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북핵 문제, 장기적 접근이 필요하다

2021. 10. 2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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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前통일부 장관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前통일부 장관

단기간에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점을 인정할 때가 왔다. 2019년 2월 하노이 회담의 실패로 협상의 현실이 드러났지만, 이미 그 이전인 2018년 1월 북한이 핵무장 완성을 선언하고 협상에 나왔을 때, 협상의 구조적 어려움이 시작되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하노이 회담이 실패한 이후 불신은 높아졌고, 협상의 가능성은 더욱 줄어들었다. 비핵화의 진전이 어려우면 당연히 남북관계의 개선과 한반도 평화 정착도 진전하기 어렵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세 가지의 전략적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단기적인 접근에서 장기적인 접근으로 전환할 때다. 30년에 접어든 '풀기 어려운 분쟁'을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 없다. 북핵 문제의 해결은 장기적인 과정이고, 결코 한두 번의 협상으로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 말 그대로 북핵 협상은 산 하나를 넘는 것이 아니라 산맥을 넘는 일이다.

마라톤 경기를 단거리 경주하듯이 할 수 없듯이,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하면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조급한 중재는 협상의 교착으로 이어지고, 불신을 낳고, 남북관계의 안정적 관리를 어렵게 한다. 협상의 피로감을 느끼는 여론과의 괴리도 문제다. 특히 젊은 세대의 남북관계에 대한 냉소와 비관은 그들이 통일미래 세대라는 점에서 우려할 만하다. 외교·안보 정책의 국민적 지지기반을 갖추는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관료적 비밀주의에서 벗어나야 하며, 협상에서 물 밑이 아니라 물 위의 비중과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 공감을 유지해야 오래 멀리 갈 수 있다.

둘째, 남북관계보다 지역 전략에 집중해야 한다. 한국전쟁 이후 남북관계는 동아시아 지역질서와 무관하게 움직인 적이 없다.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1991~2년의 남북기본합의서 국면, 2000년대 두 번의 남북정상회담은 모두 동아시아 지역 정세변화에 영향을 받았다. 물론 지역 질서의 변화가 저절로 한반도 질서 변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세계적인 혹은 지역적인 질서 변화를 한반도 질서 변화의 기회로 삼기 위해서는 확고한 전략과 능동적인 의지가 필요하다.

미·중 전략경쟁이 본격화하면서 한반도 질서의 환경이 달라졌다. 1971년 이후 동아시아 질서를 규정했던 미·중 협력의 시대, 즉 키신저 질서는 막을 내렸다. 미·중 전략경쟁이라는 새로운 질서 전환기에 남북 협력을 유지하면 지정학의 비극을 피할 수 있지만, 북한은 미·중 전략경쟁에 편승했고 북중 밀착을 선택했다. 미·중 전략경쟁 시대에 남북관계의 공간은 축소될 것이다. 최소한 미·중 전략경쟁이 한반도에서 격화되지 않아야 북핵 해법의 환경을 마련할 수 있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미·중 협력을 전략경쟁과 분리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

셋째는 협상의 목표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의 북핵 협상은 이행과정에 진입하기 전에 비핵화의 정의와 목표까지의 과정을 모두 설계하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협상 목표만 확인하고 이행하지 못하고 교착의 시간을 거쳐 다시 협상해서 목표만 재확인하는 '이행이 없는 합의'를 반복했다. 1994년 제네바 합의는 최소한 8년 동안 북한의 핵 능력을 동결했다는 점에서 그 이후의 합의와 다르다고 평가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목표의 반복적인 재확인이 아니라 실질적인 이행이다. 작은 합의라도 이행을 해야 그만큼의 신뢰가 쌓이고 다음 단계로 전진할 수 있다. 지금은 어렵지만 어느 정도의 신뢰를 쌓으면 북한의 핵 능력 동결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협상은 주고받는 것이고 신뢰 수준이 이행의 속도를 결정한다. 동결은 후진에서 전진으로 기어를 변경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후진하는 차를 우선 멈춰야 하는데, 당분간은 그러기 어렵다는 점이 안타깝다.

한반도와 동아시아 질서의 대전환이 시작되었다. 장기적이고 포괄적이며 구조적이다. 엄중한 현실을 직시하고 깊이 있는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희망은 상투적이지만, 동시에 상황 악화에 편승하는 주장은 위험하다. 익숙한 과거의 전략에서 벗어나 좀 더 장기적인 시각에서 인식을 전환할 때다.

원문=동아시아재단 정책논쟁 제1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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