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꽃 만발한 태안, 14년전 123만 환경영웅들을 모신다

2021. 10. 21.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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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류피해극복 자원봉사 명예의전당 구축중
쌀쌀할 때 그리운 꽃들, 태안 전역에 피어
일거양득 두 개의 낙조절경 운여의 역주행
긴 지형, 팜파스등 희귀 글로벌 식생 절정
꽃지 코리아플라워파크는 미술,풍차와 조화
거북선 만든 적송(안면송) 태안 곳곳에 자생
갯벌 바람길 옆엔 원색패션 연인들 채도대비
태안 운여해변 해넘이는 하루 두번의 명품을 제공한다. 사진은 솔숲과 라군에서 찍은 1탄. 2탄은 2~3분후 둑방너머에서 지평선과 풀등, 섬을 배경으로 이어진다.
청산수목원에는 아르헨티나 팜파스가 제 땅인 양 건강하게 자란다.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남미 칠레 처럼 긴 지형의 태안에는 이 가을, 아르헨티나 초원의 팜파스 글라스도 있고, 이탈리아 사이프러스, 열대 아메리카의 천일홍, 중국 남부가 원산인 황금측백도 산다.

태안해안국립공원의 푸른 생태를 붉게 물들이는 낙조는 국내 최고라고 해도 이의를 달 사람이 적다. 국내외 작가들의 사이에 입소문이 나고 앵글 저작권 국제 소송 때문에 삼척의 솔섬이 유명세를 탔는데, 태안 운여의 낙조는 삼척 닮은 곳도 있고, ‘바닷물 건너 바다’로 표현되는 풀등 해변을 물들이는 석양까지 가져, 일거양득의 매력을 뽐낸다.

운여 석양 2탄. 물과 백사장이 번갈아 나타나는 풀등과 섬을 배경으로 누가 서 있었도 배우가 된다.

▶14년전 영웅들을 모십니다= 최남단 영목항과 최북단 만대항은 3면 바다를 거느려 해오름과 해넘이를 함께 감상하는 몇 안되는 포인트이다.

스테디셀러 꽃지는 같은 고을 내에 경쟁자가 본색을 드러내며 전국적인 인기를 얻어가자, 꽃보다 소년과 풍차,크렘린이 있는 코리아플라워파크를 만들어 세계의 꽃들로 새롭게 시선을 끈다.

해안국립공원과 수많은 해양관광자원을 가진 태안이 쌀쌀해질 때 더 그리운 꽃과 뜨끈한 미식을 앞세워, 이제 여행을 본격화한 국민들에게 손짓하고 있다.

요즘 미국이 한국처럼 하지 못해 바다기름을 제대로 제거하지 못하는 가운데, 14년전 국민 123만명과 함께 기적같이 기름때를 지워내 뒤 자원봉사 국민에게 큰절을 올렸던 태안군민들은 그때 함께 땀흘린 영웅들을 모시고 싶다며 천리포 유류피해극복기념관에 있는 ‘명예의전당’에 일일이 등재해줄 것을 간곡히 당부했다.

2007년 태안 유류피해때 찾아온 국민영웅들의 미소
태안유류피해기념관 입구에 설치된 명예의전당 등재 장비

▶사랑의 불시착,고흐,팜파스 청산수목원= 태안의 가을은 꽃과 바람의 서정이다. 세계적인 K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서 현빈과 손예진이 자전거 데이트를 즐기던 곳은 ‘고흐의 다리’가 가로놓여진 청산수목원 둑방길이다. 남면 연꽃길에 있는 청산수목원은 사람 키의 2배가 넘는 아르헨티나,뉴질랜드 억새 ‘팜파스그라스’가 이 가을 절정을 이루고 있다.

수목원 초입부터, 이탈리아 여행때 흔히 보는 사이프러스와 팜파스글라스, 핑크뮬리가 여행자들을 반기며 해외여행 온 기분을 들게 한다.

사랑의 열매 호랑가시나무를 빼닮은 홍가시나무는 붉은 열매 대신 붉은 잎을 선보이며 열정을 뽐내고, 쌀쌀해 질수록 꼿꼿하게 버티는 앵초가 당차다. 부처꽃, 창포, 부들, 가이스카향나무, 자라풀, 부레옥잠을 비롯한 600여종의 희귀식물이 자라고, 삼족오 미로공원, 인상주의 작품 ‘만종’,‘이삭줍기’등을 입체조각상으로 배치한 밀레의 정원, 고갱의 정원, 만다라 정원도 있다.

여친이 남친 독사진을 찍어주는 모습, 신부의 자태가 예뻐서 관람객들이 사진을 찍자 예비신랑이 과도하게 보호하며 앵글을 가로막는 모습도 정겹다. 문득, ‘펄펄 노는 저 꾀꼬리, 암수 서로 정답구나’ 2000년 전 시가 떠오른다.

고흐가 존경하던 요하네스 베르메르 선배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가 꽃지의 코리아플라워파크에 서 있다.

▶꽃의 도시 태안= 이제는 슬픈 전설을 웃으며 말할 수 있는 꽃지 할머니-할아버지 바위는 요즘 가을 꽃놀이에 푹 빠졌다. 코리아플라워파크엔 고흐가 존경하던 요하네스 베르메르 선배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고흐를 배우고 피카소와 친구였던 앙리 마티스의 ‘피리 부는 소년’, 러시아 크렘린궁, 네덜란드 풍차 사이사이로 이국적인 기화요초가 방창하다.

오는 31일까지 열리는 가을꽃박람회의 대표선수는 천일홍, 천사의 나팔, 안젤로니아, 코키아, 쿠르쿠마, 청산수목원 보다 키가 작은 팜파스그라스이다. 열대식물전시관에서는 쌀쌀해진 계절과 무관한 열대식물이 자란다. 가든 센터에서 다양한 색의 국화와 튤립, 씨앗을 살 수 있다. 주말엔 트랙열차가 다닌다.

금강산 것이 너무 멀어 태안금강송(안면적송)으로 거북선을 만들었다고 한다.

근처엔 태안의 금강송(안면적송)이 우람하고 빼곡이 들어찬 안면도수목원과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기증한 아산정원 품은 안명도자연휴양림이 있는데, 지하도를 사이에 두고 마주본다.

이 소나무는 당연히 궁재로 쓰여 왕실의 특별관리를 받았다. 금강송이 있는 고성-삼척-울진은 멀어 이동과정에서 변질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한양 전각, 거북선 등을 만들 때 안면 적송을 썼다고 한다.

정주영 회장이 기증한 아산정원은 교육적 활용도가 뛰어난 생태습지원, 지피원, 식용수원 등의 테마원을 갖고 있다. 안면수목원의 ‘별을 꿈꾸는 나무’라는 설치미술을 지나 안면정 정자에 오르면 태안 중남부 해안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청산수목원의 ‘사랑의 불시착’ 촬영지

▶일거양득 운여 낙조의 역주행= 해안은 걸어야 제맛이다. 태안의 바람불어 좋은 날은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북쪽 신두리 남쪽 영목~운여 간 바람길이다. 바람길은 점심 먹고 영목에 와서 걷고 걷다 운여-황포항에 가서 석양을 보는 명품 갯벌길-데크길-솔숲길이다. 그 역순도 좋다. 운여의 매력에 취했기에, 인지도 높은 영목에 앞서, 와락, 운여 부터 자랑하고 싶다.

황포항과 그 앞 갯벌, 장곡리 염전, 딴똥문이산, 장곡저수지, 장삼포해수욕장 등 반경 4㎞ 이내 다양한 생태-문명 환경에 둘러싸인 운여해변의 방풍림과 물 건너 물 풀등형 백사장은 아는 사람만 아는 절경이다. 딴똥은 뚝이라는 의미이지 다른 뜻을 가진 건 아니다. 낮의 이곳 백사장은 빛이 난다. 규사성분이 많기 때문이다. 국내 유리생산 원료로도 쓰인다고 한다.

지도를 펴놓으면, 최고 사진명소, 바다쪽 둑방 위 방풍림을 낀 운여 해안가 작은 라군은 ‘용의 눈’ 같다. 해질 무렵 해송 병사들이 도열한 방풍림 군대가 라군 수면에 반사되는 모습을 앵글에 담는다. 같은 것을 자꾸 찍는다는 건 가슴이 놀랐다는 증거다. 그러나 지체할 새가 없다. 이게 다가 아니므로.

곧바로 몇십m 언덕 너머 풀등 백사장에 가면, 지중해 쪽으로 가야 한다며, 내일 또 오겠다며, 서서히 해수면 아래로 사라지는 태양의 붉은 작별을 만난다. 매일 벌어지는 이별인데도 마음이 허하다. 온통 붉은 세상 속 실루엣은 누가 서 있어도 배우가 된다. 이문세(붉은노을)의 “난 너를 사랑해” 뜬금 없는 고백도 그냥 이해가 되고, ‘눈물에 옷자락이 젖어도..고요히 잡아주는 손 있어..’ 정태춘의 멜랑꼴리한 ‘서해에서’가 조건반사적으로 읊조려진다.

▶바람 불어 좋은 태안, 조개무덤에 담긴 뜻= 운여 북쪽 이웃마을 장곡3리 장삼포는 대숙(고둥의 일종)밭이라 불리는 곳이고, 운여 옆 염전체험학습장과 장삼포해수욕장을 지나면, 사막과 같은 모래언덕 아래로 바람도 비켜간다는 바람아래해변을 만난다. 국립공원의 가치를 지탱하는 멸종위기 깃대종 ‘표롱이’ 표범장지뱀이 사는 곳이다. 바람을 맞으며 느리게 걷는 여행자가 간간히 보인다.

잠시 육지쪽으로 나가 고남패총박물관에서, 그 때에도 풍요로웠을 이곳의 선사시대 상례 의식을 떠올려본다. 척박하고 거친 그 시절, 손쉽게 생활과 건강을 지탱해준 패류의 흔적, 조개껍질은 참 고마운 물건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고인에게 덮어주었을 것이다.

조개부리마을로 불리던 옷점항은 군산항과 옷감교역이 활발히 이뤄지면서 바뀐 이름이다. 조개에 무슨 부리가 있겠냐마는, 매년 정월대보름이면 주민들이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조개부르기’를 했기에 붙여진 원래이름이다. 조개부르기 제례와 패총, 즉 패류 어로의 시작과 끝은 모두 성스러웠다. 서산은 물론 태안에서도 하고 있는 ‘머드맥스’ 바지락경운기 부대의 위용이 더 가치있게 느껴진다.

옷점 갯벌의 연인들

옷점 바위섬 인근에선 잿빛 갯벌을 배경으로 원색 패션의 연인들의 채도대비 사진놀이를 하고 있었다.

남쪽으로 더 내려와 만나는 원산안면대교 북단 마을은 만수동이다. 물이 꽉 찼다 빠지기를 반복하는 곳이도 하고, 장수하는 어르신이 많아 붙여진 이름이기도 하다. 바람길의 기점이자 종점인 영목은 분주하다. 태안 최남단이자, 대교의 북단 장터이자, 곧 건설될 해저터널의 서쪽기점이다. 동쪽바다 서쪽바다 다 보이는 태안의 특성 처럼, 영목은 바다의 해오름,해넘이를 모두 보는 곳이다.

▶희망시대, 123만명의 기적 체험= 천리포수목원 앞에는 닭섬이 있고, 만리포쪽엔 닭섬을 닮았지만 뭍에 살짝 붙어 있는 뭍닭섬이 있다. 모두 닭이 고개 숙여 물 마시는 형상이다. 그 옆 유류피해극복기념관은 필수코스이고, 특히 123만명과 그 자녀, 가족들은 꼭 가봐야할 곳이다.

임진왜란 의병, 일제시대 국채보상운동, IMF구제금융기 금모으기에 비견되는 대한민국 국민 123만명의 대역사였다. 검은 기름띠는 1년도 안돼 사라지고, 바지락이 죽는 일은 1년반 만에 급감했으며, 눈에 보이는 흔적은 사라져 관광지가 복원된 것은 사고난 지 5년 만에, 생태계의 회생이 완전하게 안정화된 것은 8년 만에 이뤄졌다. 세계 학계에서는 전무후무한 기적이라고 평했다.

123만명 국민자원봉사자들에게 큰절을 올리는 2007년 당시 태안의 각 마을 리더들.
태안의 건강수산물

기념관 내, 태안 주민대표 수백명이 국민들에게 감사의 큰 절을 올리는 모습, 검은 벽이 점차 흰벽으로 변하면서 그 속에 123만명의 이름을 깨알같이 적어놓은 모습. 아빠 손 잡고 온 딸이 고사리손으로 기름을 닦아내는 사진이 뭉클하다.

지금 명예의 전당을 만들고 있는데, 태안군은 영웅들이 직접 방문 혹은 온라인으로 그 때 그 흔적과 얼굴사진을 전달해 달라고 당부했다.

14년전 그곳에 자원봉사하러 갔던 국민 혹은 후손은 명예의 전당 구축하는 이때, 태안 가서 멋지게 힐링하고, 건강한 음식 즐긴 뒤, 기념관 가서 본인 등재, 부모님 등재, 가족사진 등록을 정식으로 했으면 좋겠다. 동서고금 유일한 이 족적, 국가적 고난 극복의 의지를 품은 태안에선, 희망을 얘기하는 이 시국, 두툼하게 인문학을 흡입해 볼 곳이 많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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