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105] 미술관의 패션 전시
미술관들이 재개관한 올가을 뉴욕에서 패션디자인 전시 몇 개를 감상할 수 있다. 그중 하나는 ‘장미와 패션’이라는 주제로 열리고 있는 FIT대학 패션박물관 전시다. 패션 역사에서 장미꽃을 모티프로 한 디자인 컬렉션으로, 18세기 자수부터 랑방, 알렉산더 매퀸, 레이 가와쿠보 같은 디자이너들의 장미꽃을 응용한 의상과 액세서리들을 망라하고 있다. 완벽한 구조미로 사랑과 럭셔리의 상징으로 알려진 장미가 궁극의 미를 추구하는 패션의 영감과 소재가 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또 하나의 전시는 브루클린 미술관의 ‘크리스티앙 디오르’ 쇼다. 우연한 연관성이겠지만 크리스티앙 디오르는 집 정원에서 늘 장미를 키우고 가꾸던 어머니와 파리에서 꽃 도매상을 했던 동생 캐서린의 영향으로 꽃 패턴을 디자인에 적극 응용했다<사진>. ‘뉴 룩’으로 불렸던 하이 스타일 창조로 데뷔와 동시에 파리 패션계를 장악한 크리스티앙 디오르는 설명이 필요 없는 패션의 전설이다. 그레이스 켈리, 엘리자베스 테일러, 잉그리드 버그먼 등 추억의 할리우드 미녀 배우들이 모두 연모해서 입었던 옷이기도 하다. 전시된 옷 200여 벌, 스케치와 천 샘플, 빈티지 향수병들이 아름다운 보자르(Beaux-Arts) 양식 건축 공간에서 더욱 우아한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유명 패션디자이너의 전시는 이미 미술관의 히트 상품이 된 지 오래다. 패션의 본질이 최소한의 기능으로 미를 극대화하는 만큼, 예술품으로 간주되는 현상은 그다지 낯설지는 않다. 그래도 초창기에는 보수적인 박물관, 미술관들에서 거센 저항이 있었다. 고귀한 미술품을 ‘모시는’ 공간에 상업주의 ‘상품’을 들여놓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그들이 간과했던 것은 관객의 호응이었다. 만년 적자로 끊임없이 기부금에 의존해야 하는 미술관에서 패션디자인 전시는 적자를 보지 않고 관람료 수입만으로 수익을 맞출 수 있는 기획이었다. 런웨이 쇼나 유명인들 패션을 감상하는 패션디자인의 영역이 예술품으로 전시, 관람되는 현상은 확실히 진보한 개념으로 보인다. 상업주의 최고봉에 위치한 패션 산업에 약간의 ‘시(詩)’를 도입하려는 시도는 당분간 성공적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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