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 가르는 춤판..현대무용판 '오징어 게임'

임석규 입력 2021. 10. 21. 18:16 수정 2021. 10. 21.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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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무용수 12명이 미끄러지듯 춤을 춘다.

"떨어진 자도 무대에 소환하는 등 경쟁에서 탈락한 이들에 대한 배려도 춤에 담았어요. <오징어 게임> 과 장르는 다르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멈춰버린 세상에서 누구나 한번쯤 돌아보게 되는 주제 아닐까 싶네요." 남 감독은 "유희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생존과 죽음, 성취와 공허에 관한 이야기", "자기가 살기 위해 타인을 배제한 시대를 살아온 삶의 기록"이라고 작품의 의미를 축약해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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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무용 '이것은 유희가 아니다'
온라인으로 공개된 국립현대무용단의 지난해 <이것은 유희가 아니다> 공연 장면. 국립현대무용단 제공

남녀 무용수 12명이 미끄러지듯 춤을 춘다. 장면이 끝날 때마다 1명씩 차례로 무대 밖으로 끌려나가고, 남은 자들은 생존을 자축하듯 화려한 군무를 펼친다. 이 잔혹한 유희는 최후의 생존자 1명만 남을 때까지 다양하게 변모되며 쉬지 않고 이어진다. 삶과 죽음을 가르는 ‘공포의 춤판’이다.

22일부터 사흘간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국립현대무용단의 공연 <이것은 유희가 아니다>는 넷플릭스의 세계적인 히트작 <오징어 게임>과 놀라울 정도로 설정이 유사하다. 하지만 지난 9월 <오징어 게임> 공개에 앞서 이미 지난해 제작돼 온라인으로 공개된 작품이다. 올해엔 작년 작품을 일부 개작해 씨제이(CJ)토월극장에서 관객들을 직접 만난다.

남정호 국립현대무용단 단장 겸 예술감독이 지난해 취임 뒤 처음으로 안무를 맡은 게 이 작품이다. “떨어진 자도 무대에 소환하는 등 경쟁에서 탈락한 이들에 대한 배려도 춤에 담았어요. <오징어 게임>과 장르는 다르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멈춰버린 세상에서 누구나 한번쯤 돌아보게 되는 주제 아닐까 싶네요.” 남 감독은 “유희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생존과 죽음, 성취와 공허에 관한 이야기”, “자기가 살기 위해 타인을 배제한 시대를 살아온 삶의 기록”이라고 작품의 의미를 축약해 설명한다.

영화 <배틀 로얄>, 반가사유상, 마네의 그림 <풀밭 위의 식사>, 영국 작가 윌리엄 골딩의 소설 <파리대왕>은 남 감독이 작품의 콘셉트를 잡고 구성을 하는 데 도움을 준 이미지들로 꼽은 것이다. ‘데스 게임’ 장르의 고전인 <배틀 로얄>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대목에서 <오징어 게임>과 연관성을 엿볼 수 있다. 심지어 어떤 장면은 <오징어 게임>과 판박이다. 휘리리릭, 귀를 찌르는 듯한 휘파람 소리가 울리면서 춤꾼들이 3명씩, 또는 5명씩 짝을 지어야 하는 장면이 있다. <오징어 게임>에서 성기훈(이정재)과 조상우(박해수)가 종소리가 울리자 줄다리기 멤버를 구하기 위해 나선 장면과 유사해 보인다.

국립현대무용단의 <이것은 유희가 아니다> 연습 장면. 국립현대무용단 제공

온라인 영상으로만 공개된 지난해 작품과 전반적인 구성은 같지만 세부에선 조금씩 차이가 있다. 14명의 무용수가 12명으로 줄었다. 무대는 초록의 링에서 무채색 런웨이로 바뀌었다. 경쟁자들이 사라질수록 무대가 더욱 좁아지면서 춤꾼들이 관객들에게 더욱 가까워지도록 꾸몄다. 남 감독은 “지난해 초연에선 경쟁에서 이긴 자들에게 초점을 맞췄다면 올해 작품에서는 패배해 사라지는 자들을 무대에 자주 소환하게 될 것”이라며 “휘몰아치는 경쟁들에서 한 걸음 물러서서 시야를 넓히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생존자와 탈락자의 서사를 두루 살펴보면 작품 주제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공연이 이루어지는 60분 동안 춤꾼들은 모두 11차례 생사가 걸린 춤의 승부를 겨룬다. 도입부에 첫 탈락자가 무대 밖으로 질질 끌려나가면 살아남은 11명의 무용수가 원을 그리며 원초적인 군무를 추는 대목이 특히 인상적이라고, 보조안무를 맡은 안영준씨는 전한다.

한국 현대무용 <이것은 유희가 아니다> 공연 포스터.

인간끼리의 경쟁뿐만 아니라 인간이 자연과 맺는 관계에 대한 은유도 무대 디자인 속에 살짝 숨겨져 있다. 바닥 전체를 차지하던 초록색 댄스플로어가 점점 검은색으로 덮여나간다. 자연의 생명력을 상징하는 초록빛이 가려지고 덮이는 설정을 통해 인간의 무감각 속에서 서서히 훼손된 생태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았다고 남 감독은 ‘안무가의 글’에서 설명한다.

남 감독은 1980년 프랑스에서 장고댕 무용단 단원으로 활동했고, 귀국 이후엔 현대무용단 ‘줌’(Zoom)을 창단해 창작 활동을 펼쳤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창작과 교수로 안무인 양성에 기여하며, 미국 춤 일변도의 한국 현대무용에 새로운 길을 연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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