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진료소든 국경이든 달려간다.. 음악은 봉사이니까"

김성현 기자 입력 2021. 10. 21.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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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내한 공연.. 첼리스트 요요마 인터뷰
첼리스트 요요마. /크레디아

지난 3월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인구 4만 소도시 피츠필드. 지역 대학에 설치된 코로나 진료소에 첼리스트 요요마(馬友友·66)가 나타났다. 검은 빵모자와 허름한 점퍼, 하늘색 마스크까지. 누가 봐도 동네 아저씨 모습이었다. 중국계 미국인인 그는 이 지역에 집이 있다.

코로나 백신 2차 접종을 마친 요요마는 그 자리에서 첼로를 꺼냈다. 그 뒤 바흐의 무반주 모음곡 1번과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 등을 15분간 연주했다. 코로나 진료소는 근사한 즉석 콘서트장으로 변했고, 연주가 끝나자 접종 대기자들의 박수 갈채가 쏟아졌다. 당시 영상은 온라인으로 전파되면서 조회 수 27만을 기록했다.

지난 3월 미 피츠필드 대학 진료소에서 15분간 깜짝 연주를 한 첼리스트 요요마. /인스타그램

24일 내한 공연을 앞둔 그에게 서면으로 당시 일에 대해 물었다. 요요마는 “당시 노인 한 분께서 의자를 돌리더니 가까이 다가와서 연주 내내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경청하시던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분은 갈증을 달래기 위해 물을 들이켜듯이 음악을 들으셨다”고 말했다. 그는 “음악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서든 연주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요요마는 현장을 두려워하지 않는 음악인이다. 2019년 미국이 멕시코 접경에 장벽을 건설하겠다고 밝히자, 그는 현장으로 달려가 바흐의 무반주 모음곡 1번을 야외 무대에서 연주했다. 당시 그는 “문화는 벽(walls)이 아니라 다리(bridges)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면 인터뷰에서 요요마는 “음악인이라는 내 직업이 지닌 사회적 책무는 과학자와 화가, 작가와 결코 다르지 않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고 만들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

요요마가 2019년 4월 13일 텍사스 러레이도 트레스러레이도 공원에서 첼로를 연주했다.

지난해 코로나 사태 이후 그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주제가 위안과 희망이다. 그는 “이 시기에 우리 음악가들은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누가 음악인들을 필요로 할까? 코로나 시대에 음악의 목적은 무엇일까 계속 자문하다가 떠올린 주제”라고 말했다. 그 뒤 그는 동료 피아니스트 캐스린 스톳과 함께 멘델스존의 무언가, 그리그·드보르자크의 소품 등을 묶어서 ‘위안과 희망의 노래(Songs of Comfort and Hope)’라는 음반을 펴냈다. 24일 예술의전당에서도 이 주제로 리사이틀을 연다. 그는 “인류가 음악을 창조한 건 ‘봉사(service)’하기 위해서라고 믿는다. 그러기에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거대한 도전(코로나 사태)을 맞아서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 위해서 내게 위안이 되었던 음악들을 세상에 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만면에 가득한 미소처럼 그의 말에는 권위적인 구석이 별로 없다. 그는 “첼로는 무한한 인간 경험과 창조력이라는 문제를 탐구하기 위한 도구라는 생각이 든 건 거의 50세가 되고 나서”라고 답했다. 그의 말에 지천명(知天命)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요요마는 클래식 이외 장르에도 언제나 개방적 자세를 보인다. 만능 보컬리스트 보비 맥퍼린이나 기타리스트 산타나와도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영화 음악 작업에도 활발하게 참여한다.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요요마는 김영욱(바이올린), 이마누엘 엑스(피아노)와 피아노 트리오로 활동했고, 최근에는 김동원(장구)·김유영(비올라)·김지현(가야금) 등과 함께 ‘실크로드 앙상블’을 창단하기도 했다. 문명 교류의 통로였던 실크로드 인접국 연주자들과 함께 동서양 음악 융합을 모색하는 퓨전 앙상블이다. 요요마는 “현재 한국 문화는 단지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와 세계 전체 세대가 품고 있는 꿈(dreams)을 표현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어서 언제나 감탄한다”고 말했다. 머지않아 그가 한국 대중음악과도 협업하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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