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네임'의 끈적거림, 그리고 아담한 한소희 액션을 보는 맛

듀나 칼럼니스트 2021. 10. 21. 11:4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예측 가능한 '마이 네임', 액션과 관계성에 주목해서 보니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넷플릭스 드라마 <마이 네임>은 소위 <무간도> 장르에 속한다. 언더커버 활동과 관련된 영화나 드라마는 이전에도 많았지만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예로 타란티노의 <저수지의 개>가 있다) <무간도>는 이 장르의 성격을 완전히 바꾸어놓은 영화였다. 이 작품은 마틴 스콜세지의 유일한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에게 원본을 제공했고 우리나라에서도 이를 따른 몇 편의 열화 버전이 나왔다. 이 정도면 <마이 네임>의 계보가 그려진다.

내용은 시놉시스만 봐도 거의 예상 가능하다. 마약밀매단 조직의 일원이었던 아버지가 살해당하고 주인공은 복수를 맹세한다. 조직의 두목은 범인이 경찰이라고 말한다. 주인공은 조직의 스파이가 되어 경찰에 잠입하고 아버지를 죽인 범인이 누구인지 수사한다. 아버지 사건의 진상이 두목이 설명한 그대로일 리가 없으니 드라마의 반전이 무엇인지도 쉽게 예측이 가능하다.

장르 관점에서 보았을 때 각본이 강한 작품은 아니다. 빈약한 장르 전통에 지나치게 페티시적 집착을 하고 있고 여기에 무게나 독창성을 더할 현실감각이 부족하다. 이야기는 다소 기계적으로 진행되는 것 같다. 특히 아버지를 죽인 진범의 정체가 밝혀지는 과정이 그렇다. 가장 중요한 목표라면 주인공의 적극적인 수사의 결과여야 하지 않을까? 많은 설정들이 이상하다. 예를 들어 주인공은 이미 경찰 내부 사람들에게 얼굴과 경력이 알려져 있다. 이 사람을 가명으로 경찰에 투입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

그러나 전편 정주행용 미니 시리즈로서 <마이 네임>의 각본은 자기만의 장점이 있다. 진행 속도가 빠르고 후반부에 이를 때까지는 뻔한 이야기에 발목이 잡히지 않는다. 적어도 장르에 익숙한 시청자들이 무엇을 뻔하다고 생각하는지는 알고 있는 것 같다. 각 에피소드의 리듬과 맺고 끊음도 좋은 편이다.

이 각본, 아니, 이 드라마 전체를 통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주인공이 여자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액션 연기의 경험이 전혀 없던 한소희가 주인공 윤지우를 연기했고 그 결과물은 인상적이다) 여성 주인공 액션물은 드문 편이 아니다. 하지만 동아시아 남자집단의 징그럽게 끈적거리는 호모소셜 관계를 바탕으로 한 조폭 이야기에 여자 주인공을 투입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렇다면 이 차별성은 어떤 차이점을 낳는가? 큰 그림은 바뀐 게 없는 것 같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 드라마의 각본은 도식적이라 늘 예측가능한 방향으로만 간다. 주인공의 성을 바꾸는 것만으로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나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익숙한 이야기를 그리는 과정과 그 질감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액션이다. 대부분 영상물의 액션이 그렇듯 판타지 액션이다(여러분은 <올드보이>의 최민식이 17:1로 싸워 이기는 게 현실적이라고 생각하는가?) 단지 <마이 네임>에서는 주인공이 계속 체급에서 밀리는 싸움을 하고 있다는 걸 꾸준히 인식하고 있고 이를 적극적으로 액션에 반영한다. 그 결과, 익숙한 설정에서도 계속 다른 동작과 다른 흐름, 다른 위기감이 나온다. 더 재미있어지는 것이다.

그 다음은 관계성이다. 동아시아 조폭물의 골격을 이루는 건 여성혐오적인 남자들만의 폐쇄적인 관계이다. 이 이야기에 여자가 들어가면 이전 영화에서는 기름칠한 톱니바퀴처럼 대충 굴려도 돌아가던 일상에 균열이 생긴다. 주인공은 조직에서 완전한 타자이며 끊임없이 성폭행의 위험에 시달린다. 이 단계에 이르면 조직원 대부분에 대한 미화는 불가능해진다. 지우는 조직에 대한 충성심 같은 건 없고 자신이 이들의 일원이라는 생각도 없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눈치없이 장르적으로 움직이는 인물인 두목 최무진(박희순)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아마 지우는 이 장르에 속한 주인공들 중 이 멋있는 척하는 중년남자 두목 스테레오타이프에 가장 냉정하게 대응하는 인물일 것이다.

아마 각본가는 더 끈적거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후반으로 갈수록 <마이 네임>은 익숙한 조폭 영화의 끈적거림으로 질퍽한 장면들이 늘어난다. 하지만 이 드라마를 만든 사람들의 의도가 무엇이건, 지우의 캐릭터성은 그 익숙함을 방해한다. 이를 대놓고 적극적으로 이용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넷플릭스]

Copyright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