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값은 金 0.25g, 숙박은 0.5g.. 1세기 전으로 돌아간 베네수엘라

오경묵 기자 입력 2021. 10. 21. 16:15 수정 2021. 10. 21.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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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서 한 노점상이 볼리바르 구권을 탁자 위에 올려놓은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호텔 1박은 0.5g, 중국 음식점 2인 점심 가격은 0.25g, 이발은 0.125g. 중남미의 베네수엘라 남동부 투메레모에서 통용되는 시세다. 단위는 금(金). 살인적 인플레이션때문에 화폐가 아닌 금이 거래에 쓰이는 것이다.

블룸버그통신은 20일(현지 시각) ‘밥값과 이발비를 내기 위해 금 조각을 떼어내는 베네수엘라 국민들’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블룸버그는 “전 세계 다른 곳에서는 1세기 전부터 금을 교환수단으로 쓰지 않고 있지만 베네수엘라에서는 요즘 다시 (금을 이용한 거래가) 부상하고 있다”고 했다. 투메레모에 사는 호르헤 페냐는 “뭐든 금으로 살 수 있다”고 블룸버그에 말했다.

금으로 거래하는 경우가 많아 매번 무게를 재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사람들이 익숙해진 것이다. 3개의 작은 조각은 0.125g 정도 되고, 미국 달러로 환산하면 5달러쯤 된다. 주민들은 가치가 거의 없는 지폐에 금 조각을 싸서 들고 다닌다고 한다.

투마레로에서 작은 호텔을 운영하는 오마르는 숙박비를 금으로 받고, 직원들 월급도 금으로 준다. 투숙객 가운데 3분의 2가 금으로 방값을 낸다고 한다. 금이 없으면 달러나 다른 외화도 받는다. 오마르는 “(볼리바르를) 법적으로 거부할 수 없어 마지못해 받고, 가치가 떨어지기 전에 재빨리 써버린다”고 했다.

화폐 대신 금이 거래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은 베네수엘라의 법정화페인 볼리바르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것이 원인이다. 수년째 경제 위기가 이어지고 있는 베네수엘라에서는 한때 연간 물가상승률이 수백만% 치솟았다. 현재도 수천%에 이른다. 베네수엘라는 수년 전부터 공식적인 물가상승률을 발표하지 않고 있다.

금만 거래에 쓰이는 것은 아니다. 지역에 따라 ‘화폐’는 달라진다. 남부 브라질 접경 지역에서는 브라질 헤알화가 사용되고, 콜롬비아와 맞닿은 서쪽에서는 콜롬비아의 페소화가 쓰인다. 카라카스 등 대도시에서는 미국 달러가 주로 사용된다. 블룸버그는 “유로화와 암호화폐도 일부 지역에서 틈새 시장을 보유하고 있다”고 했다.

베네수엘라 화폐인 볼리바르를 여전히 사용하는 것은 빈곤층이다. 블룸버그는 “달러나 다른 통화에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사람들만 여전히 볼리바르를 쓴다”고 했다. 베네수엘라 경제학자인 루이스 비센테 레온은 “사람들은 볼리바르를 더는 신뢰하지 않는다. 부의 저장이나 회계, 교환 수단으로 더는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이달 초 리디노미네이션(화폐 단위 변경)을 단행했다. 100만볼리바르가 1볼리바르로 바뀌었다. 2008년에 1000대 1, 2018년에 10만대 1의 리디노미네이션을 한 뒤 세 번째다. 화폐 사용을 편리하게 만들기 위한 조치라는 게 베네수엘라 정부의 설명이지만, 화폐 개혁의 효과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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