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침 어긴 산재 역학조사 지연에..피해 노동자만 그사이 죽어 갔다
[경향신문]
‘3개월 내 처리’ 지침에도
직업환경연구원 역학조사
작년 491건 중 56%가 위반
최근 5년 위반 비율 더 늘어
18세 때 삼성전자에 입사해 액정표시장치(LCD) 천안사업장(현 삼성디스플레이)에서 7년간 근무한 뒤 유방암을 진단받았던 A씨(39)가 지난달 19일 사망했다. A씨는 2019년 12월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 보상을 신청했지만 사망 때까지 1년8개월이 지나도록 산재 승인 여부를 통지받지 못했다. 문제는 질병과 유해·위험요인의 인과관계를 따지는 ‘역학조사’였다. 경향신문 취재 결과, 정부는 이 역학조사에 소요되는 기간을 내부 지침으로 정해놨지만 상당수 사건을 이 지침을 어겨 처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20일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비례)을 통해 확보한 자료를 보면, 근로복지공단 산하 직업환경연구원은 업무상 질병 심의 및 자문 규정에 따라 의뢰받은 자문을 3개월 내에 처리해야 하지만 지난해 전체 처리 사건(491건)의 56.6%(278건)는 규정을 위반해 처리됐다.
3개월은 사업주 등에게 추가 자료 요청, 동료 노동자 면담, 특별진찰 등 연구원 바깥에서 진행되는 절차를 뺀 기간이다.
구체적으로 사건 처리가 지연된 사유로는 ‘역학조사 지연에 따른 순차적 진행’이 70.5%(196건)로 가장 많았다. ‘문헌 고찰’은 20.5%(57건), ‘시료 채취’는 8.99%(25건)였다. 역학조사 때문에 처리가 지연된 사례 중에서는 최종 진단명이 암인 경우가 37.2%(73건)였다.
직업환경연구원의 역학조사에 소요되는 평균 기간은 2019년 206.3일, 지난해 275.2일, 올해는 7월까지 376.4일로 지침을 훌쩍 뛰어넘었다. 석 달 안에 끝나야 할 역학조사가 1년 넘게 이어지는 것이다. 지침을 위반해 처리한 사건 비율은 최근 5년여간 계속 악화돼왔다. 2017년 33.4%, 2018년 40.7%, 2019년 42.5%로 잇따라 비율이 증가했고, 올해는 8월까지 278건 중 70.8%인 197건이 지침 위반이었다.
희귀질환·신종 직업병은
‘6개월 내 완료’ 1건도 없어
노동계 “조사 생략 확대를”
희귀질환이나 새로 나타난 직업병 관련 역학조사를 하는 산업안전보건공단 산하 산업안전보건연구원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역학조사평가위원회 운영지침은 산업안전보건공단이 역학조사를 의뢰받은 날로부터 6개월 내에 역학조사 결과를 심의·의결해야 된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6개월 내에 역학조사를 완료해 근로복지공단에 회신한 사례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역학조사에 소요되는 평균 기간은 지난해 기준 438일이다. 노동인권단체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반올림)가 처리 지연으로 파악한 삼성 관련 산재 신청만 11건이다. 이 중 4건은 2018년에 신청해 햇수로 3년이 넘었다.
노동계에서는 역학조사에 지나치게 오랜 기간이 소요되는 것은 피해자가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등 문제가 크다고 보고, 이른바 ‘추정의 원칙’을 적용해 역학조사를 생략해야 한다고 정부에 요구해왔다.
노동부는 역학조사를 생략해 산재 처리 기간을 단축하는 방안을 도입했다. 하지만 기존에 산재로 인정된 노동자와 같은 직종에서 비슷한 시기 근무하는 등 생략 대상이 되기 위한 요건이 까다로워 생략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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