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포럼] "뽑을 사람이 없다"

원재연 입력 2021. 10. 20.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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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후보, 의혹사건 수사 대상
주자들 비호감도가 더 높은 대선
중도층이 냉소로 등을 돌리면
진영 정치 더욱 기승 부릴 것

프랑스 대선 1차 투표를 40일가량 앞둔 2017년 3월 중순 유력 대선주자인 무소속 에마뉘엘 마크롱 전 경제부 장관이 검찰 수사 선상에 올랐다. 경제부가 2016년 라스베이거스 가전박람회(CES) 행사를 특정 업체와 수의계약한 의혹과 관련해 파리 검찰청이 당시 경제부 장관이던 마크롱에 대한 예비조사(내사)에 착수한 것이었다. 마크롱 내사 소식이 전해진 날 공화당 대선 후보 프랑수아 피용도 피의자 신분이 됐다. 의원 시절 자신의 아내와 두 자녀를 보좌관으로 허위 채용한 혐의였다. 지지율 1위를 달리던 극우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 대표는 폭력과 테러를 조장하는 사진을 유포한 혐의로 이미 검찰 수사를 받고 있었다.

지지율 1∼3위 후보가 모두 수사 대상이 되면서 “대선이 난장판이 됐다”는 비판이 터져나왔다. 검찰 수사 결과가 대선판을 뒤흔들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됐다. 유권자들 사이에선 “대선후보인지 범죄자들인지 모르겠다. 도대체 누구를 뽑아야 하나”라는 푸념이 쏟아졌다. 일부에선 투표를 포기하려는 기류도 나타났다. 이런 분위기는 현실이 됐다. 마크롱과 르펜이 맞붙은 5월 대선 결선투표에서 프랑스 유권자의 11.5%가 무효표를 던졌다. 역대 최고치였다. 등록 유권자의 4분의 1 이상은 아예 투표소에도 가지 않고 기권했다. 1969년 이후 가장 높은 기권율이었다.
원재연 논설위원
불행하게도 우리 대선판도 막장이다. 여당 대선 후보와 제1야당 1위 후보가 동시에 수사를 받는 신세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대장동 개발특혜 의혹과 관련해 검찰의 수사 대상에 올랐고,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수사 중인 고발사주 의혹 피의자다.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일이다. 유력 대선주자들에 대한 비호감도가 호감도보다 훨씬 높은 점도 이례적이다. 정치의 양극화가 원인이다. 진영 대결이 대선판을 지배하면서 지지하는 진영의 후보가 아니면 싫어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사정이 가장 심각한 건 이 지사다. 그는 대장동 개발사업을 “단군 이래 최대 공익 환수 사업”이라며 자신의 최대 치적으로 자랑한다. 하지만 문재인정권과 가까운 진보성향 단체들조차 이 지사 주장을 정면 반박한다. “앞에서는 공공의 탈을 쓰고 뒤에서는 민간택지로 개발이익을 극대화한 것”(참여연대와 민변), “모범적 공익사업이 아니라 개발이익, 임대주택, 저렴한 분양가 등 모두를 포기한 민간특혜 부패”(경실련)라고 질타한다. 이 지사의 자화자찬이 무색하다. 그런데도 그는 국정감사장에서 궤변과 적반하장으로 일관했다. 이 지사가 정권을 잡았을 때를 걱정하는 유권자가 적지 않을 것이다.

윤 전 총장은 고발사주 의혹도 모자라 손바닥 ‘왕(王)’자에 미신 논쟁까지 불거졌다. 하루가 멀다 하고 말실수를 쏟아낸다. 한두 번은 실수지만 반복되면 실력이다. 야당 경선후보들의 막말, 진흙탕 싸움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정권교체가 필요하다’는 여론조사 응답자 비율이 절반을 훌쩍 넘는데도 야당과 후보 지지율이 이를 크게 밑도는 이유를 아직도 모르는 모양이다. 야당 후보가 집값·전세값 급등, 세금 폭탄, 고용 참사 등 현 정권의 무능과 정책 실패, 내로남불에 지친 국민의 정권교체 열망을 담아낼 수 있을지 유권자들이 고개를 갸웃거리기 때문이다.

대장동 개발특혜와 고발사주 의혹의 진실게임이 시작되면서 ‘공정과 정의의 복원’ 같은 대선의 시대정신은 실종됐다. 경제 회생 방안과 코로나19 이후 새로운 외교안보 전략 마련 등 정책과 비전 경쟁은 뒷전으로 밀려난 지 오래다. 미래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여야의 사생결단식 대결이 진행 중일 뿐이다.

내년 3·9 대선이 5개월도 남지 않았다. 보름 후면 국민의힘 후보도 선출된다. 묻지마식 진영 대결은 더 심해질 게 불을 보듯 뻔하다. 가장 걱정되는 건 중도층이 냉소와 분노로 대선에 등을 돌리는 것이다. 정책과 비전 대결 중심의 선거는 끝내 실종되고 진영 정치가 더 기승을 부리게 될 것이다. 4년 전 프랑스 대선 상황이 우리 얘기가 되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원재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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