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헌의 체인지] '대장동 게이트 국감', 이재명이 야당 압도했다고?
'그들만의 리그'가 아닌 '선민후당(先民後黨)'을 생각해야
[더팩트ㅣ김병헌 기자] 서울 남산의 안중근의사 기념관 앞 뜰에는 높이 10m의 거대한 석비(石碑)가 있다. 앞면에는 ‘見利思義 見危授命(견리사의 견위수명)’이, 옆면에는 ‘이익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나라의 위태함을 보거든 목숨을 주라’고 새겨져 있다.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 역에서 조선 침략의 수괴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다. 안 의사는 이듬해 3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직전 여순감옥에서 ‘見利思義 見危授命’의 유묵을 남겼다.
이 글귀는 논어(論語) 헌문(憲問)편에서 공자(孔子)가 ‘완성된 사람’, 즉 성인(成人)의 자격을 말한 데서 유래한다. 공자의 기준에서도 안 의사는 일단 본인의 의지와 행동처럼 나라가 위급할 때 ‘견위수명’을 실천한 인물이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마찬가지. 공직자라면 누구든 생각해 보고 실천해야하는 덕목이다.
‘견리사의’는 특히 이익을 얻는 과정이 정당한 것인지 아닌지 따져보라는 가르침이라는 해석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공정(公正)이 시대적 화두인 지금 정의에 대한 보다 명확한 기준이 필요한 점과 맞닿아 있다.
이른바 ‘대장동 게이트’가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이재명 경기지사의 관련여부를 둘러싸고 여야의 뜨건운 공방과 함께 관련 수사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대장동 개발 이익이 민간업체에 과도하게 돌아간 배경에 ‘초과이익 환수조항 불포함’ 결정이 있다는 논란이 이 지사의 책임 여부를 판가름할 변수로 떠오른 것도 이 때문이다.
20일 경기도에 대한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이 문제가 집중 거론됐다. 야당은 조항 불포함을 결정한 이 후보에게 ‘배임’ 혐의가 있다는 입장이다. 이현철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사업1팀장은 그해 2월 ‘경제 상황을 알 수 없기 때문에 플러스알파(초과이익) 검토를 요한다’는 의견을 메모 형태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하지만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2015년 3월 화천대유가 포함된 하나은행 컨소시엄은 민간사업자로 선정됐다는 것이다.
초과이익 환수 조항 도입 의견은 이로부터 3달 뒤 사업협약 체결을 앞두고 다시 한 차례 더 거절된다. 사업협약 체결을 앞둔 2015년 5월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사업1팀의 한 직원은 초과이익 환수 조항이 포함돼야 한다는 내용의 ‘사업협약서 수정 검토’ 문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7시간 뒤 정식 결재라인을 통해 보고된 최종안에는 초과 이익 내용이 빠져 있었고 그대로 사업협약서가 확정됐다고 한다.
이 지사는 20일 "초과이익환수 조항을 ‘삭제’한 것이 아니라 초과이익환수 의견을 ‘미채택’한 것"이라면서 "2015년 당시 문제 된 바 없고, "민간의 비용 부풀리기 회계 조작과 로비 방지를 위해 ‘성남시 몫 사전확정’ 방침이 정해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나은행컨소시엄과 세부 협상을 하던 중 ‘부동산 경기 호전 시 예정이익 초과분을 추가 환수하자’는 실무의견도 있었는데 (성남도시개발)공사의 결재과정에서 채택되지 않은 것"이라고 부연했다.
미래의 부동산 경기 상황을 예견하는 게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정 및 정의에 대한 배려 부족으로 이 같은 참담한 결과를 빚게 된 데는 이 지사의 말을 100% 믿더라도 이 지사의 책임은 적지 않다. 그런데도 특정 민간사업자에게 천문학적 개발이익을 몰아준 책임과 원인을 야권과 전 정부에 넘기고 **게이트라며 몰아세우고 있는 건 전략적이라고 해도 이해하기 힘들다.
이런 관점에서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이 지사와 송영길 당 대표에게 반성과 자중을 권하고 싶다. 여야가 도긴개긴이라지만 선거나 정치가 승자 독식의 비정한 게임이라고 해도 원죄를 따져보면 지나치다는 생각이 앞선다.
검찰은 이 조항 불포함을 일종의 특혜라고 판단하고 있다. 만약 이 지사의 개입이나 관여 여부가 밝혀지면 배임 논란이 이 후보에게 ‘정조준’ 될 여지는 있다. 유동규 전 성남도공 기획본부장에게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적용한 까닭이다.
다만 법조계 인사들은 사업 계획 설립 단계에서 사업협약 수정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공모지침은 말 그대로 사업자들을 사업에 유인하는 수단일 뿐 법적 구속력은 크지 않다해도 안심해도 되는 상황은 아닌 것 같다.
눈앞의 이익(욕심)에 사로잡히게 되면 정의는 고사하고 자기의 진짜 처지조차 모르게 된다고 한다. 장자(莊子)가 조릉(雕陵)의 한 정원으로 사냥을 갔을 때의 일이다. 움직이지 않는 새를 활로 쏘려고 하고 자세히 보니 눈 앞의 버마제비를 노리고 있었고, 버마제비 또한 매미를 노리고 있었다. 매미는 아무것도 모르고 즐겁게 울고 있었다.
새와 버마제비, 매미는 모두 눈앞의 이익에 마음이 빼앗겨 다가오는 위험을 몰랐던 것이다. 장자(莊子)도 이를 보고 생각에 잠겨 있는데 정원지기가 다가와 그를 나무랐다. 장자도 눈앞의 작은 이(利)를 보고도 한때 자신의 처지를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장자 제물(齊物)편에 나온다.
지금 이재명 지사와 송 대표의 행동이 이처럼 보이는 게 지나친 기우일까? 그렇다면 걱정 안 해도 되겠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 정권 재창출이 지상과제인데도 당 지지율 하락세와 박스권에 갇힌 이 지사의 지지율은 큰 걱정거리다. 대장동 게이트는 아무리 잘 대응해도 선거에서 본전 밑가는 만성적 적자구조를 벗어나지 못한다. 대선 ‘원팀’ 도 현 상황으로서는 ‘잔뜩 흐림’이다.
민주당은 정권 재창출을 바란다면 대선과 관련 있든 없든 매사를 겸손한 자세로 국민 정서에 부합하는지부터 생각하고 실천에 옮기기 바란다. 이재명 지사는 물론이고 송영길 당 대표도 마찬가지다. '그들만의 리그'가 아닌 '선민후당(先民後黨)'이 먼저다.
bienns@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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