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세상] 국제결제은행이 본 빅테크
[경향신문]
국제결제은행(BIS)은 지난 10월6~7일 이틀에 걸쳐 ‘빅테크 규제’를 주제로 콘퍼런스를 개최했다. 빅테크 규제 방안 모색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관련 기업 및 정책당국 모두에 가장 뜨거운 화두이자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어젠다이기 때문에 콘퍼런스 자체가 새로운 일은 아니다. 다만 두 가지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하나는 BIS가 개최했다는 사실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BIS는 회원국 중앙은행의 통화 및 금융 안정 노력을 지원하는 걸 사명으로 하는 국제금융기구이다. 바젤협약으로 대표되는, 은행의 건전성 규제와 감독을 위한 국제표준을 제정하는 바젤위원회가 BIS 산하 조직이기도 하다. 간단히 말하자면, 금융회사, 특히 은행의 건전성 감독과 규제를 관장하는 BIS가 빅테크로 불리는 대형 플랫폼회사를 대상으로 하는 규제 방안을 논의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금융시스템 안정이 아니라 경쟁 및 독과점 이슈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였다는 점이다. BIS는 각국의 금융당국들이 입법화하거나 추진 중인 규제 방안들을 체계적으로 소개, 제안하고 있는데 그중에서 우리도 검토할 만한 몇 가지만 살펴보자.
첫째, BIS는 동일행위-동일규제 원칙을 강조함과 동시에 기업체 기반 규제의 보완적 도입을 제언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업주의 원칙에 입각한 업권별 규율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산업의 융복합화 내지 이업종 간 결합 현상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행위 중심의 기능별 규율체계, 즉 동일행위-동일규제를 도입하는 게 필요하다. 그런데 BIS는 이러한 기능별 규제만으로는 빅테크에 일률적으로 적용하기 어려울 수 있으며,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우려가 있다고 본다.
그래서 소위 문지기(gatekeeper)로서 시장 경쟁을 저해하거나 소비자와 경쟁자들을 차별할 수 있는 대형 플랫폼 사업자에 대해서는 별도의 사전적인 기업체 기반(entity-base)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금융산업에서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금융회사나 금융복합기업집단을 지정해 별도의 규제를 적용하는 방식이 대표적인 예가 될 터이다. 사실 미국의 반독점패키지법이나 유럽연합(EU)의 디지털시장법, 중국의 플랫폼 경제 분야 반독점지침 등은 이미 이러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둘째, BIS는 데이터 보호 및 공유의 중요성과 가치를 다시금 강조하고 있다. EU의 경우 이미 개인정보보호규정(GDPR)을 마련해 데이터 공유의 기준을 제시한 바 있다. 또한 2022년 중반까지 오픈파이낸스 확대를 위한 입법안을 만들 계획이다. 게이트키퍼의 데이터 독점을 방지하고, 사용자들의 활동으로 생산된 데이터의 효율적인 이동성을 제공하도록 규정함으로써 데이터의 비대칭성을 해소하겠다는 뜻이다. 한편,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도 지난 7월 행정명령을 통해 소비자의 금융거래정보의 이동성을 촉진하도록 지시한 바 있다. 기존 금융회사 이외에 애플, 페이스북,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기술기업들도 모든 개인들이 본인이 원하면 온라인 서비스 제공자들 사이에서 자신들의 데이터를 쉽게 이동시킬 수 있도록 데이터 이동 플랫폼 구축을 위해 작업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셋째, BIS는 디지털 시장 및 빅테크에 대한 효과적인 규제와 감독을 위해서는 관련 부처 간에 긴밀한 협조가 필수적이라고 제안하고 있다. 더 나아가 아예 전담 감독기구를 설치해야 한다는 의견도 일부에서 제시되었다. 빅 블러(Big Blur), 즉 경계의 종말 현상은 산업 영역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정책과 제도 운영의 영역에서도 동일한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예컨대 공정거래위원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금융위원회가 각각의 기존 영역에서 규제 공백 없이 빅테크에 대한 효율적인 감시와 감독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바람직한 규율체계의 설계와 운영을 위해서는 관련 부처들 간 정책 공조를 공식화,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정중호 하나금융경영 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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