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범철 칼럼] 종전선언과 유엔군사령부 해체

2021. 10. 20. 19:5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

북한이 종전선언에 관심을 보이면서 관련된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북한의 요구 조건이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해달라는 것이어서 한미간 이견이 우려된다. 서훈 국가안보실장이 최근 워싱턴을 방문해 종전선언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8일 워싱턴에서 가진 한미 북핵 특별대표간 회동에서 성 김 미 대표는 종전선언도 논의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의미를 내비치긴 했다. 그렇다면 왜 미국은 종전선언에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이는 것일까. 바로 유엔군사령부 때문이다.

유엔군사령부는 1978년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한미연합사령부에 이관하면서 국민적 관심으로부터 멀어져 갔다. 하지만 여전히 한반도 유사시 한국을 보호하는데 중요한 기구다. 일본에 있는 유엔사 후방기지를 사용할 수 있어 미군과 국제사회의 전시증원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해주기 때문이다.

유엔사는 1950년 7월 7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84호로 출범하게 된다. 결의의 내용을 보면 왜 유엔사가 중요한지 알 수 있다.먼저 1항은 북한의 무력공격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원조하고 해당 지역에서 국제평화와 안보를 회복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3항은 국제사회에 미국 주도의 통합사령부에 군대를 파견하고 원조를 제공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4항은 동 사령부의 지휘관은 미국이 임명하고, 5항에서 동 사령부가 유엔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상의 내용은 첫째, '6.25 전쟁'을 일으킨 북한의 불법성을 확인해주고 있다. 북한과 국내 일각에서는 6.25 전쟁 발발이 남북의 공동책임이거나 한국의 북침이라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유엔이라는 국제기구에서 그 책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둘째, 유엔군사령부의 정당성을 제시한다. 동 결의는 통합군(unified command)을 구성할 것을 촉구했지만 유엔의 깃발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유엔군사령부는 유엔의 공식조직은 아니며 6.25 전쟁에 대응하기 위한 임시기구지만, 유엔 깃발을 사용하도록 함으로써 법적인 정당성을 부여했다. 북한이 없애려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북한은 그들의 불법 남침을 법적으로 확인해주고 있는 유엔사를 하루라도 빨리 해체하려 했다. 1950-60년대 제3세계의 많은 국가들이 식민지로부터 독립하고 1970년대 들어 유엔 총회의 다수가 된 이후부터, 줄기차게 유엔사 해체를 추진해 왔다. 그 명분은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유엔사와 같은 전쟁수행 기구가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와 반대의 논리로 유엔사 보전을 위해 우리가 주장한 것이 평화체제가 도래한 이후 유엔사를 해체하겠다는 견해였다. 이 두 주장은 유엔 총회에 회부되어 모두 통과되었다. 당시 주장을 오늘의 단어로 재해석하면 북한의 주장은 유엔사 해체를 평화체제의 입구로 보았고, 우리는 평화체제의 출구로 보았던 것이다. 최근 종전선언을 둘러싼 비핵화 입구론과 출구론이 유사한 맥락을 지닌다.

문재인 대통령은 종전선언은 정치적 선언일 뿐이고, 유엔사나 주한미군 주둔과 무관하다고 밝힌 바 있다. 북한은 입장을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이중기준 철폐를 주장하며 우리를 압박하고 있다. 중국이 참여할 경우 종전선언을 유엔사나 주한미군과 연결하려 들 전망이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남북미중 4자의 이해가 고루 반영된 종전선언은 단기간의 협상으로 만들어지기 어렵다. 급하게 서두른다면 아마도 한반도에서 전쟁이 종식되었다는 정치적 선언으로 그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그 이후다. 북한과 중국은 종전선언이 만들어졌으니 유엔사가 해체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안보리 결의 84호가 규정한 유엔사의 존속 이유가 사라졌다고 할 것이다. 북한은 유엔사가 존속하고 있기에 핵을 포기할 수 없다고 우겨댈 것이다. 북핵이라는 실질적인 위협은 그대로 있는데, 유엔사만 해체될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이 점을 미국이 우려하는 것이다.

종전선언은 북한 비핵화의 실질적 진전과 함께 추진되어야 한다. 비핵화가 진전된 상황에서 종전선언을 할 수 있고, 유엔사의 운명도 그 범위 내에서 결정해야 한다. 유엔사에 대한 고민 없이 종전선언을 비핵화의 입구로 하려는 시도는 위험한 도박이다.

Copyright © 디지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