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미전실 없다..삼성, 준법경영·계열사 시너지 이끌 컨트롤타워 예고

임진혁 기자 2021. 10. 21.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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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삼성의 시간- <하> 속도내는 뉴삼성 지배구조]
총수일가 이익 창출 답습 땐 정당성 사라져
'신사업 발굴·M&A' 등 명확한 존재 이유 설정
반도체 등 경쟁력 제고·ESG경영 강화 초점
[서울경제]

“경영권 승계 문제로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회사의 가치를 높이는 일에만 집중하겠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해 5월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권고를 받은 뒤 이 같은 의지를 밝혔다. 이르면 이달 말 미국 출장을 계기로 본격적인 총수 경영에 나서는 이 부회장은 반도체 같은 주력 사업 관련 투자 결정, 인수합병(M&A)과 더불어 컨트롤타워를 재편하고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등 삼성그룹의 내실 다지기에도 박차를 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작업의 핵심은 이 부회장의 발언에 녹아 있듯 59개 계열사의 시너지를 극대화하면서 기업 본연의 임무와 준법 경영에 충실한 지휘 체계 마련이다.

21일 재계와 학계 등에 따르면 삼성 준법감시위는 지난달 말 발간한 2020년 연간보고서에서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를 예고했듯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다. 시장의 관심은 그룹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가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지에 쏠린다. 삼성은 2017년 3월 그룹 총괄 조정 기능을 하던 미래전략실을 해체했다. 삼성은 방대한 사업 조직과 계열사를 보유한 만큼 업무 중첩을 막고 시너지를 내기 위해 △삼성전자 사업지원팀 △삼성생명 금융경쟁력제고팀 △삼성물산 EPC(설계·조달·시공) 경쟁력강화팀 등 업종을 중심으로 전담 조직(TF)을 마련했는데 적극적으로 그룹의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고 총괄하던 미전실과 달리 각 TF는 방어적 기능에 초점이 맞춰졌다.

지난 4년 이 체제 속에 이 부회장의 공백기가 겹치며 삼성그룹 전체도 현상 유지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 단적인 예가 M&A이다. 2016년 하만 인수를 끝으로 신규 성장 엔진 장착 소식은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는 대규모 M&A는 그룹 차원의 전략적 결정과 오너의 결단으로 이뤄지는데 그럴 만한 토양을 갖추지 못한 것이다.

이에 따라 이 부회장의 경영 복귀에 발맞춰 그룹 차원의 전담 조직 신설에 대한 가능성이 제기된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지휘자 없는 오케스트라는 있을 수 없듯이 이재용(오너) 중심의 컨트롤타워 역시 부정할 수 없다”며 “삼성은 반도체·배터리 등 경쟁 격화와 미국 정부의 정보 공개 요구 등 안팎의 압박이 거센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새로 만들어질 컨트롤타워가 과거 전략기획실이나 미래전략실을 그대로 답습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미전실이 오너 일가의 승계 업무에 주력하느라 비판이 제기됐고 삼성 스스로 해체한 미전실을 같은 형태로 불과 4년 만에 재건하기에는 부담도 상당하다. 이 때문에 통합 컨트롤타워의 근본 목적과 포괄 범위는 기존 미전실과 상당한 차이가 날 것으로 분석된다. 우선 철저한 사업 시너지와 신규 사업 발굴 등으로 조직의 존재 이유가 명확히 설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과거 미전실은 법적 실체도 없었고, 총수 일가 이익 창출에 집중했다”며 “

계열사별 시너지를 통해 경쟁력을 높이는 데 힘쓰고 법과 제도적 감시를 받는 컨트롤타워가 만들어져야 정당성도 찾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같은 맥락에서 새 컨트롤타워가 복원되더라도 준법위가 이 조직을 감시할 수 있는 2중 견제 장치가 나올 가능성도 점쳐진다.

기능 면에서는 무리하게 모든 계열사 기능을 통합하기보다는 전자와 금융 등 주요 업종별로 현재의 TF 기능을 강화하는 중간 조직의 힘을 키우되 그룹 총괄 조직은 이 부회장의 의사 결정을 지원하는 슬림한 형태가 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계열사별 색채가 다른 데다 금산분리까지 고려하면 중간지주 형태의 컨트롤타워가 더 자연스럽다”며 “삼성의 규모가 과거보다 훨씬 커졌다는 점에서 이를 모두 아우르고 통합하는 단일 조직은 능률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 부회장의 역할에 대해서도 “담대한 기획을 통해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는 사업에 도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컨트롤타워 재편과 더불어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의 흐름에 맞춰 이사회 기능 강화 등 계열사의 자율성을 높이는 방식도 검토될 것으로 전망된다. 중장기적으로는 지주사 개편도 다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 당장은 이슈에서 벗어났지만 보험사의 자회사 주식 보유 비중 평가 기준을 ‘취득 당시 원가’에서 ‘현재 시가’로 바꾸는 보험업법 개정안이 급물살을 탈 경우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을 처분해야 한다. 이 경우 삼성물산을 중심으로 한 지주사 개편이 불가피하다. 이 부회장 이후 총수 경영 체계를 어떻게 바꿀지도 논의돼야 한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17일(현지 시간) ‘삼성전자 최첨단 반도체 패권을 노린다’라는 특집 기사를 통해 “삼성은 역사에 있어 중요하고 새로운 시대를 맞았다”며 “이 부회장은 변화를 가속화하려는 분명한 의지를 보이는데, 앞으로 과감하고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고 평가했다.

임진혁 기자 liber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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