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BI가 닭 트레이닝을? 전문가들이 '치킨캠프'를 찾은 이유

김지숙 2021. 10. 21.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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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숙이 만난 애니멀피플][애니멀피플] 김지숙이 만난 애니멀피플/테리 라이언·이순영
긍정강화 위해 닭 트레이닝..동물원 사육사 등 참가
"닭은 영리한 동물, 과학적·긍정적 방식에만 반응해"
16일 경기 고양시 씨티평생교육원에서 진행된 ‘치킨캠프’에서 이순영 교수가 트레이닝 시범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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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자 위에 닭이 올라왔다. 60초 타이머가 눌렸다. 참가자가 붉은 점이 그려진 타깃봉을 제시하자 닭이 관심을 보이며 머리를 숙였다. 그때 ‘딸깍’하는 소리와 함께 닭에게 모이가 주어졌다. 닭이 모이를 쪼아 먹자 그릇은 재빨리 치워졌다. 아쉬운 듯 두리번거리는 닭의 머리 앞에 다시 타깃봉이 등장했다. 닭은 자연스레 먹이를 숙였고 다시 딸깍 소리와 함께 먹이가 주어졌다.

같은 동작이 두어 번 반복되자 이제는 닭이 먼저 움직였다. 닭은 고민 없이 타깃봉의 붉은 점을 쪼았다. 딸깍! 붉은 점을 쪼면 먹이가 나온다는 것을 아는 것 같았다. ‘우아~’ 참가자들 사이에서 낮은 감탄이 흘러나왔다. 고작 1분 사이에 닭이 ‘클리커 트레이닝’(동물에게 특정 행동을 유도하고 보상하는 방식의 훈련법)을 완벽히 이해하고 수행한 것이다.

3일 만에 타깃 적중…“너무 빠른 닭들”

지난 16일 경기 고양시 반려동물 전문교육기관 씨티평생교육원에서 열린 ‘치킨캠프’를 찾았다. 치킨캠프는 미국 워싱턴 주립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세계적인 동물행동 전문가 테리 라이언(Terry Ryan) 트레이너가 1980년대부터 미국, 독일, 일본 등 세계 곳곳에서 운영하고 있는 동물행동 교육 프로그램이다. 국내서 처음 열린 이번 코스는 씨티평생교육원 이순영 교수의 지도로 14~17일 나흘간의 일정으로 진행됐다.

닭들은 특정 색을 쪼는 것뿐 아니라 링이나 장애물 통과, 신발끈 풀기 등의 고난이도 훈련도 소화해낸다. 테리 라이언 제공

교육 사흘 째인 이날 오전 일정은 미국 워싱턴주에 있는 라이언의 온라인 강의로 시작했다. 화상회의 프로그램 줌(Zoom)으로 현장과 연결된 그는 ‘훈련 진도’부터 확인했다. 참가자 한 명과 닭 한 마리가 파트너가 되고, 2인 1조로 서로의 트레이닝을 돕는 형식이었다. 치킨 트레이닝은 주로 반려견 트레이너를 교육할 목적으로 고안됐지만 해외서는 여러 동물 전문가들이 참가하고 있다. 이날 참가자 10명도 모두 일상적으로 동물을 돌보는 동물원 사육사, 반려견 미용사, 훈련사 등이었다.

전날까지 “닭들이 너무 빨리 움직여서 참가자들이 어려움을 겪었다”는 이순영 교수의 말처럼 닭들은 정말 빨랐다. 움직임도 빨랐지만 습득력도 무척 빠른 것처럼 보였다. 이날은 시작부터 거의 모든 닭들이 쉽게 타깃을 쪼고 있었다. 참가자들의 움직임도 그만큼 재빨랐다. 닭이 타깃을 쪼기가 바쁘게 클릭 소리와 함께 모이를 급여했다.

닭들은 보통 30~60초 가량 케이지 밖에서 트레이닝을 받는다. 이순영 제공

통상 한 번에 30~60초 정도 진행되는 트레이닝에서 닭들은 의외의 집중력을 발휘했다. 내심 닭이 탁자 아래로 뛰어내리거나 움츠러들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케이지 안에서 구구거리던 닭들이 탁자에만 올라오면 쉴새없이 머리를 움직이며 신중하지만 정확하게 타깃에 다가갔다.

왜 닭인가

이날 타깃봉을 쪼는 데 성공한 닭들에게 다음 목표로 제시된 것은 각기 색이 다른 디스크 주 빨간색을 쪼도록 하는 것이었다. 미리 만들어 둔 상자 터널을 오가는 것도 추가됐다. 과연 닭들이 이런 고난이도의 훈련을 해낼 수 있을까. 라이언 트레이너와 이순영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닭들은 이보다 더 어려운 동작도 훌륭히 해내고 있었다. 가령 공중의 링을 통과하거나 운동화 끈을 푸는 것도 가능하다고 했다.

세계적인 동물행동 전문가 테리 라이언(Terry Ryan) 트레이너(왼쪽)는 1980년대부터 미국, 독일, 일본 등 세계 곳곳에서 치킨 캠프를 운영해 오고 있다.

테리는 그러나 이런 닭들의 묘기가 치킨 트레이닝의 목표는 아니라고 했다. 이날 화상 인터뷰에서 테리는 닭은 절대 강압적인 방식으로 훈련할 수 없는 동물이라고 했다. “닭은 학대나 강압이 일어나면 그냥 날아가 버립니다. 사람이 함부로 대해도 여전히 사람을 참아주고 사랑하는 개와는 달라요. 닭을 훈련하려면 더 긍정적이어야 하고, 더 과학적이어야 하죠.”

1970년대 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하며 반려견 트레이너를 꿈꿨던 그는 당시 주류였던 ‘서열 이론’(Peck Theory)에 의문을 가진 사람이었다. 목줄을 잡아채고 강압적인 방식으로 개들을 훈련시켜 봤지만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대학 실험실에서 쥐와 비둘기를 실험할 때 쓰는 방법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실험실은 이미 보상을 통한 긍정강화 방식으로 동물에게 원하는 행동을 얻고 있었다.

트레이닝을 받는 닭들은 산란계, 관상용 닭 등 여러 종이다. 평소에는 농장 등에서 지내다가 교육 기간에만 씨티교육원에서 닭들을 위해 따로 마련한 ‘닭 보금자리’로 와서 지낸다.

왜 닭이었을까. 테리는 닭이 “개처럼 똑똑하지도 않고 사랑스럽지도 않은 동물”이어서 적합해 보였다고 했다. 개와 사람처럼 감정 이입, 소통이 쉽지 않은 동물인 점에서 더 어려운 대상을 택한 것이다. ‘멍청한 동물’이란 통념 탓에 선택한 것은 아닌가 라는 질문에 그는 닭은 절대 멍청하지 않다고 했다. “제 경험상 닭들은 굉장히 똑똑해요. 보통 이런 4일짜리 캠프에 참가했던 닭들은 1년이 지난 뒤에도 클릭 소리에 반응을 해요.” 물론 매일 밥을 주는 주인도 알아본다.

“중요한 건 터널 통과가 아니다”

이순영 교수는 얼마 전 119구조센터를 통해 구조한 산란계 ‘일구’에 대해 이야기했다. “습득은 일구가 가장 빨라요. 산란계이다 보니 먹는 걸 좋아하죠. 식욕은 여러 가지 훈련 동기 중에 활용하기 좋은 요소입니다.”

그는 재학생과 함께 일구의 트레이닝에 공을 들이고 있다. 흔히 ‘삼계탕의 재료’로만 여겨지는 닭도 느끼고, 생각하고, 자기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존재란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테리 라이언은 “물리적으로 훈련할 수 없는 닭을 훈련해봄으로써 다른 동물들에게도 강압이나 외압이 필요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물리력으로 맘대로 움직일 수 없는 닭이야 말로 반려견이나 다른 동물들에게도 외압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했다. 때문에 라이언이 진행한 치킨캠프에는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참가한다. 동물원 사육사, 군견 핸들러뿐 아니라 미 연방수사국(FBI)나 초등 교육자, 원양어선 선원 등이 수강한다. 긍정 강화는 비인간 동물뿐 아니라 인간 동물간의 소통에도 중요한 요소기 때문이다.

“치킨 트레이닝에서 중요한 점은 닭들이 터널을 통과하느냐 마느냐가 아니예요. 중요한 건 각기 다른 방식으로 행동하는 동물들이 어떻게 긍정적으로 소통하고 움직일 수 있는 가 하는 것이죠.”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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