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가 없으면 잇몸으로'..12년 만에 ACL 결승 이끈 '기동 매직'

문대현 기자 2021. 10. 21.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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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ACL 4강서 승부차기 끝 울산에 승리
겸손한 김기동 "고참 선수들이 팀 잘 이끌었다"
20일 전북 전주시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1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4강전 울산 현대와 포항 스틸러스의 경기에서 승부차기 끝에 승리한 포항 선수들이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2021.10.20/뉴스1 © News1 유경석 기자

(전주=뉴스1) 문대현 기자 = 포항 스틸러스가 12년 만에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결승에 올랐다. 핵심 선수들이 줄줄이 팀을 떠난 상황에서 거둔 결실이라 더 놀라운데, 아무래도 김기동 감독의 탁월한 리더십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기동매직'이라는 표현도 그리 놀랍진 않다.

포항은 20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울산과의 2021 ACL 8강에서 정규 시간을 1-1로 마친 뒤 이어진 승부차기에서 5PK4로 이겼다.

이제 포항은 앞서 알 나스르를 2-1로 완파한 알 힐랄(이상 사우디아라비아)과 우승을 다투게 됐다. 결승전은 오는 11월23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치러진다.

지난해 K리그1에서 3위를 거뒀던 포항은 올 시즌을 앞두고 심각한 전력 누수를 겪었다. 일류첸코, 최영준(이상 전북), 팔로세비치(FC서울), 오닐(부리람) 김광석(인천) 등 비중이 컸던 선수들이 다른 팀으로 이적했고, 하창래는 김천 상무로 입대했다. 반면 보강은 온전치 않았다.

때문에 포항이 ACL에서 결승에 오르리라 예상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김 감독 조차 대회 전 기자회견에서 "목표는 16강"이라 말할 정도였다. 그런데 파이널 무대까지 진출했으니 박수가 아깝지 않다. 돌아보니 험난한 과정이었다.

포항은 전반기 팀 공격을 이끌던 송민규의 올림픽대표팀 차출로 인한 부재 속에서도 6월 치러진 조별리그에서 3승2무1패를 거둬 조 2위로 16강에 진출, 어렵게 1차 목표를 달성했다. 이후에는 낫겠지 싶었으나 또 씁쓸한 소식들만 이어졌다.

시즌 중반 송민규가 전북으로 이적, 포항 팬들을 낙담하게 만들었다. 엎친 데 덮쳐 주전 골키퍼 강현무마저 발목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으니 토너먼트는 더욱 쉽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항은 16강(세레소 오사카)과 8강(나고야 그램퍼스)에서 연속 J리그 강호를 꺾고 가시밭길을 헤쳐나왔다. 준결승도 놀랍다.

신진호와 고영준이 경고 누적으로 빠져야하는 포항 입장에서 울산은 너무 부담스러운 상대였다. 가뜩이나 올 시즌 리그에서 1무2패로 밀리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승리의 여신은 포항의 손을 들어줬다.

20일 전북 전주시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1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4강전 울산 현대와 포항 스틸러스의 경기에서 승부차기 끝에 승리한 가운데 김기동 감독이 팬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2021.10.20/뉴스1 © News1 유경석 기자

김 감독은 매 경기 '차포'가 다 빠진 상황에서도 적절한 선수 기용으로 전력 누수를 막았다. 일류첸코의 대체자로 영입한 타쉬가 부진하자 수비형 미드필더 이승모를 최전방에 올렸다. 이승모는 한동안 애를 먹었지만 ACL 16강과 8강에서 득점에 성공하며 김 감독에게 웃음을 안겼다.

이승모가 중앙에서 막힐 때는 임상협이 제 몫을 했다. 1988년생으로 적지 않은 나이인 임상협은 최근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리그 30경기에서 10골 3도움을 기록 중이고, ACL 8경기 4골로 송민규의 공백을 지웠다.

장신 공격수 이호재도 김 감독의 믿음 속에 상대를 위협하는 존재로 거듭나고 있다.

최영준이 빠진 중원은 신진호, 신광훈, 오범석이 번갈아가며 출전하며 중심을 잡고 있고, 팀의 취약점으로 평가됐던 풀백은 기존 강상우 외에 K3(3부)리거 출신 박승욱과 신예 김륜성이 나서고 있는데 경기를 거듭할수록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골문을 지키던 강현무의 공백은 이준에게 맡겼다. 이준은 프로 데뷔전이었던 지난달 강원FC전에서는 다소 흔들렸지만 이후 출장한 경기들에서는 안정감을 보이고 있다.

김 감독은 이가 빠진 자리를 새로운 선수를 발굴하거나 포지션을 변경하는 식으로 대체하고 있는데 그 자리에서 다시 새로운 이가 나면서 점차 균형이 맞춰지는 모양새다.

김 감독은 호성적의 비결을 베테랑들에게 돌리고 있다. 고참 선수들이 분위기를 잘 잡아가면서 팀이 하나로 뭉칠 수 있었다는 취지다.

김 감독은 울산전 이후 "나는 특별히 하는 것이 없다. (신)광훈이, (신)진호, (오)범석이, (임)상협이 등 고참 선수들이 분위기를 잘 만들고 있어 나는 한 발 물러나서 지켜보는 입장"이라며 "선배들이 후배들을 잘 이끌면서 포항이 가진 역사와 문화가 유지되고 팀이 단단해 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2009년 선수로서 포항에서 ACL 우승을 경험했다. 당시 포항을 이끌던 파리아스 감독은 탁월한 용병술로 '파리아스 매직'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2021년 포항의 기세가 그때 못지 않다. 12년 만에 아시아 무대 결승에 오른 포항이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며 '기동 매직'을 만들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eggod6112@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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