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치형의 과학 언저리] 대통령에게 필요한 과학

한겨레 입력 2021. 10. 21. 17:56 수정 2021. 10. 23.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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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치형 과학의 언저리]대통령은 과학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이 꽤 많다. 대통령이 반드시 수소와 물의 화학식을 알고 수소를 만드는 방법을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국민 여론이 팽팽하게 갈릴 것이다. 그러나 화학식을 모르는 대통령일지라도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은 과학에도 통치 철학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전치형|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10월18일 부산에서 열린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경선 토론회에 나온 홍준표 의원, 원희룡 전 제주지사 사이에 수소와 물에 대한 과학 지식 문답이 오고 갔다. 대통령 임기 5년 내에 부산 울산 경남 지역에 수소 경제를 만들겠다는 홍 의원의 발언에 대해 원 전 지사가 “수소를 만들어야 수소 경제가 되죠”라며 “수소 뭘로 만들 겁니까”라고 물었다. 당황한 홍 의원이 “수소 H₂O인가 그거 아니에요?”라고 답하자 원 전 지사는 H₂O는 수소가 아니라 물의 구성을 나타내는 화학식이라는 사실을 지적했다. 수소와 물의 화학적 구성도 혼동하는 사람이 어떻게 대통령으로서 수소 경제를 구현할 수 있겠느냐는 질책이었다.

토론회가 끝난 뒤 홍준표 의원은 페이스북에 억울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수소의 과학적 실체가 무엇인지 수소는 어떻게 만드는지 다 이해하는 것이 대통령의 일은 아니라는 항변이었다. 그는 H₂O가 수소인지 물인지 따지는 것은 “미세한 각론으로 골탕을 먹이는” 원희룡 전 지사의 트집잡기라고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대통령은 각 분야 통치 철학만 확고하면 되지 않습니까? 미세한 각론까지 다 알아야 한다면 그런 대통령은 지구상에 아마 없을 겁니다”라고 주장했다. 수소를 뭘로 만드느냐는 질문에 “수소 경제를 하려면 수소 경제 시스템을 만들어야 되겠죠”라고 두리뭉실하게 답한 자신이 오히려 “미세한 각론”에 매몰되지 않는 대통령감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었다.

화학식 H₂O가 물을 뜻한다는 것을 과학 시간에 배워서 기억하는 사람들은 잠시 웃고 넘어가면 되겠지만, 이 설전 아닌 설전은 대통령과 과학의 관계에 대한 오래된 질문을 상기시킨다. 대통령은 과학을 얼마나 알아야 하는가? 과학의 어떤 영역을 얼마나 자세하게 이해해야 대통령직을 잘 수행할 수 있는가? 홍준표 의원의 주장대로 H₂O가 수소가 아니라 물이라는 사실이나 수소를 만드는 기술적 방법이 ‘미세한 각론’에 불과하다면 대통령이 통치 철학의 일부로 꼭 알아야 할 과학의 총론은 무엇인가?

대통령에게 필요한 과학의 총론 하나는 과학이 각종 공약을 달성하기 위해 맘대로 호출해서 투입하면 되는 해결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과학은 수소 경제가 부산 울산 경남에 꼭 필요하며 그것을 반드시 5년 안에 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 수소의 성질을 밝혀내고 수소를 에너지원으로 쓸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과학의 성취이지만, 수소를 경제와 삶에 연결시키는 것은 과학이 아니라 정치다. 적당히 과학적으로 들리는 ‘수소 경제’라는 구호를 내걸면서 과학자들을 동원하고 국민의 환심을 구하는 대신 대통령은 어떤 과학이 어떤 경제의 가능성을 보여주는지 질문하고 그 과학과 경제가 자신의 통치 철학에 부합하는지 판단해야 한다.

대통령은 또 과학의 목적이 부동산 개발을 하듯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단기간에 최대의 이익을 쓸어가는 것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총론으로 삼을 수 있다. 과학은 때로 개발이익 비슷한 것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대통령은 그보다 과학이 공익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과학은 수소 경제를 창출하여 지역을 들썩거리게 하는 것 외에도 팬데믹과 기후 위기 속에서 국민과 국토가 최소한의 평온을 지키도록 돕는 것에서 공적인 존재 의의를 확인한다. 과학이 제공하는 자연과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는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증진하고 한반도의 환경을 살 만한 상태로 유지하는 대통령의 임무를 수행하는 데에 필수적이다. 즉 대통령은 과학으로 개발이익을 노리는 대신 공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

대통령은 과학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이 꽤 많다. 대통령이 반드시 수소와 물의 화학식을 알고 수소를 만드는 방법을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국민 여론이 팽팽하게 갈릴 것이다. 그러나 화학식을 모르는 대통령일지라도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은 과학에도 통치 철학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대통령이 어떤 과학 분야에 투자하거나 어떤 연구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할 때 그것은 모든 국민에게 동등한 혜택을 주는 중립적인 결정이 아니다. 세금으로 투자하고 지원하는 과학에는 수익만이 아니라 사회적 결과와 정치적 책임이 뒤따른다. 대통령 후보들이 어떤 과학으로 어떤 통치를 하려 하는지 지켜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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