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몰래 물드는 길.. 단풍, 여기에도 있었네

박경일 기자 2021. 10. 2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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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원주 치악산국립공원의 구룡소 부근 단풍. 숲 한가운데 구룡소 계곡을 건너가는 출렁다리가 보인다. 치악산 정상 부근은 이미 단풍이 끝물이지만, 산 아래는 오는 주말을 지나 단풍이 절정을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 단계적 일상회복 눈앞…호젓한 명소 4곳 추천

① 하동 의신계곡

물감 뿌려놓은듯 화사한 색감

② 고창 선운사

도솔천에 비친 단풍, 꿈결같아

③ 원주 치악산

구룡사~세렴폭포 구간으로 충분

④ 부안 내변산

직소폭포 일대 경관 감탄 자아내

글·사진=박경일 전임기자

코로나 시대에 건너가는 두 번째 가을입니다. 단계적 일상 회복을 코앞에 두고 단풍이 붉게 물들어가고 있습니다. 살얼음을 딛듯 조심스럽긴 합니다만, 일상 회복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대는 부풉니다. 일상 회복이 시작되면 조심스럽게나마 단풍 구경을 다녀올 수 있을까요. 계절이 좀 멈춰줬으면 좋으련만, 유난히 빠른 가을의 속도가 야속합니다. 단풍시즌을 맞아 코로나 이후 행락객이 크게 줄었거나, 관광객이 적은 호젓한 단풍 명소를 골라봤습니다.

# 가장 호젓한 지리산 단풍… 의신계곡

지리산에서 단풍이 가장 늦는 곳이 경남 하동의 의신계곡이다. 단풍이 늦는 건 볕이 좋아서다. 지리산 남사면이라 찬 기운이 늦게 드니 단풍도 늦다. 피아골이니 문수골이니 뱀사골 같은 이름난 지리산 계곡에 밀려 알려지지 않았지만, 의신계곡의 가을 풍광은 다른 계곡을 모두 압도하고도 남는다. 물감을 뿌려 놓은 듯 화사한 단풍의 색감도 그렇거니와 가득 고여서 흐르는 맑은 계곡 물의 정취도 그렇다. 의신계곡은 하동의 화개동천을 거슬러 벽소령 등산로 들머리인 대성골을 지나 의신마을에서 시작한다. 60여 가구가 사는 의신마을은 삼도봉, 명선봉, 토끼봉, 칠선봉 등 해발 1500여m가 넘는 연봉들로 둘러싸여 있다. 등산객들은 의신마을에 당도하기 전 대성골에서 다 지리산 능선으로 붙고, 벽소령을 가파르게 차고 오르려는 소수의 등산객만 의신마을을 지나갈 뿐이다. 그나마도 벽소령으로 오르려는 등산객들은 초입의 의신계곡에는 아예 관심도 두지 않는다. 호젓하게 지리산 가을 단풍을 늦도록 즐길 수 있는 이유다.

# 도솔천 수면에 비친 선운사 단풍

전북 고창의 선운산은 봄이면 동백, 늦여름이면 꽃무릇으로 이름났지만, 선운산의 절집 선운사 주변에 가을이면 뜨겁게 불붙는 단풍도 절대 빠지지 않는다. 선운산 단풍을 특별하게 만드는 건 선운사를 끼고 흐르는 도솔천의 물길. 도솔천 수면에 단풍잎 붉은색이 비친다. 일교차가 큰 날 이른 아침에는 도솔천에 무시로 물안개까지 피어올라 꿈속 같은 풍경을 빚어낸다. 선운사에서 출발해 도솔암까지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산길 주위에도 단풍나무들이 붉고 노랗게 물든다. 조붓한 흙길을 따라 타박타박 걸어 도솔암까지 오르면 선운산 자락의 암봉을 배경으로 거대한 능선을 따라 단풍이 물들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지난 8월 전북 정읍의 내장산 단풍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기 전까지 ‘유일한 천연기념물 단풍나무 숲’이었던 고창의 문수사도 들러볼 만하다. 일주문에서 절집까지 100m쯤 되는 짧은 길에 100년생부터 최고 400년생 거목 단풍나무 500여 그루가 빼곡하다.

# 찻잔을 앞에 두고 보는 치악 단풍

치악산은 숲이 크고 짙어 단풍이 좋다. 아는 이들만 안다. 단풍이 좋아 예로부터 ‘붉을 적(赤)’ 자를 쓴 적악산(赤岳山)으로도 불렸다. 대표적인 치악산 등산로가 치악산국립공원 구룡지구에서 출발해 구룡사를 거쳐 비로봉에 오르는 코스다. 오르막이 끝없이 이어지는 악명높은 길이다. 치악산 단풍을 보겠다면 정상까지 갈 필요는 없다. 단풍 감상은 주차장에서 구룡사를 지나 세렴폭포까지만 다녀오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편도 1시간 남짓이면 넉넉한 산책 수준의 부드러운 길이다. 구룡사 한쪽 담장 밖에는 수령 200년을 헤아리는 거대한 은행나무가 있는데, 그 은행나무가 온통 노랗게 물들 때를 겨냥해서 가는 게 좋겠다. 구룡사 마당 끝 전망 좋은 자리에 ‘차와 이야기’라는 무인 찻집이 있다. 차와 다구 등을 갖추고 누구나 들어가 스스로 차를 달여 마실 수 있도록 해놓았다. 소슬한 가을바람 속에서 단풍을 보며 은은한 차 향을 즐기는 맛이 그만이다.

# 호수와 어우러진 내변산 단풍

전북 부안 내변산. 이곳의 가을 단풍이라면 대개 내소사를 떠올린다. 어디 가을뿐일까. 내소사는 늘 행락객들로 붐빈다. 거기다 대면 내변산 직소폭포 가는 숲길은 가을 단풍철에도 고즈넉하다. 직소폭포 일대는 내변산에서도 단풍이 가장 빼어나다고 일컬어지는 곳. 폭포 아래 물을 가둬 만든 직소보의 고요한 수면에 붉은 단풍색이 도장처럼 찍힌다. 직소폭포로 가는 방법에는 두 가지 선택이 있다. 하나는 내소사에서 관음봉에 올랐다가 직소폭포 쪽으로 내려서는 3시간 남짓의 코스. 본격 등산에 가깝다. 다른 하나는 내변산탐방지원센터에서 봉래구곡을 따라 직소폭포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산책에 가까운 1시간 남짓 코스. 단풍감상이 목적이라면 직소폭포까지만 다녀오는 게 낫겠다. 이 구간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이 직소보다. 산중의 작은 호수가 단풍과 어우러져 빚어내는 정취가 인상적이다. 가을비가 잦아서 그런지 올가을에는 직소폭포의 물소리가 힘차다. 직소보 위쪽에 석벽으로 이뤄진 분옥담과 선녀탕의 경관도 좋다.

■ 수도권 당일치기 적당한 곳

김대중 대통령길·금수산… 한나절에 ‘낙엽 카펫’ 밟고 오자

단풍 여행은 다른 여행보다 여행지에 머무는 시간이 길다. 당일치기 단풍여행에서 이동 거리를 길게 잡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수도권에서 당일치기가 가능한 경계가 북쪽으로는 춘천이나 화천, 남쪽으로는 충청 북부까지다.

경기 가평에서 강원 화천으로 이어지는 75번 국도에서는 명지산, 연인산, 백운산의 단풍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다. 하이라이트 구간은 가평읍에서 화천 도마치봉까지다. 갈색으로 물드는 참나무류와 붉은색 단풍나무, 진초록의 잣나무가 어우러져 마치 산은 물감을 짜놓은 팔레트같이 아름답다. 길옆 과수원에 잘 익은 붉은 사과들이 주렁주렁 매달린 모습도 가을의 정취를 한껏 돋워준다.

단풍이 물들 무렵 충북 청주의 청남대에서는 여러 색의 단풍을 만날 수 있다. 보통의 단풍명소는 붉거나 노랗거나 한가지 색으로 물드는데, 청남대는 붉은 단풍과 노란 단풍을 두루 다 갖추고 있다. 역대 대통령 이름을 붙여놓은 청남대 산책로 중에서 ‘김대중 대통령길’의 단풍색이 가장 곱다. 가을이 깊어가면 떨어진 붉고 노란 낙엽이 카펫처럼 깔리는 본관 정원의 가을 정취도 으뜸이다.

충북 제천 금수산은 중부권에서 가장 먼저 단풍이 물드는 산. 산중의 단풍도 단풍이지만, 상천리 쪽에서 오르는 주 등산로에 바위 사이로 쏟아지는 용담폭포가 있다. 폭포 맞은 편 전망대에서 단풍으로 물든 협곡을 타고 흘러내리는 용담폭포를 보는 게 가을 금수산의 큰 구경거리다. 능강계곡을 끼고 오르는 금수산 조가리봉 아래에는 절집 정방사(사진)가 있다. 가을이면 온통 단풍으로 포위되는 정방사에서는 가을 색으로 물든 청풍호를 굽어볼 수 있다.

천안 흑성산 아래 독립기념관 단풍나무 숲길은 해마다 설악산 단풍이 다 질 무렵 가장 화려하게 불붙는다. 독립기념관의 단풍나무는 1995년 4월 독립기념관 직원들이 식목행사에 심은 것. 단풍나무가 26년을 자라 3.2㎞에 달하는 단풍나무 숲 터널을 이뤘다. 단풍 숲이 어찌나 좋은지, 수년 전부터 독립기념관 방문객이 광복절보다 가을에 더 많아졌을 정도다. 주말에는 행락객들이 한꺼번에 몰리니 되도록 평일을 택하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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