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이렇게 살아가는 게 아니구나 느끼실 거예요"

정혁준 2021. 10. 21.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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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일의 슬픔과 기쁨' 기획한 문삼화 서울시극단장
21~3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에스(S)씨어터에 연극 <일의 기쁨과 슬픔>을 올리는 서울시극단의 문삼화 단장. 세종문화회관 제공

“메시지가 꼭 있어야 하나요? 그건 너무 옛날 방식이죠. 관객분이 보시면 웃음도 나왔다가 짠한 장면도 나왔다가, 그러다 ‘나만 이렇게 살아가는 게 아니구나’라는 걸 느끼실 거예요. 그 외에 특별한 메시지는 없어요.”

19일 낮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단장실에서 만난 문삼화 서울시극단장은 연극 <일의 기쁨과 슬픔>의 메시지를 물어보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연극은 2019년 10월 장류진 작가가 낸 같은 제목의 단편소설집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냉정한 ‘리얼 월드’에서 상처받고 자기모멸에 시달리면서도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존재를 섬세하게 포착했다”는 정이현 소설가의 추천사처럼, 그렇게 살아가는 20·30대 직장인을 중심으로, 소설은 큰 인기를 끌며 베스트셀러가 됐다.

문삼화 단장은 이 소설을 연극으로 만드는 작업을 지난해부터 진행해왔다고 했다. 어떤 부분이 인상 깊었을까? “소설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공감했던 부분은 같은 회사에 다니는 두 사람의 휴대전화에 동시에 울렸던 월급 입금 알람 메시지였죠. 월급은 한달에 한번씩 느끼는 ‘일하는 기쁨’이라고 생각했죠. 물론 한나절도 지나지 않아 들어온 돈은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슬픔’을 만들지만요.”

서울시극단 연극 <일의 기쁨과 슬픔> 연습 장면. 세종문화회관 제공

이 작품은 어떻게 선정됐을까? “일반인에게 가장 핫한 게 뭘까를 고민한 거죠. 연극을 열심히 보는 마니아층은 아주 적지만 탄탄해요. 그분들께는 항상 감사드려요. 하지만 연극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로 확장해나가야 하는 게 저희 몫이죠. 이 소설은 대단한 명분과 철학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직장인이 느끼는 소소한 일상을 가감 없이 보여주죠. 이 소설의 매력입니다. 대중이 뜨겁게 공감한 지점이기도 하죠. 한마디로 선정 이유는, 직장인들을 ‘연극으로 초대’하기 위해서죠.”

소설은 각기 색깔이 다른 단편 8개로 짜여 있다. 맛이 다른 8개의 이야기를 하나로 잘 이어갈 수 있을까? “연극은 옴니버스로 구성했습니다. 각색을 맡은 김한솔 작가가 잘 버무렸어요. 직장인들이 공감하도록 출근길에서 시작해 퇴근길로 끝나요. 원작과 거의 비슷해 연극적인 요소는 거의 없는 것 같은데, 연극을 보면 너무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연극 특유의 재미가 있죠.”

소설에서는 인상적인 말이 많이 나온다. 열심히 노력해도 잘살기 힘든 사회에 “잘살 수 있을까. 부디 잘살 수 있으면 좋겠는데”라는 문장은 많은 이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연극 대사에 소설에서 직접 인용한 문장이 나올까? “연극에서도 소설처럼 ‘회사에서 울어본 적 있어요?’가 나오죠. 나머지가 궁금하다면, 연극을 보면서 찾아보는 재미를 느껴 보세요.(하하)”

이번 연극에서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얼까? “메시지가 꼭 있어야 하나요? 관객은 자신만의 시각으로 자신만의 결론을 내리죠. 내가 산 인생만큼 내 좌표에서 스스로 느끼는 거죠. ‘우리는 이런 얘기를 전해 드리고 싶어요’라는 건, 관객을 가르치려 드는 거 같아요. 예술은 가르쳐야 하는 게 아니죠.”

서울시극단 연극 <일의 기쁨과 슬픔> 포스터. 세종문화회관 제공

연극 <일의 기쁨과 슬픔>은 서울시극단의 ‘시선’이라는 창작 프로젝트의 하나로 진행됐다. 이 프로젝트는 지난해 6월 취임한 문삼화 단장이 관객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위해 기획했다. “저희 ‘시선’은 한곳에 머물러 있지 않아요. 항상 새로운 걸 찾아 응시하죠. 좋은 연극을 만들기 위해서는 한곳에 머물러 있지 않아야 하죠. 변하는 세상을 항상 지켜봐야 해요. 이게 이 프로젝트 기획 의도죠.”

그렇다면 시극단의 시선은 어떤 곳을 응시하는 걸까? “<일의 기쁨과 슬픔>은 현재를 잘살아 보려는 평범한 직장인의 기쁘고 슬픈 이야기를 응시한 거죠. 내년 11월엔 사회에서 분리된 채 시설에서 살아가는 장애인 이야기인 <등장인물>을 무대에 올리려고 해요. 배우가 출연을 안 하는 다큐멘터리 연극이죠. 사회에 제대로 등장한 적 없던 인물 이야기를 통해 우리 시대의 다양한 모습을 담아보려 해요.”

문삼화 단장은 취임 뒤 고전을 새로운 시각으로 재창작한 <정의의 사람들>, ​서울을 모티브로 한 새로운 형식의 연극 <천만 개의 도시> 등을 선보여왔다.

앞으로 어떤 연극을 만들고 싶은지 물었다. “엄청나게 무시무시하게 빠른 속도로 시대가 변화하고 있죠. ‘연극이 박물관에 들어가지 않을까’라고 고민할 정도예요. 이런 상황에서 연극이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죠. 어렵지 않게 만들려면 연극의 권위를 내려놓아야 해요. 그래야 재미있는 연극을 만들 수 있으니까요.”

연극 <일의 기쁨과 슬픔>은 ‘여행 연극’으로 잘 알려진 박선희 연출가가 연출을, 뮤지컬을 전공한 김한솔 작가가 각색을 맡았다. 세종문화회관 에스(S)씨어터에서 21일 막을 올려 31일까지 공연한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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