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世說新語] [645] 뒷간거리의 가무락조개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21. 10. 21.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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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시 ‘가무락조개’는 모시조개의 다른 이름이다. 시는 “가무락조개 난 뒷간거리에 빚을 얻으려 나는 왔다”로 시작된다. 빚을 못 얻고 되돌아오는 길, 팔리지 않은 채 그대로 놓인 뒷골목 시장의 가무락조개를 보며 시인은 “가무래기도 나도 모두 춥다”고 했다.

그다음 구절이 이상하다. “추운 거리의 그도 추운 능당 쪽을 걸어가며 내 마음은 우쭐댄다. 그 무슨 기쁨에 우쭐댄다.” 여기서 갑자기 툭 튀어나온 ‘그’가 시의 바른 해독을 방해한다. 가무래기 이야기를 하다가 ‘그’를 말했으니, 주어가 그인지 내 마음인지 파악이 어렵다. 가무락조개가 어떻게 걸어가나? 그걸 보고 내가 우쭐댈 수 있나?

찾아보니 친구에게 돈을 못 빌리고, 가무래기라는 ‘맑고 가난한’ 새 친구를 만난 판타지를 시로 만든 거라는 분석이 보인다. 맑고 가난한 친구인 조개들이 이 세상을 대신 비웃어 주며 세상을 욕하는 판타지라고도 했다. 텍스트 분석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이 시를 나눠주고 분석을 시켜 보았다. 역시 대부분 ‘그’에 걸려서 넘어진다.

“추운 거리의 그도 추운 능당 쪽을 걸어가며”는 추운 거리에 있는 그(조개)가 추운 능당 쪽을 걸어가는 게 아니라, “추운 거리, 그중에서도 추운 능당 쪽을 걸어가며”란 뜻이다. ‘그도’는 ‘그것도’나 ‘그중에서도’의 줄인 말이다. 이걸 3인칭 대명사로 해석하면 시 해석이 판타지를 넘어 코미디가 된다.

시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이 추운 세상의 한 구석에/ 맑고 가난한 친구가 하나 있어서/ 내가 이렇게 추운 거리를 지나온 걸/ 얼마나 기뻐하며 락단하고/ 그즈런히 손깍지 벼개하고 누어서/ 이 못된 놈의 세상을 크게 크게 욕할 것이다.” 친구도 나와 똑같이 가진 게 없어 빚을 얻지는 못했다. 그런 그가 추운 거리를 지나 자신을 찾아준 내가 고맙고, 맑고 가난한 마음들을 괴롭히는 이 못된 놈의 세상이 고약하다며 나 대신 세상을 향해 욕을 해줄 것이라는 얘기다. 청빈(淸貧)은 그때나 지금이나 참 어렵다. 그래도 마음 나눌 벗이 있어서 내 마음이 우쭐댄다. 그 벗은 어디에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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