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간 국내기업 300곳 참여..민간 우주산업시대 열린다
KAI, 한국형 발사체 만들어
◆ 첫발 뗀 우주강국 꿈 ◆
설계부터 조립, 발사에 이르기까지 한국이 순수 국내 기술로 개발한 첫 우주발사체인 '누리호(KSLV-Ⅱ)'에는 수많은 국내 기업들의 숨은 노력이 뒷받침됐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 따르면 21일 누리호의 첫 발사까지 한국형발사체 개발 사업에는 국내 기업 300여 곳에서 500여 명이 참여했다. 발사체와 시험설비, 발사대 부품 제작과 조립 등 누리호 전체 사업비의 약 80%에 해당하는 1조5000억원이 참여기업에 투입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민간 기업의 우주 개발 역량 강화를 위해 누리호 개발 초기부터 산·연 공동연구센터를 구축하고 기술이전을 지원해 왔다.
발사체 총조립을 맡은 한국항공우주(KAI)는 300여 개 기업이 제작한 부품을 토대로 발사체를 완성했다. 누리호 1단의 연료 탱크와 산화제 탱크를 제작한 것도 KAI다. 누리호는 극저온의 액체 헬륨 산화제와 케로신(등유)을 섞어 연료로 사용하기 때문에 탱크가 가벼워야 할 뿐만 아니라 초당 1t이 빠져나가는 압력 환경에 잘 견딜 수 있어야 한다.
국내 유일의 우주발사체 로켓 엔진 공장을 보유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누리호의 심장'으로 불리는 핵심 부품인 75t급 액체엔진 제작을 맡았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의 75t급 엔진과 7t급 엔진의 연소 성능을 검증하는 시험설비도 직접 만들었다. 현재까지 75t급 엔진 34기와 7t급 엔진 12기가 시험을 거쳤다. 네오스펙, 삼양화학, 하이록코리아 등도 엔진 개발에 참여했다.
누리호 연소 시험은 현대로템이 진행했고 누리호가 발사되는 48m 높이의 지상 발사대 '엄빌리칼 타워'는 현대중공업이 제작했다. 3000도 이상 화염을 견뎌야 하는 1단 연소기 제작은 비츠로넥스텍이 맡았다. 그밖에 산화제 탱크와 연료 탱크 사이를 연결하는 구조체를 제작한 두원중공업, 터보펌프 제작을 맡은 에스엔에이치, 헬륨 고압탱크(추진제 탱크 유지)를 공급하는 이노컴, 누리호 동체를 제작한 한국화이바 등 소재·부품·장비 분야 중소기업들도 누리호 사업에 함께하며 기술력을 쌓았다.
이번 누리호 개발 사업은 우주산업의 패러다임을 정부 주도의 '올드 스페이스'에서 민간 중심의 '뉴 스페이스'로 전환하는 밑거름이 될 것으로 보인다. KAI는 지난 2월 '뉴 스페이스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누리호 제작 경험을 바탕으로 경남 사천에 설계부터 제작, 조립, 시험을 한 곳에서 진행할 수 있는 '민간 우주센터'를 건립 중이다. 한화그룹도 지난 3월 우주산업을 총괄하는 협의체인 '스페이스 허브'를 출범하고 그룹 내 사업 확장에 나섰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민간의 우주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앞으로는 우주개발 사업에 기업과의 계약 방식을 도입하기로 했다. 지난 5월 입법 예고된 '우주개발 진흥법 일부개정안'에는 민간 기업이 정부가 추진하는 우주개발 사업에 단순 참여했던 기존 방식과 달리, 우주개발 사업에 기업의 이윤을 보장할 수 있는 계약 방식을 적용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고정환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형발사체 개발사업본부장은 "기업들이 과거엔 정부 프로젝트만 보고 있었다면 앞으로는 전망이 밝은 우주개발 분야에 자체적으로 투자하고 사업을 추진하는 사례도 조금씩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미국 우주재단(SF) 분석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세계 우주 경제 규모는 약 4470억달러(약 530조원)로 2005년 대비 약 176% 성장했다. 세계적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는 우주산업의 시장 규모가 오는 2040년에는 무려 1조10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송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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