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은 실패담이 필요하다

한겨레 2021. 10. 21.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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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실패한 작품 끌어안기, 다음 작업 이어나가기'라는 제목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할 기회가 있었다.

실패한 작업이라는 게 과연 있을까.

그렇기에 반짝이는 성공담뿐만 아니라 쓰디쓴 실패담들이 세상에 좀 더 많이 공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패를 독립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다음을 이어나가는 것은 어느 누구라도 계속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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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창]

[삶의 창] 정대건|소설가·영화감독

얼마 전 ‘실패한 작품 끌어안기, 다음 작업 이어나가기’라는 제목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할 기회가 있었다. 경기문화재단에서 진행하는 ‘예깃거리’(예술+이야깃거리)라는 경험 공유 프로그램의 일환이었다. 나는 ‘10년간 영화를 만들며 보낸 시간과 창작자로서 정체성이 사라질 위기에서 소설가가 되기까지의 경험’을 나누겠다고 기획서를 제출했다.

나는 이런 자리가 생기기를 내심 기다리고 있었는데 내가 겪은 실패가 가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예술 분야 비전공자로 창작을 시작하면서 겪은 시행착오가 유독 많았는데, 그 과정을 통해 체득한 값진 배움들은 다시 영화를 만들지 않으면 대개 쓸모가 없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현장에서 수십명의 배우·스태프들 앞에서 잘 모르겠는데도 확신이 있는 척하는 것.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스태핑에 대한 것. 모두 내가 어려워하고 잘해내지 못하던 것들이다.

피, 땀, 눈물을 흘리며 혹독하게 배웠기에 그것이 아무런 쓸모를 발휘하지 못하는 게 괴로웠다. 그렇다고 훌륭한 결과물을 낸 것이 아니었기에 내게 뭔가를 물어오는 사람도 없었다. 나는 쓴 경험에서 체득한 것들의 쓰임새를 바랐다. 힘들었던 기억을 꺼내고 발화하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과거를 떠나보낸 것처럼 후련해지는 게 있었다. 그리고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분들 중 한분이 남긴 글을 발견했다. ‘진행자는 실패한 게 아닌 것 같은데 본인의 기준이 높아서 실패라고 여기는 것 같다’는 후기였다. 나는 나 자신에게 혹독하기만 한 비평가였던 것일까.

실패라는 게 어떤 기준에 의한 실패인가. 실패한 작업이라는 게 과연 있을까. 그런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지만, 세상에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작업들도 엄연히 존재한다. 관객 수나 수익, 평론가나 관람객들의 평가, 업계에서 다음 작업의 기회를 부여받지 못한 것 등 여러가지 기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그중에서 창작자 자신의 기준이 가장 정확할 것이다. 자신이 만족스러운 작품을 완성하지 못했다는 것 말이다.

“성공과 실패 중에 택일을 해라 너”. <쇼미더머니> 시즌9의 최고 히트곡인 ‘브이브이에스’(VVS)의 가사다. 둘 중에 택일하라면 실패를 택할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실패는 인간을 성숙하게 한다’와 같은 성찰의 말들이 존재해도 성공은 할수록 좋은 것이고, 겪지 않을 수만 있다면 실패는 다시는 맛보고 싶지 않은 쓰디쓴 것이다. 그러나 당연히 어느 누구도 성공만 지속하며 살 수는 없고 실패와 맞닥뜨리게 되어 있다. 그렇기에 반짝이는 성공담뿐만 아니라 쓰디쓴 실패담들이 세상에 좀 더 많이 공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공한 사람들의 인터뷰 같은 것은 세상에 많이 존재하지만 실패담은 좀처럼 찾기가 어렵다.

우리가 수많은 성공담을 보며 그처럼 되고 싶고 배울 점을 찾듯, 실패담과 시행착오에서도 분명히 값진 배울 점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실패를 이야기하는 것은 발화자에게도 도움이 된다. ‘실패=나 자신’으로 두지 않고, 이야기화하는 과정에서 실패와 자신을 분리하여 거리를 두게 된다. 이는 자존감과도 직결된다. 실패한 관계, 실패한 연애와 인생 모두 마찬가지일 것이다. 실패를 독립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다음을 이어나가는 것은 어느 누구라도 계속해야 한다.

지금은 추문으로 불명예스러운 창작자가 되어버린 감독이지만, 과거에 우디 앨런의 작업을 동경하던 때가 있었다. 수많은 영화를 만든 그는 다큐멘터리에서 꾸준히 이어나가는 작업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번 작품이 아쉬움이 있어도 다음 작품이 좋을 것이라는 체득에서 온 확신을 밝혔다. 그런 꾸준한 자세만큼은 누구나 배우고 싶을 것이다. “한번의 실패와 영원한 실패를 혼동하지 말라”는 피츠제럴드의 말을 되새기면서 오늘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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