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 누군가 아이폰을 손에 쥘때, 누군가는 生을 놓았다

박준호 기자 2021. 10. 21.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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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을 위해 죽다
제니 챈·마크 셀던·푼 응아이 지음, 나름북스 펴냄
[서울경제]

세계 최대의 전자제품 ‘생산’ 기업. 중국 등 전 세계에 생산 기지를 두고 아시아·아메리카·유럽 등지에 200개 이상의 자회사를 운영하는 대만 기업 폭스콘을 가리키는 수식어다. 2018년 기준으로 중국 전체 수출입에서 각각 4.1%를 차지하며 1,750억 달러의 매출을 올린 거대 기업 폭스콘은 애플의 아이폰을 하청 생산하는 업체로 유명하다. 아이폰을 비롯해 거의 모든 애플 제품을 가장 많이 만들어내는 생산 기지가 바로 중국의 폭스콘 공장이다.

'세계 최대 전자제품 생산' 폭스콘 근로자 극단적 선택 줄이어

사측은 처우개선 대신 자살방지 그물·쇠창살 등으로만 땜질

10년 지나도 가혹한 환경 여전···'원청' 애플 책임론도 지적

하지만 이 회사 이름을 전 세계 대중들에게 알린 결정적 계기는 매우 불미스러운 사건이었다. 바로 2010년에 벌어진 폭스콘 근무자들의 연쇄 자살이다. 그 해에만 폭스콘 중국 공장에서 노동자 18명이 자살을 시도해 14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이 대대적으로 전해지면서 전 세계가 폭스콘을 주목하게 됐다.

신간 ‘아이폰을 위해 죽다’는 이 사건을 계기로 폭스콘 공장의 노동 환경에 관심을 갖게 된 제니 챈 홍콩이공대 교수, 마크 셀던 미 코넬대·컬럼비아대 선임연구원, 푼 응아이 홍콩대 교수가 그 실태를 기록한 르포다. 세 연구자들은 2010년 여름부터 2019년 12월까지 중국 12개 도시에 위치한 폭스콘 제조 현장을 다녔고, 몰래 공장에 잠입해 노동자들을 인터뷰하며 그 실상을 취재했다.

톈위는 폭스콘 공장에서 일하다 열악한 환경을 견디지 못하고 기숙사에서 투신해 하반신이 마비됐다. /사진 제공=나름북스

제목인 ‘아이폰을 위해 죽다’는 전 세계 소비자들이 아이폰 최신 모델을 구매하기 위해 밤새워 줄을 서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현상을 가리킨다. 하지만 저자들은 아이폰 생산의 속도·정확성을 맞추라는 회사의 요구를 따르다가 쓰러져 가는 중국 노동자들의 현실을 이 제목에 이중적으로 담았다고 말한다.

책의 서두에 등장하는 열일곱 살 톈위(田玉)도 그 중 하나다. 톈위는 선전시에 머물던 농민공(농촌을 떠나 도시서 일하는 하급 이주노동자)으로 운 좋게 폭스콘에 취업했지만 정신적으로 버티기 어려운 상황에 내몰려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는 새벽에 일어나 밤 늦게까지 기계 소음만 가득한 채 침묵이 강요되는 공장에서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다. 쉬는 날은 고작 한 달에 하루 이틀이고, 공장 규율은 엄격했다. 친구를 사귈 엄두도 낼 수 없었다. 내부 시스템 문제로 월급마저 나오지 않게 되자 “너무 절망한 나머지 정신이 멍해졌다”는 톈위는 기숙사 건물에서 뛰어내렸다. 12일 만에 깨어난 톈위는 하반신 마비라는 현실과 맞닥뜨렸다.

견디기 힘든 작업 환경과 임금 수준에 톈위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직원들이 늘어났지만 폭스콘의 대응은 처우 개선이 아니었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 자살 방지 그물을 쳤고, 창틀에는 창살을 달았다. 전 직원에게는 회사의 면책조항이 포함된 ‘자살 금지 서약서’에 서명하게 했다. 궈타이밍 폭스콘 회장은 악령을 물리치겠다며 선전 공장에 승려를 데려오기도 했다.

폭스콘의 노동자 숙소에는 자살 방지 그물이 설치돼 있다. /사진 제공=나름북스

책은 알루미늄 분진이 초래한 중국 폭스콘 공장에서의 폭발사고, 제조 공정에 쓰이는 화학물질 중독, 장시간 근무 등 위험한 노동 환경의 문제점을 실제 근무자 인터뷰를 토대로 생생히 전한다. 장팅전은 선전시의 폭스콘 공장 건물 외부에서 조명을 수리하다 감전 사고를 당했다. 당시 절연장갑, 안전벨트, 안전모 등 보호 장비도 지급 받지 못한 채 작업하다가 발생한 감전과 추락 사고로 그는 뇌손상을 입었다. 하지만 절차적 이유로 산재 보상을 제대로 받지는 못했다. 군대를 방불케 하는 공장 내 관리 규율, 강제적인 근무지 이동과 같이 근무자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사례들도 전한다. 정부와 폭스콘이 공동으로 인턴십 제도를 이용해 학생들을 적은 임금으로 장시간 생산라인에 투입하는 현실도 소개한다.

저자들은 이 같은 열악한 환경에는 애플의 책임도 분명히 존재한다고 적시한다. 아이폰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애플이 디자인하고, 중국에서 폭스콘이 조립하는 식으로 생산된다. 공급망에서는 구매사가 하청 생산업체보다 우위에 있기 때문에, 폭스콘 경영진들 입장에서는 계약 파기를 당하지 않으려면 애플 측이 수립한 생산 목표를 달성해 내야만 한다. 이 때문에 폭스콘은 아이폰의 생산량에 맞춰 고용을 조정하고, 수주 조건에 따라서 임금 수준도 결정한다. 애플은 공급계약 과정에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디자인 등에서 통제권을 쥐고 있는 만큼 폭스콘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 설정에 있어서도 강력한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공급 업체에 행동 강령을 만들어 표준 노동시간을 준수하도록 요구했다는 애플 측 입장과 달리, 실제 노동조건을 감찰하지 않았다고 책은 지적한다.

폭스콘 공장의 노동환경 문제가 불거진 지 어느덧 10여 년이 흘렀다. 폭스콘은 여전히 중국에서 대규모 공장을 운영하고 있지만, 그 사이 노동자들의 근무 환경이 확연히 나아지지는 않았다는 게 저자들의 설명이다. 폭스콘이 중국서 운영하는 아이폰 제조공장은 아이폰13의 출시를 앞두고 최근 인력 20만 명을 새로 뽑았다. 1만8,000원.

지난 2010년 5월 대만 타이베이에서 폭스콘 공장에서 숨진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해 꽃을 놓고 있다. /사진 제공=나름북스
박준호 기자 violato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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