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2030] '해결사인 척'은 이제 그만
“진짜 길바닥에 나앉게 생겼다”. 치솟는 전셋값, 옥죈 대출. 1800조원을 넘어선 가계 부채에 놀란 금융 당국이 지난 8월부터 대출 조이기에 들어가자 이런 한탄이 절로 나왔다. ‘전세 난민’은 남의 일이 아니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전세 대란 만들고 대출까지 막으면 어쩌란 거냐” “대출 규제 당장 풀라”는 성토가 이어졌다. 민심이 들끓자 문재인 대통령이 나섰다. 지난 6일 “전세 대출 관련해 서민 실수요 피해가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언급한 것이다. 그 뒤 일주일 만에 금융 당국은 “연말까지 전세대출과 잔금대출(집단대출)이 중단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며 물러섰다. 대통령은 말 한마디로 금융 당국을 제압한 해결사가 된 것일까.
문 대통령은 각종 이슈의 막판에 주인공처럼 등장해 ‘해결사’로 보이는 걸 좋아하는 듯하다. 비정상적인 집값 상승과 급증하는 가계 부채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꾸준히 제기됐다. 대통령이 이걸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줄곧 침묵하다가 말 한마디로 정책을 뒤집어 버렸다. 당장 눈앞의 대출난은 해결됐지만, 국민이 ‘급한 불만 껐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다.
작년 6월 주식 과세 논란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기재부는 국내 상장 주식으로 2000만원 넘는 수익을 올린 개인 투자자에게 세금 20%를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30~40대 개미 투자자들을 중심으로 거센 반발이 이어졌다. “정부가 개인 주식에 왜 양도세를 물리느냐” “부동산 사다리 걷어찬 것도 모자라서 주식 사다리까지 걷어차느냐”. 문 대통령은 또 막판에 등장했다. “주식 시장을 위축시키거나 개인 투자자들의 의욕을 꺾는 방식이 아니어야 한다.” 결국 또 대통령 말 한마디에 과세 공제 금액은 200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올랐고, 정책은 시행 시기를 대선 이후인 2023년으로 늦췄다. 역시 미봉책이다.
2018년 1월, 가상 화폐 거래소 폐지로 한창 논란일 때도 문 대통령은 막판 해결사처럼 등장했다. 당시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300만명이 하루 최대 6조원을 거래하는 가상 화폐 거래소를 예고도 없이 폐쇄하겠다고 발표했다. 대통령 주요 지지층인 20~30대가 청와대 게시판에 몰려와 “지지했던 걸 후회한다”고 항의했다. 그러자 청와대는 7시간 만에 “확정된 사안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후 대통령은 “여러 부처가 관련된 정책일 경우 각 부처 입장이 다른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모호한 말로 거래소 폐지를 없던 일로 만들었다. 아무것도 해결된 건 없었다.
이런 복잡한 정책적 사안은 한 부처가 단독 결정할 수 없다. 모두 청와대와 관련 부처가 오랜 협의 끝에 내놓는 대책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마치 몰랐다는 듯 먼 발치서 방관하다가, 민심이 들끓으면 그제야 해결사처럼 등장하곤 했다. 하지만 대통령 임기가 끝나가는 지금도 이 모든 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없고, 서민의 삶은 여전히 팍팍하다. 국민은 ‘해결사인 척’하는 지도자가 아닌 ‘진짜 해결사’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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