립 시나리오에서 2050년 재생에너지 다음으로 발전 비율이 높은 것은 ‘무탄소 가스터빈’(13.8~21.5%)이다. 수소를 연소해 터빈을 돌려 발전하는 것으로, 재생에너지가 제대로 전기를 생산하지 못할 경우 그 빈 공간을 상당 부분 채워줘야 한다. 그런데 이 기술은 현재 국내에서 실험 단계로, 개발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재생에너지와 무탄소 가스터빈을 합하면 전체 발전량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74.7~92.3%다. 정부의 장밋빛 희망에 우리 에너지 미래가 걸려 있는 것이다. 중국·러시아에서 전기를 도입하겠다는 계획도 있다. 에너지 안보에 대해 고민은 해본 것일까.

국민은 천문학적 규모의 부담을 져야 할 상황이다.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를 저장하는 에너지 저장 장치(ESS) 구축 비용만 787조~1248조원이 든다는 탄소중립위원회 내부 분석이 있다. 전국에 전력망을 까는 데 돈이 얼마나 들어갈지는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탄소 중립 추진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비용은 국민이 내는 전기 요금과 세금 등에 반영된다. ‘에너지 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협의회’는 정부 탄소 중립 계획에 따라 전기 요금이 현재의 2~3배로 오를 것이라고 분석했다. 기업들도 초비상이다. 철강 업계는 석탄 대신 수소를 이용해 철강 제품을 만드는 수소 환원 제철 기술을 적용하는 데 109조원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

급발진에 이어 과속·역주행하는 탄소 중립 정책 때문에 전기료 폭등이나 기업 경쟁력 저하 같은 부작용이 생기고 최악으로 대정전 사태라도 발생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다. 현 정부는 탄소 중립 시나리오 수립을 치적으로 내세워 생색을 낸 후 내년 임기가 끝나면 그만이겠지만, 국민은 두고두고 뒷감당을 해야 한다. 미래 세대는 무슨 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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