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대권 주자와 부끄러움
[경향신문]
지하철 안이다. 다들 마스크를 쓰고 띄엄띄엄 앉아 있다. 젊은이는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게임에 몰입해 있다. 노인은 경로석에 앉아 정치 이야기에 여념이 없지만 다른 사람의 주의를 끌 정도의 데시벨은 아니다. 그런데 “부스럭부스럭 쩝쩝” 누군가 음식 먹는 소리가 귀를 거스른다. 순간 모든 승객이 약속이나 한 듯 소리 나는 쪽을 돌아다본다. 한 중년남성이 한쪽 귀에 마스크를 걸친 채 컵에 담긴 닭강정을 천연덕스레 먹고 있다. 다들 말로 항의는 못하고 따가운 눈총을 보낸다. 그러다 누군가와 눈이 딱 마주쳤는지, 중년남성이 왜 쳐다보냐며 쌍욕을 한다. 그가 대꾸하려다 중년남성 목에 목도리처럼 두른 또 다른 마스크를 보고 심상치 않음을 감지하고 그만둔다. 중년남성이 계속 욕을 해대자 일행인 듯한 옆에 앉은 젊은 여성이 어쩔 줄 몰라 하며 말린다. 중년남성이 아랑곳하지 않자, 다들 자리를 피해 다른 칸으로 옮겨간다.
부끄러움! 사회학은 부끄러움을 가장 원초적인 사회적 감정으로 본다. 이를 알려주듯 부끄러움은 <성경>에서 처음 나오는 감정이다. 창세기 2장 25절. “아담 내외는 알몸이면서도 서로 부끄러운 줄도 몰랐다.” 부끄러움을 알게 되면서 드디어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별이 분화되는 사회적 삶이 열린다. 사회학은 부끄러움을 개인과 사회 사이의 상호작용 과정으로 탐구한다. 패션에 관해 연구한 사회학자 게오르크 지멜이 선구자다. 지멜이 볼 때 사람들은 변이와 변화를 추구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외모와 언행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변이와 변화를 추구하면 소외되고 부끄러울 거라는 걸 안다. 자신의 외모와 언행을 다른 사람들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계속 조정한다. 무작정 따라 하면 개인성이 소멸하기에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반면 패션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아예 변화를 추구하지 않고 습속에 고착되어 있다. 남의 눈을 신경 쓰지 않기에 부끄러움을 알 리 없다. 패션은 ‘소외’와 ‘고착’ 모두를 피하고 근대의 사회적 삶을 가능하게 해주는 해결책이다.
‘거울 자아’로 유명한 사회학자 찰스 쿨리는 수치와 자부가 자기 점검에서 나온다고 밝힌다. 자기 점검은 세 가지 요소를 띤다. 첫째, 다른 사람과 같은 상황 속에 있는 개인은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 상상한다. 둘째, 다른 사람에게 비친 자신의 모습을 그들이 어떻게 가치 판단할 것인지 상상한다. 셋째, 개인은 그렇게 다른 사람이 판단한 것을 지각하고 자기감정을 발전시킨다. 자기감정이 다른 사람이 내린 판단과 일치하는지 아닌지 계속해서 점검한다. 일치하면 자부, 일치하지 않으면 수치를 느낀다. 이렇게 자기감정과 다른 사람이 내린 가치판단을 일치시키다 보면 ‘우리 느낌’이 발전되어 나온다.
정치의 시즌, 평생 권력을 휘두르던 자들이 급기야 나라 전체를 책임지겠다고 서로 다투고 있다. 언행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지하철 안에서 마스크를 벗고 태연히 음식을 먹다가 주변 사람에게 욕설을 퍼붓고 있는 ‘개저씨’(개+아저씨) 같다. 아예 모르는 사람이라면 다른 칸으로 피해버리면 그만이지만, 우리 공동체의 미래를 책임진다고 나섰으니 그럴 수도 없다. 보는 우리는 부끄러운데 정작 그들은 전혀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고 몸과 입을 마구 놀린다. 왜 그럴까? 지멜에 따르면, ‘남의 시선’을 통해 자신의 외모와 언행을 전혀 평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남 아랑곳하지 않는 “라떼는 말이야” 패션이 하나같이 후지다. 쿨리는 한층 더 뿌리부터 알려준다. 자기 점검을 할 수 있는 상상력이 완전히 고갈되었다. ‘자기 조직’ 안에서 평생 칭송만 받고 살아왔기에 자부만 알 뿐 수치는 아예 모른다. 훤히 들여다보이는 투명유리 화장실 안에서 마치 아무도 안 보는 것처럼 거침없이 배설한다. 부끄러움의 사회학! 수치를 모르는 사람이 지도자가 되면 함께 자리한 우리 모두 부끄러워진다.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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