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에 사과 의향 묻자 "무슨 화를 내라고 한 얘기도 아니다"
[경향신문]
“전두환 정치 잘했다” 발언을 “인재 활용 취지” 소신 안 굽혀
안 의사를 윤봉길, 이한열에 부마항쟁…역사관 리스크 확산
국민의힘 대선 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61)이 ‘전두환 옹호’ 발언 논란에 대해 사과 대신 정면돌파를 선택했지만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윤 전 총장의 역사 인식 관련 논란이 처음은 아니지만 단순 실수로 넘길 수 있었던 앞선 사례들에 비해 이번 발언은 몰역사적인 인식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파장이 훨씬 더 클 수밖에 없다. 정치 행보 초반 현 정권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역사관을 문제 삼았던 윤 전 총장이 이제는 자신의 발언으로 역공을 받는 상황에 처했다.
윤 전 총장은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와 관련한 발언에 대해 20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대통령이 되면 인재를 적재적소에 기용하겠다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대구 일정 중 ‘사과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무슨 화를 내라고 한 얘기도 아니다”라고 답했다. ‘인재활용’이라는 발언 취지가 잘못 전달됐다는 의미다. 윤 전 총장은 전날 전씨와 관련해 “군사 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 잘했다고 얘기하는 분들이 많다. 호남 분들도 그런 얘기를 한다”고 말했다.
윤 전 총장은 앞서도 역사 관련 실언으로 구설에 올랐다. 지난 8월 안중근 의사 영정 앞에서 분향하는 사진을 올리면서 윤봉길 의사 추모글을 올리는가 하면, 7월 부산 민주공원 방문 때는 이한열 열사 조형물 앞에서 “부마항쟁 때죠?”라고 물어 빈축을 샀다. 정치 행보 초반부터 역사관 문제를 앞세워 여권을 공격하더니, 정작 본인부터 기초적인 역사 인식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돌아왔다. 윤 전 총장은 6월 정치참여 선언 당시 “죽창가 부르다 한·일관계 파탄났다”고 정부 대일정책을 비판했다. 현 정권이 과거퇴행적인 역사관에 잡혀 있다는 의미였다. 7월에는 이재명 경기지사의 ‘미 점령군’ 발언을 두고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정했다”고 비판했다.
윤 전 총장의 전씨 옹호 발언은 안중근 의사나 이한열 열사 때와 상황이 다르다. 앞선 사례들은 단순 해프닝으로 넘길 수 있었지만, 전씨 관련 발언은 윤 전 총장의 역사관과 민주주의 인식에 관련된 문제다.
정치권에선 윤 전 총장이 기존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소신을 드러낸 것 아니냐는 분석이 많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윤 전 총장 최대 약점이 국정수행 능력 아니냐”면서 “그런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전두환 카드’를 꺼내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윤 전 총장 입장에선 정면돌파 외에 다른 선택지를 택하기는 어렵다. 인재 활용 취지의 발언이었다는 입장을 밀어붙일 수밖에 없다.
윤 전 총장이 박빙의 경선에서 노골적으로 우클릭을 선택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대학 모의재판에서 전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던 그의 지난 이력도 무색해졌다. 이번 논란은 ‘대학생 윤석열’이 아니라 ‘대선 후보 윤석열’의 역사관을 묻고 있다. 보수 표심이 중요한 당내 경선에서는 이득을 볼 수 있겠지만, 이 지사와 본선에서 맞붙을 경우 리스크가 본격적으로 드러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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