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연주의 전설을 경험하다..부흐빈더 '디아벨리 프로젝트'

임동근 2021. 10. 21.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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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돌프 부흐빈더 콘서트 [빈체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나성인 객원기자 = 일흔여섯 살 대가의 손과 혼은 여전히 음악으로 가득 차 있었다.

베토벤 피아노 음악의 최고 거장 루돌프 부흐빈더(75)는 지난 20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베토벤의 '디아벨리 변주곡'과 안톤 디아벨리를 주제로 한 여러 작곡가의 변주곡을 무대에서 선보였다.

이날 공연은 베토벤 당대 고전 시대와 오늘을 잇는 대단한 기획이었다. 본래 베토벤 탄생 250주년인 지난해 예정됐다가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미뤄졌던 만큼 더 소중한 무대였다. 함께한 관객들은 역사에 동참했다고 느낄 만했다.

이번 연주회는 베토벤과 현대를 연결하는 의미를 지녔다. 부흐빈더는 1부 첫 스테이지에서 '새로운 디아벨리 변주곡'을 선보였다.

이 곡은 로디온 셰드린, 탄 둔, 도시오 호소카와, 크리스티안 요스트, 막스 리히터, 외르크 비트만, 브레트 딘, 요하네스 마리아 스타우트, 레라 아우에르바흐, 필립 마누리, 브래드 러브먼 등 현존 최고 현대음악 작곡가 11명에게 베토벤이 주제로 삼았던 디아벨리 왈츠로 변주곡을 의뢰한 것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동시에 클래식 음악이 생명력을 다한 음악이 아니라 여전히 창조적 역동성을 지니고 있음을 더 많은 관객에게 알리는 좋은 계기였다.

각각의 변주곡은 디아벨리 주제의 여러 요소를 분해, 추상화, 생략, 과장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뒤틀어 심오한 화성과 리듬, 타격과 잔향, 음악적 형태와 판타지를 다채롭게 들려줬다.

디아벨리의 가벼운 왈츠 주제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작곡가들은 베토벤을 의식한 듯 그의 유머, 우악스러움, 신비로움, 고통, 즉흥성, 메트로놈 등을 연상시키는 음악적 오마주를 펼쳐놓았다.

베토벤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는 부흐빈더는 각 작품에서 베토벤의 향취를 풀어내 관객에게 의미 있는 기념의 시간을 선사했다.

1부 두 번째 스테이지에서는 디아벨리 주제에 의한 여러 작곡가의 작은 변주곡들이 이어졌다.

1824년 작곡가이자 출판업자인 안톤 디아벨리는 간단한 왈츠 주제를 만들고 당대 빈 음악계에서 이름이 알려진 작곡가들에게 변주곡을 의뢰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가 섭외한 50명의 작곡가 중에는 베토벤을 비롯해 모차르트의 제자 훔멜, 베토벤의 제자 체르니, 오페라 작곡가 크로이처, 당대 피아노 비르투오소 이그나츠 모셸레스, 작곡계의 신예로 떠오르던 슈베르트가 있었고, 당시 열네 살에 불과했던 프란츠 리스트도 포함됐다.

채 1분이 안 되는 디아벨리의 왈츠는 때로는 기교적으로, 때로는 감각적으로, 때로는 보다 리드미컬하게 변형됐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이들 작곡가의 변주곡은 디아벨리의 의도대로 왈츠 특유의 가벼움과 즐거움, 약간의 기교를 가미한 빈 스타일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다만 슈베르트의 쓸쓸한 변주곡만은 특유의 고상함과 깊은 여운을 들려줬다.

2부 드디어 베토벤의 대작 '디아벨리 변주곡'이 연주됐다. 베토벤은 빈을 대표하는 대가로 본래 디아벨리의 모음 악보에 실을 하나의 변주곡만을 쓰면 됐지만, 그의 착상은 지칠 줄 모르고 뻗어나가 무려 33곡의 변주곡을 탄생시켰다. 작품이 나왔을 때는 이미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를 낸 지 3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그러니 '디아벨리 변주곡'은 베토벤의 마지막 피아노 대작에 해당한다.

부흐빈더의 연주는 경이로움 자체였다. 주제 이후에 펼쳐지는 변주곡들은 마치 베토벤과 더불어 피아노 음악이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시간 여행같이 느껴졌다.

초반부에서는 베토벤 초기의 재기발랄한 착상이 돋보이는 유희적인 변주곡이 많았다면 가운데 부분으로 들어서면서 베토벤 중기 소나타 이후의 대담한 리듬과 강렬한 표현력이 두드러진다.

부흐빈더의 연주는 감상에 빠져 있을 틈이 없을 정도로 능수능란했고, 기교적으로 훌륭했다. 45분 이상 장대하게 흐르는 이 대곡에서 흠잡을 만한 찾기 어려웠다. 속주 부분에서 양손의 밸런스가 잠시 무너졌지만 지극히 가볍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 대곡을 실연으로 감상하면서 이 정도 밀도와 깊이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행운이라 할 수 있는 음악적 경험이었다.

곡의 대미를 장식한 마지막 변주들은 가히 경지에 이른 연주라 할 만했다. 31번 단조 변주곡의 정교한 터치와 깊은 호흡, 장대하고 거침없는 32번 변주의 푸가, 그리고 마치 하늘로 승천하는 듯한 영적 정화를 느끼게 하는 마지막 변주에서 베토벤 말기 양식의 아름다움이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명연이었다.

이날 공연장을 찾은 관객은 베토벤과 부흐빈더의 인생 전체를 반추하기에 충분하지 않았을까.

lied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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