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두 번째 분단'의 경고, 대권보다 분권
[경향신문]
경향신문이 수도권 집중과 지방소멸을 다루는 기사를 연재하고 있다. 첫 기사의 제목은 ‘두 번째 분단’이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가 점점 더 커지고 있는 현실을 가리킨다. 언제부턴가 우리가 쓰고 있던 ‘서울공화국’보다 훨씬 더 강력한 표현이다. 서울공화국은 “서울은 한국의 도시들 가운데 가장 큰 도시가 아니라 한국 그 자체이다”라고 한 그레고리 헨더슨의 설명과 맞닿아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서울공화국과 그 밖의 공화국이라는 두 개의 공화국, 그리고 두 개의 국민이 있다는 개념도 여기서 나왔다. ‘두 번째 분단’은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뜻을 담은 것 같다. 말하자면, 오늘날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 문제는 민족분단에 버금가는 모순이라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기사 한 줄 한 줄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금수저와 흙수저라는 말과 수도권 수저와 지방 수저라는 말이 다를 바 없다는 것이 연재 기사의 지적이다.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가 점점 더 커지고 있으며 구조화되고 있다는 얘기다. 더 걱정스러운 대목은 구조화되고 있는 격차가 차별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에 산다고 하면 뭔가 우월하고 그곳이 아닌 지방에 있으면 어딘가 모자라는 존재라 생각하는 틀이 만들어지고 있다. 격차가 쌓인 결과다.
이는 정의롭지 못한 상황이다. 이런 상태에서 국가경쟁력이 만들어질 턱이 없고 지속 가능한 발전도 기대하기 어렵다. ‘두 번째 분단’ 구조에서 수도권이 비수도권을 식민화하고 있다는 점도 심상치 않다.
왜, 어떻게 하다가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되었나? 진단은 분분하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여러 영역에서 다양한 요인을 거론하고 있는데 역시 중요한 것은 정치의 영향이다. 돈과 사람, 교육, 기회, 일자리, 문화가 수도권에 집중되는 이유는 그곳에 권력이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력을 동심원의 핵으로 하여 그 주위를 각종 자원이 둘러싸고 있는 것이 오늘날 수도권 집중의 구조적 특성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해결하는 출발은 ‘분권’이라고 하겠다. 고도로 집중화된 권력을 해체하여 지방으로 나누어주는 것이다. 지방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는 결정권을 넘겨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권력을 따라 각종 자원도 옮겨가게 될 것이다.
해법은 간단하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두 번째 분단’을 이루고 있는 기득권 때문이다. 각종 기득권 동맹이 권력과 자원의 수도권 집중체제를 공고하게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기득권과 겨룰 수 있는 힘은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최근 지방의 광역자치단체들이 초광역 협력의 틀을 만들 수 있도록 제도적·정책적 지원을 하겠다는 발표를 하였는데 이는 여러 광역자치단체가 힘을 모아서 지역의 경쟁력을 높이고 수도권 집중체제에 대응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서울공화국의 기득권과 괄목상대할 수 있도록 하는 좋은 정책이다. 그러나 만시지탄이다. 정부 임기가 끝나고 있는 시점에 와서 저렇게 한다고 어떤 효과가 있을까 싶다. 다음 정부가 이어받도록 하겠다는 설명을 덧붙이고는 있으나 진즉에 이런 정책을 추진하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은 지울 수 없다. 이 정책이 나온 배경도 그렇다. 국가가 앞장서서 이런 비전을 모색한 것이 아니라 작년부터 여러 광역자치단체가 전국적으로 메가시티 전략을 주장하자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떠밀려 나선 것이었다.
아쉽기는 이른바 대선 후보들도 마찬가지다.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힘 경선 과정에서 ‘분권’이라는 의제가 진지하게 다루어진 적은 없다. 민주당 김두관 후보가 유일하게 ‘자치분권과 균형발전’을 시종일관 외쳤으나 이렇다 할 메아리도 없이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손뼉이 마주쳐야 울림이 생기는 법인데, 모두 ‘대권’을 향해 줄달음치고 있을 뿐 ‘분권’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우리나라 대통령의 권력은 지나칠 정도로 막강하다. 대통령은 국가 원수이며 정부 수반이다. 국가권력의 최정점에 있으며 어마어마한 자원을 동원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많은 논객이 대통령이 과도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걱정을 했다. 한국 정치는 밑바닥에서부터 최고 정점까지 소용돌이치며 올라가는 형국이다. 이러한 권력 집중체제는 늘 문제를 일으켰다. 몇몇 대통령들의 일그러진 모습도 이런 구조 때문에 나온 것이며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제도 개선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그런데 각 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 과정에서 이런 점에 대한 문제 제기와 토론도 비전도 없었다. 정말 유감이다. ‘두 번째 분단’체제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대권’보다 ‘분권’이 더 중요하다.
김태일 장안대 총장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나도 부정선거라 생각했었다”···현장 보고 신뢰 회복한 사람들
- 국힘 박상수 “나경원 뭐가 무서웠나···시위대 예의 있고 적대적이지도 않았다”
- 늙으면 왜, ‘참견쟁이’가 될까
- 공영방송 장악을 위한 이사장 해임 “모두 이유 없다”…권태선·남영진 해임무효 판결문 살펴
- 내란의 밤, 숨겨진 진실의 퍼즐 맞춰라
- ‘우리 동네 광장’을 지킨 딸들
- 대통령이 사과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사과해요, 나한테
- 독일 크리스마스 마켓에 차량 돌진…70명 사상
- [설명할경향]검찰이 경찰을 압수수색?···국조본·특수단·공조본·특수본이 다 뭔데?
- 경찰, 경기 안산 점집서 ‘비상계엄 모의’ 혐의 노상원 수첩 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