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햇발] '기후 세대'의 이유 있는 '글로벌 파업' / 이종규

이종규 2021. 10. 21. 15:1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아침햇발]

지난해 9월24일 뉴욕에서 벌어진 ‘글로벌 기후 파업’ 모습. 펼침막에 보이는 “시스템을 전복하라”(#Uproot The System) 구호가 지난해 파업의 주제였다. EPA 연합뉴스

이종규 논설위원

1987년 유엔 세계환경개발위원회는 ‘우리 공동의 미래’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지금은 보편적으로 쓰이는 ‘지속가능 발전’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제시한 보고서다. 위원회를 이끈 그로 할렘 브룬틀란 전 노르웨이 총리의 이름을 따 ‘브룬틀란 보고서’로도 불린다. 보고서는 ‘지속가능 발전’을 “미래 세대가 자신의 필요를 충족할 능력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현재의 필요를 충족하는 발전”이라고 정의했다. 기후변화협약이 처음으로 채택된 1992년 유엔환경개발회의(일명 ‘리우 회의’) 논의의 토대가 된 것도 이 보고서다.

그로부터 34년이 흐른 올해 4월 독일 헌법재판소는 기후운동 역사에서 매우 의미 있는 결정을 내렸다. 온실가스 감축 부담을 미래 세대에게 떠넘기는 것은 위헌이라는 결정이다. 온실가스를 줄이려면 시민의 자유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는데, 그런 부담을 훗날로 미루면 젊은 세대의 기본권이 침해된다는 것이다. 부담을 공평하게 나누어 져야 한다는 의미다. 온실가스 배출을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55% 줄이도록 한 기후변화법이 불충분하다며 환경단체들이 낸 위헌 소송에서 나온 결정이다. 이 결정에 따라 독일 정부는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를 65%로 높였다.

환경운동가들이 “역사적 판결”이라고 평가한 이 결정은 ‘세대 간 정의’라는 측면에서 ‘브룬틀란 보고서’와 궤를 같이한다. 이 보고서에 이런 구절이 담겨 있다. “우리는 ‘환경자원 계좌’에서 너무 많은 자원을 너무 빨리 인출하고 있다. 이것이 현 세대에게는 이익이겠지만, 우리 아이들은 빚을 물려받게 될 것이다. 우리는 빚을 갚을 의사도 없으면서 미래 세대로부터 ‘환경 자본’을 빌려 쓰고 있다.”

인류가 지금과 같은 삶의 방식을 유지하려면 지구가 1.7개 필요하다고 한다. 환경단체인 세계생태발자국네트워크가 분석한 결과다. 인류가 지구의 생태 용량을 훨씬 초과하는 자원을 쓰고 있다는 얘기다. 그 초과분은 미래 세대의 몫을 미리 당겨 쓴 것과 다름없다. 현 세대가 안락한 삶을 누리려고 미래 세대의 ‘필요’ 충족을 위해 남겨둬야 할 자원까지 끌어다 쓰는 것은 ‘세대 간 정의’를 훼손하는 일이다.

‘세대 간 정의’는 기후위기 대응에서도 중요하다. 탄소 배출에 대한 책임, 그에 따른 편익과 부담 측면에서 ‘세대 간 불평등’이 엄존하기 때문이다. 기성 세대는 화석연료 덕에 고도성장의 과실을 누렸다. 탄소문명의 수혜자라 할 수 있다. 물론 수년 전부터 이상기후 현상이 잦아지고 있지만, 그들에겐 여전히 ‘어쩌다 한번’의 일일 뿐이다. 날씨가 평온을 되찾으면 다시 긴 ‘기후 침묵’으로 빠져들곤 한다. 기후위기를 진짜 ‘위기’로 받아들이지 않다 보니, 기후변화 대책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이들마저 ‘(우리 경제가) 감내 가능한 수준’의 대응을 주문하다. 그로 인해 미래 세대는 ‘감내할 수 없는’ 부담을 떠안게 된다는 점은 쉽게 간과된다.

기후재앙을 유산으로 물려받게 될 젊은 세대는 처지가 다르다. 그들은 극한 기후가 일상인 시대를 살아가야 한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기후재난을 겪게 될지 모른다. 그러니 기후위기를 발등에 떨어진 불로 여길 수밖에 없다. 기후운동가 나오미 클라인은 <미래가 불타고 있다>에 이렇게 썼다. “많은 어른들은 권위주의적이고 복잡하기 짝이 없는 언어를 사용하면서 책임을 모면하려고 하지만, 청소년들은 지금 이 순간이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순간이라는 것을 외면할 줄 모른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기후운동의 맨 앞줄에 청(소)년들이 서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해마다 두세 차례 전세계에서 수십만~수백만명이 거리로 나서는 ‘글로벌 기후 파업’이 벌어지는데, 이 운동을 주도하는 이들도 청소년이다.

국내 청년 기후운동단체 활동가들은 최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기후위기 문제에서는 청년들의 목소리가 과대 대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낮게 잡아 미래 세대에게 부담을 미루고 있다는 취지에서다. 목표 지점(2050년 탄소중립)은 정해졌는데, 초반에 여유를 부리면 후반에는 숨가쁘게 뛸 수밖에 없다. 그 부담은 미래 세대의 몫이다. 독일 헌재가 ‘게으른 기후변화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한 취지도 이와 다르지 않다. ‘세대 간 정의’는 멀리 있지 않다. 기후위기의 당사자인 미래 세대의 목소리에 더 귀를 열어야 한다. 마침 올 들어 세번째 ‘글로벌 기후 파업’이 22일 벌어진다.

jklee@hani.co.kr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