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상속세와 불평등의 세습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2021. 10. 2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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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상속세 개편 방안에 대한 조세재정연구원의 연구용역 내용을 11월에 논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를 비롯한 재계에서 상속세율 인하를 주장해 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재계의 논리는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 상속세 최고 명목세율이 5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일본(55%)에 이어 두 번째로 높고 최대주주가 보유한 주식을 물려줄 때는 경영권 프리미엄을 고려해 일반 주식보다 가액을 20% 높게 평가함으로써, 경영권 승계를 어렵게 하고 기업 투자를 위축시킨다는 것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해묵은 재계의 상속세율 인하 주장이 최근에 다시 주목을 받는 이유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유족이 약 12조원의 상속세를 신고했는데 최근에 유족이 상속세 마련을 위해 약 2조원의 주식을 처분했고, 또 최근 부동산 가격 급등을 고려할 때 앞으로 상속세 납부자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면서이다.

그러나 현행 상속 및 증여세율하에서도 세대 간 불평등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김회재 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부동산 가격의 급상승으로 인해 청년층의 자산 불평등은 심화되고 있다. 2020년에 20·30대 자산 상위 20%는 자산 하위 20%보다 35.2배 자산을 더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2019년 33.21배보다 증가한 수치이다.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기 때문에 상속세를 깎아주자는 주장은 세대 간 불평등을 더 심화시키자는 주장일 뿐이다.

국세청의 국세 통계 수시공개 자료에 따르면, 최근 4년간 피상속인 중 상속세 과세자 비율은 평균 2.5%에 불과했다. 즉 현재 상속세 납부자는 극소수의 부자들에 그치며, 따라서 상속세 인하는 전형적인 부자감세 정책이 된다. 극소수의 납부자들도 각종 공제를 받아 실제로 부담하는 세율은 명목세율보다 훨씬 낮은 것이 현실이다. 납부 대상이 되더라도 일괄 공제와 배우자 공제 등으로 10억원까지는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나아가 기초 공제와 자녀 공제 등 기타 인적 공제액을 더한 액수가 5억원보다 크면, 10억원 이상 공제를 받을 수도 있다.

중소·중견기업이 가업을 상속할 때는 최대 500억원까지, 영농상속의 경우에는 15억원까지 추가 공제 혜택을 준다. 우리보다 명목 세율이 더 높은 일본이 이른바 중소기업 가업승계로 널리 알려진 사실만 보더라도, 높은 명목 세율 때문에 가업승계가 어렵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또한 삼성그룹 이재용 일가가 상속세 때문에 세습을 못한 것도 아니고, 주식을 일부 처분했다고 경영권을 상실한 것도 아니다.

물론 가업승계나 재벌 세습이 국가 경제 전체를 생각할 때 바람직한 것일까라는 문제는 여전히 논쟁거리이다. 또한 상속세율이 높아서 기업이 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아무런 이론적·실증적 근거도 없는 선전·선동에 불과하고, 엄연히 경영권 프리미엄이 시장에서 형성되는 현실에서 이런 무형자산에 과세하지 않는 것이 더 문제가 될 수 있다.

상속세 개편과 관련해 미술품 물납제와 유산취득세 도입이 논의되고 있다고 한다. 현행 상속 및 증여세법(상증법)에서는 현금 이외에도 일정 조건하에서 유가증권이나 부동산으로 상속세를 낼 수 있는데, 여기에 미술품도 추가하자는 것이 미술품 물납 허용 주장이다. 그런데 국회입법조사처 자료에 따르면, 유가증권 물납의 경우에도 주식 가치의 과대평가로 2011년부터 2019년까지 물납가액의 30% 정도의 국고 손실이 발생했다. 유가증권이나 부동산보다 미술품의 가치 평가가 훨씬 어렵고, 국고 손실 발생 우려는 더 크다.

유산취득세는 전체 상속 재산이 아닌 상속자 개인의 유산 취득분에 매기는 세금이다. 그런데 현행 상증법하에서 유가증권이나 부동산을 상속하거나 증여하는 부모는 유가증권이나 부동산으로 벌어들인 이익에 대해 면세를 받는 대신에 상속 및 증여세를 내고, 상속자 개인은 사실상 아무런 세금 없이 상속 및 증여를 받는 셈이다.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율이 높아지자 부동산 증여가 최근에 급증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따라서 상속세를 폐지한다면, 자본이득세나 부동산 양도소득세를 피상속자에게 먼저 부과하고, 나머지 재산 평가액에 대해 상속받는 사람에게 유산취득세를 부과해야 한다. 이 경우 유산취득세는 별도 소득세로 취급할 수 있을 것이다. 증여세도 동일한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국회가 이런 식으로 상증법 개정을 한다면, 불평등을 개선하겠다는 정치인의 말을 믿을 수 있을 것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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