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껑 열린 것 마셨다"..회사 생수병에 누가 독극물을 넣었나

강우량 기자 2021. 10. 21.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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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수 마신 2명중 팀장 위독
회사가 대량구매한 330㎖ 생수병
"뚜껑 열려있던 것 마셨다"
자택서 숨진 또 다른 직원
사건 다음날 결근, 극단선택 정황
집에서 독극물 용기 발견
회사는 문 잠그고 직원에 함구령

지난 18일 서울 서초구의 한 회사에서 생수병에 든 물을 마신 남녀 직원 두 명이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되고, 이튿날 무단 결근한 다른 남자 직원은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이 직원이 사망 전 사용하던 휴대전화에서 독극물 관련 내용을 검색한 흔적을 발견했고, 집에서도 독극물 용기를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직장 내 괴롭힘 등이 원인이 돼 누군가 생수에 독극물을 탔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20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생수를 마시고 쓰러진 남녀 2명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30대 남성 직원은 해당 회사의 재경팀, 경영기획팀 소속이었다. 사건이 발생한 것은 지난 18일 오후 2시. 서초구 양재동의 회사 사무실에서 재경팀장인 40대 A씨와 경영기획팀 소속 30대 대리 B(여)씨는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330mL 생수병에 든 물을 마신 후 쓰러졌다. 생수병은 회사에서 대량 구매해 비치한 것으로, 이들은 이미 뚜껑이 열려있던 생수를 마셨다고 한다. 두 직원은 “물 맛이 이상하다”고 말한 뒤 연달아 쓰러져 병원에 이송됐다. 당시 출동한 소방 관계자는 “남성 직원은 줄곧 마비 증세를 보였고, 여직원은 한 차례 발작을 일으킨 후 정신이 들었다가 이송 과정에서 2차 발작을 일으켰다”고 말했다. B씨는 병원에서 상태가 호전돼 퇴원했지만 A 팀장은 위독한 상태다.

이후 19일 이 회사 경영기획팀 소속인 30대 대리 C씨도 서울 관악구 봉천동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전날 발생한 생수병 사건을 조사하던 경찰은 C씨가 무단 결근하자, 그의 자택을 찾았고 집 안에 숨져있는 것을 발견했다. 현장에서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그가 사망 전 사용하던 휴대전화 2대 중 1대에서 독극물 관련 내용을 검색한 흔적을 발견했고, 집에서 독극물 용기도 수거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지켜본 한 주민은 “현장에서 아질산나트륨 용기가 나왔다”고 말했다. 이 물질은 햄·소시지 같은 식육가공품의 보존제로 사용되는 식품 첨가물로, 독성이 있어 일정량 이상(성인 기준 4~6g) 섭취할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다. 경찰 관계자는 “시신에서 타살 혐의점이 없어 극단적 선택을 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21일 부검을 할 예정”이라고 했다.

해당 기업은 매출 800억원대의 풍력발전 전문 중소기업으로 코스닥 상장사다. 총 직원 200여 명으로 사건이 발생한 양재동 서울사무소에는 60명가량이 근무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발생 이후 회사 측은 사무실 문을 걸어 잠그고, 직원들에게도 함구령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직원들은 사건 다음 날인 19일 오후 3시쯤 전원 조기 퇴근했고, 20일에도 점심쯤 모두 회사를 빠져나갔다.

경찰은 회사 직원들을 상대로 사건 조사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생수를 마신 후 의식을 회복한 여직원 B씨는 퇴원 이후에도 몸 상태가 좋지 않아 구체적 진술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치정(癡情)으로 인한 사안은 아닌 것으로 보이고, 직장 내 괴롭힘을 포함해 정확한 사건 원인을 수사하고 있다”고 했다.

경찰은 직원들이 마신 생수병과, C씨 집에서 발견한 독극물 용기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 동일 성분 검출 여부 등 검사를 의뢰했다. 국과수 관계자는 “통상 약물 분석에는 7일 정도 걸리지만, 긴급한 사안인 만큼 이번 주 안으로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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