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걸려 완성한 음악극 '니벨룽겐의 반지'.. 나흘에 걸쳐 공연

기자 2021. 10. 21.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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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는 베르디와 함께 근대 오페라의 최정상 작곡가지만 그 명성과는 달리 바그너의 작품은 무대에 자주 오르지 않는다.

바그너는 오페라와는 구분되는 자신의 음악극을 구현해 낼 최적화된 오페라 극장을 구상했고 마침내 독일의 바이로이트에 자신의 작품만을 위한 전용극장을 설립한다.

1876년, 바그너는 26년간에 걸쳐 완성한 대작 음악극 '니벨룽겐의 반지'를 초연했고 1882년 자신의 마지막 음악극 '파르지팔'을 초연한 후 1883년 베네치아에서 70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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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우성 남자의 클래식 저자

■ 이 남자의 클래식 -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

15살때 베토벤 교향곡 들은후

전율 느끼고 음악가 되기 결심

反정부 활동후 9년간 망명생활

오페라와 구분되는 음악극 추구

마지막 ‘파르지팔’ 초연뒤 숨져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는 베르디와 함께 근대 오페라의 최정상 작곡가지만 그 명성과는 달리 바그너의 작품은 무대에 자주 오르지 않는다.

그 이유로 우선 스케일이 보통의 오페라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 예로 바그너의 음악극(music drama) ‘니벨룽겐의 반지’는 장장 나흘에 걸쳐 공연되며 전체 연주시간은 17시간에 달한다. 당연히 작품을 감당할 성악가들을 구하기도 어렵고 큰 스케일의 무대와 미술을 준비하는 것도 상당한 비용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

바그너는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경찰서기인 아버지의 9남매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적 바그너의 꿈은 음악가가 아니라 셰익스피어 같은 대문호였고, 이미 14세의 나이에 ‘로이발트’란 비극을 집필하기도 했다.

그러나 15세가 되던 해, 라이프치히의 게반트하우스 연주회에서 베토벤의 교향곡을 듣게 된 후 강한 전율을 느끼며 음악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18세가 되던 해, 그는 라이프치히 대학에 입학해 처음으로 정규 음악교육을 받았고 20세가 되자 지방의 오페라 극장들을 옮겨 다니며 합창지휘자나 카펠마이스터(악장)로 경력을 쌓아나가기 시작한다. 바그너는 이 시기부터 오페라 작곡을 시작하게 되는데 1832년 첫 오페라 ‘결혼’을 비롯해 1834년 ‘요정’, 1836년 ‘연애금지’를 완성했다.

드디어 27세가 되던 해 바그너는 그의 신작 ‘리엔치’를 완성했고, 1842년 드레스덴 왕립극장(지금의 젬퍼오퍼)에서 대성공을 거두며 30세의 나이로 드레스덴 왕립극장의 음악감독으로 임명되는 계기가 된다. 그는 음악감독으로 부임하며 ‘방황하는 네덜란드인’과 ‘탄호이저’를 완성해 명성을 쌓아나간다.

하지만 38세가 되던 해, 국가주의자였던 바그너는 정부에 대항해 ‘5월 혁명’에 가담한 혐의로 체포령이 떨어졌고 스위스로 도피해 1858년까지 9년간 망명생활을 한다. 도망자의 신분으로 이전에 완성한 오페라 ‘로엔그린’을 직접 공연할 수 없게 되자, 그의 스승이자 친구였던 프란츠 리스트에게 공연을 부탁해, 1850년 8월 바이마르에서 리스트의 지휘로 초연됐다. 기나긴 망명 시기 동안 그는 그의 중요한 저서 중 하나인 ‘오페라와 드라마’를 저술했으며 ‘니벨룽겐의 반지’ 제1부 ‘라인의 황금’과 제2부 ‘발퀴레’ 등도 작곡하기 시작했다.

그의 음악적 종착지는 음악극의 완성이었다. ‘오페라’가 음악이 주가 돼 극과 미술, 무용을 이끌어가는 예술 장르라면 바그너가 추구했던 음악극은 음악을 비롯한 다른 모든 요소가 극의 사상과 내용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는 통합의 예술이었다. 바그너는 오페라와는 구분되는 자신의 음악극을 구현해 낼 최적화된 오페라 극장을 구상했고 마침내 독일의 바이로이트에 자신의 작품만을 위한 전용극장을 설립한다. 1876년, 바그너는 26년간에 걸쳐 완성한 대작 음악극 ‘니벨룽겐의 반지’를 초연했고 1882년 자신의 마지막 음악극 ‘파르지팔’을 초연한 후 1883년 베네치아에서 70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안우성 남자의 클래식 저자

오늘의 추천곡

- ‘로엔그린’3막 ‘혼례의 합창’

이 곡은 우리나라에서도 결혼식에서 신부가 입장할 때 연주되는 곡으로, 원곡은 다름 아닌 바그너의 ‘로엔그린’ 중 3막에 등장하는 합창곡 ‘혼례의 합창’이다. ‘결혼 행진곡’이라고도 불린다. 이 곡은 오늘날까지 결혼식에서 신부가 입장할 때 연주되는데 그 유래는 1858년 영국의 빅토리아 공주에게서 비롯됐다. 빅토리아 공주는 자신의 결혼식에 연주될 음악을 직접 선곡했는데, 바그너의 열렬한 팬이기도 했던 공주는 바그너의 ‘혼례의 합창’을 신부 입장 곡으로, 멘델스존의 ‘축혼행진곡’을 퇴장 곡으로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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