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시골편지] 전화교환원
[경향신문]
산밭은 수시변동. 요샌 감밭. 보통 새들에게 다 내주는데, 올핸 제법 감이 많이 달려 절반을 땄다. ‘든부자난거지’ 식으로다가 속배가 부르네. 벌바람이 불더니 밤엔 기온이 뚝. 더위와 추위가 일주일 간격을 두고 물똥싸움. 고구마를 캐낸 황토 구릉을 보니 아는 스님 두상만 같구나. 친구 스님 얘기, 동자승 시절 때때중이라 놀렸는데, 그게 그렇게 서러웠다고. 어른이 되니 이젠 민머리를 보고 때까중이라 놀리는 애들까지 있더란다. 웃어버릴 법력을 얻은 스님은 누구에게나 합장하고 성불을 빌었지.
어릴 때 마을회관과 교회에만 전화기가 있었다. 산속 가난한 암자엔 전화기가 아직 없었다. 이장이 출타해서 다급한 스님은 교회를 찾아와 전화 한 통 청했는데, 목사인 아버지와 두 분이 차담을 나누는 걸 신기하게 구경했었다. 그때 그 스님 지금은 휴대폰을 들고 계시겠지? 이런 세상이 올 줄을 누가 알았겠나.
1987년까지 우리나라엔 전화교환원(보통 교환수라 불림)이 있었대. 전화를 건 이에게 받는 이를 찾아 연결해주는 일을 했었다. 나도 어린 시절 전화교환원과 통화를 해본 세대다. 전화 한번 하려고 해도 중매가 성사 안 되면 꽝.
집배원과 전화교환원 덕분에 사랑에 골인한 연인들이 솔찬했다. 자유연애가 불이 붙고, 단풍나무도 불이 붙고, 소방수는 가을이면 불 끄러 다니느라 바쁘고 괴로워. 햇볕이 좋아 마당 평상에서 요가를 하곤 해. 전화가 방해꾼이라 꺼 놓는다. 인도 요가 선생처럼 머리를 풀고서 다리를 꼬지. 안꼰다리 골라꽈, 꼰다리 또꽈 같은 이름을 가진 요기처럼 폼에 죽고 산다. 인도의 철학자 ‘알간디 모르간디’의 동그란 안경을 코끝에 놓고서 깨어나기 명상. 전화기도 뒤따라 깨어나면 쌓인 카톡. 산중고요를 방해하는 마귀떼들의 꼬드김. 전두환씨의 ‘조직 동원’은 아니라서 다행이지. 까마귀밥 단감이나 싸 들고 마실 행차 나갈란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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