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삶] 정치가 사라진 사회

안희곤 사월의책 대표 입력 2021. 10. 2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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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얼마 전 과도한 노동강도를 호소하며 트럭 시위에 나선 스타벅스 직원들의 소식을 접하고는 씁쓸한 기분을 감추기 어려웠다. 노조 설립을 권하는 민주노총에 대해 이들이 보인 반응 때문이었다. “우리 스타벅스는 노조 없이도 22년간 식음료 업계를 이끌며 직원에게 애사심과 자긍심을 심어준 기업이다.” “트럭 시위를 당신들의 이익 추구를 위해 이용하거나 변질시키지 말라.” 이 소식을 전하는 뉴스에는 아니나 다를까 ‘밥숟가락 얹으려다 망신당한 민노총’ 같은 비아냥 댓글이 여럿 달려 있었다. 결과적으로 스타벅스코리아가 1600명을 신규 채용하겠다고 하니, 직원들은 시위의 효능감을 충분히 맛보았을 것이고, 우리는 역시 다르다는 자부심도 더해졌을 것이다.

안희곤 사월의책 대표

이런 사용자와의 동일시, 반정치적 결벽성, 고립주의 등은 대체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 아마도 이들에게는 타 회사에 비해 대우가 월등히 좋다는 스타벅스 직원이라는 ‘신분’이 노동자 정체성에 앞서는 가치였을 것이고, 이런 차별적 정체성이 당사자주의를 추구하는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문제는 연대를 ‘외부의 개입’으로 치부하는 이런 심리가 한편으로는 ‘내 문제가 아닌 한 방관한다’는 방관자주의의 또 다른 버전에 불과하다는 데 있다. 이렇게 소수 집단화된 정체성은 모두의 정치가 될 수도 있는 문제를 소거하거나 개인화한다. 서비스 노동자의 현실이라는 의제는 사측의 한 번의 ‘달래기’로 연기처럼 사라진다는 얘기다.

이런 일이 어디 스타벅스 직원들만의 경우일까. 자신의 신분 내지 소속감을 가치로 지향하는 태도는 정체성 정치로 이어진다. 젠더, 종교, 민족, 문화적 차별성을 정체성으로 삼고 집단적 권리를 주장하는 정치는 결국 공동의 이익을 파편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다. 여기에는 ‘정치적으로 올바르다’는 변명도 항상 따라붙는다. 물 건너 수입된 이 ‘피씨하다’(politically correct)는 말은 이제는 정치적 사안에 대한 개인의 도덕적 태도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된 듯하다. 페미니즘, 기후, 난민 등의 문제가 개인의 정치의식, 도덕심, 실천 등의 문제로 축소되었다는 뜻이다. 그 문제에 찬성하는가, 반대하는가? 개인이 찬성하든 반대하든 현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한다는 의미의 정치적 올바름을 부정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그 올바름이 우리가 마땅히 따라야 할 의무가 아니라 개인의 선택 사항으로 추락했다는 것이다. 자동차를 타고 친환경 물품을 구입하러 가는 소비자처럼 말이다. 그는 도덕이 필요할 때는 ‘착한 소비’를 택하고, 편리함이 필요할 때는 자동차를 몬다. 그래도 어쨌든 그는 ‘피씨’를 이마에 붙이고 정치적으로 올바른 행동을 기본적으로 추구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렇게 정치와 도덕이 개인화되면 그런 올바름의 선택은 도덕적 우연의 문제가 된다. 올바름을 선택하면 다행이고, 선택하지 않았다 해도 비난받을 문제가 아니다.

정치와 도덕적 사안이 자기 정체성에 따른 선택의 문제가 되고 개인화된 것은 신자유주의의 징후적 현상으로도 보인다. 개인 능력껏 문제를 해결하고, 그 과정에서 도덕적 길을 선택하는 것은 오로지 그 개인의 몫이다. 경제적 문제만이 아니라 도덕적 문제에서도 모든 사안은 개인의 능력 또는 품성으로 귀결된다. 그러나 영화 <기생충>의 반지하 가족을 누가 비도덕적이라 손가락질하랴. 어떤 사회적 행동들은 도덕을 넘어서 있고, 어떤 폭력은 전혀 폭력이 아니다.

개인의 도덕 문제를 넘어선 정치적 시야를 발견하기 어려운 것은 현실 정치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모두들 품성 바르고 정직한 지도자가 없다고 한탄만 하지, 아마도 갈등과 상처가 더할지도 모를 위험한 길을 고민해보는 담론은 보이지 않는다. 정치가 사라졌다. 아마 원래부터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안희곤 사월의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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