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메쉬 서사시 - 김산해 [김남일의 내 인생의 책 ⑤]
[경향신문]

몇 년째 대학원에서 신화를 가르치고 있다. 가끔 스스로 터무니없다는 생각을 한다. 어릴 때 병약한 나 때문에 엄마가 모셔온 무당이 울긋불긋한 옷을 입은 채 내 앞에서 덩실덩실 칼춤을 추었다. 나는 자지러지게 울었다. 그 기억이 훗날 트라우마가 되었다. 나는 ‘한국적인 것’이 참으로 싫었다. 따지고 보면 나 또한 구질구질한 데다 합리적이지 못한 위인이면서도 스포츠신문에 실린 ‘오늘의 운세’를 들여다보며 낄낄거리는 친구들까지 도매금으로 비웃었다. 그리스·로마 신화도 대충 읽다 말다 한 내가 정색하고 신화를 읽기 시작한 건 2010년 큰 수술을 받고 난 뒤였다. 무어 ‘계시’가 내려서 그런 건 아니었다. 종일 누워 지내는 처지에 재미난 읽을거리가 필요했다. 인도의 대서사시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를 제일 먼저 읽었다. 감긴 두 눈이 확 떠지는 듯한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 이런 세계가 있다니! 아무도 내게 그 세계를 가르쳐준 적이 없었다. 억울했다. 진작 신화의 세계를 알았다면 소설도 훨씬 잘 썼을 것만 같았다.
인류 최초의 신화라는 수메르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를 접한 뒤 내 확신은 더 굳어졌다. 아니, 신화 이전에 그건 삶과 죽음의 의미를 찾아 떠나는 한 편의 장대한 모험의 문학이었다. 그토록 기고만장하던 길가메쉬가 벗 엔키두의 죽음을 보고 맹세한다. 벗이여, 네 곁을 결코 떠나지 않으리라. 하지만 그의 눈에서 구더기가 기어 나오자 울부짖는다. 아, 나도 죽을 것이다. 위대한 도시 우루크의 왕도 필멸의 운명을 거스를 수 없다니!
죽음의 문턱에서 가까스로 살아난 몸으로 나는 길가메쉬의 모험에 기꺼이 동참했다. 물론 영생을 구한 건 아니었다. 내가 찾은 건 세계가 합리성만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 내 삶 또한 그만큼 왜소해질 거라는 자각이었다.
김남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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