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재해 인정, 기약 없는 싸움

한겨레 입력 2021. 10. 20. 18:16 수정 2021. 10. 21.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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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와 마주한 가족의 삶 연쇄기고 _1

[왜냐면] 서진솔

사단법인희망씨 활동가

최동범씨가 지난 6월22일 천안시에서 800번 시내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최씨는 지난해 6월 일하다 숨진 아내의 산업재해 인정을 위해 1년 넘게 투쟁하고 있다.

800번 버스가 천안시청을 지나 백석동을 향한다. 새벽 첫차를 모는 기사는 최동범씨다. 동범씨는 최근 심리적인 불안감이 커지면서 승객과의 마찰이 잦아졌다고 했다. 요금 인상 불만을 토로하거나 마스크를 안 쓰는 승객들이 나타나면, 다툼으로 이어질 때가 많았다. 그는 “예전에 쉽게 참던 것도 요즘엔 점점 더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동범씨의 심리 상태에 변화를 가져온 계기는 아내의 사고다. 지난해 6월1일, 그는 여느 때와 같이 근무를 하던 중 아내와 함께 일하러 간 지인에게 전화를 받았다. 아내가 1년 넘게 조리사로 일한 ㄱ사 물류센터 구내식당 조리실에서 쓰러졌다는 것이다. 그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급성심근경색으로 인한 사망’ 판정을 받은 뒤였다. 회사 쪽 관계자는 사망 소식을 듣고 병원을 빠져나가 만날 수 없었다. “사고 내용을 알 수 없었어요. 경찰 신고도 그 자리에서 제가 했어요. 경찰 과학수사대랑 같이 (회사에) 들어갔죠. 그때 조리실 직원들이랑 보안팀장에게 (상황에 대해) 하나씩 듣기 시작했어요. 심폐소생술 하고 119 신고했다고(들었어요). 경찰에 신고 안 한 이유를 물어보니 답을 회피하더라고요.”

동범씨는 건강했던 아내에게 급성심근경색이 발생한 원인으로 청소 약품을 지목했다. 아내는 식당에서 조리와 배식을 담당했다. 외부 업체가 맡아야 하는 청소 업무까지 처리했는데, 조리실 직원 중 상대적으로 나이가 어려 이를 도맡아 하다시피 했다고 동범씨는 전했다. 아내가 집에 오면 매일 옷에서 화학약품 냄새가 났다. 약품이 독해 고령의 노동자들은 청소를 기피했다. 그는 “코로나가 확산한 (지난해) 2월부터 (사쪽에서) 청소를 강화하라는 지침이 내려왔고, (그 뒤) 아내가 두통과 메스꺼움을 호소했다. 락스와 오븐클리너를 섞어서 썼다고 했다” 이렇게 설명했다. 이러한 내용은 동범씨가 아내의 사고 전날 퇴직한 직장 동료에게 접촉해 알아냈다. 오랜 설득 끝에 받아낸 진술서와 약품에 관한 전문가 의견을 고용노동부, 경찰에 제출했다. 사쪽의 협조는 언감생심. 근로복지공단은 ‘회사가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강제권이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동범씨의 아내는 ㄱ사 협력업체의 협력업체인 ㄷ사 직원이었다. ㄱ사가 ㄴ사에 조리실 관리를 맡기고, ㄴ사는 다시 ㄷ사에 인력관리를 위탁한 구조다. 2018년 12월 ‘김용균법’(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원청 사업자의 책임이 강화됐다. 동범씨가 아내의 사고에 대한 ㄱ사의 책임을 강조하는 이유다. 그러나 아직 사쪽과 한번도 만나지 못했다. 그는 “(지난해 7월 첫 기자회견 뒤) 기사가 나오고 사쪽에서 연락이 왔었어요. (제가) 노무사와 함께 3자대면하자고 했는데, 연락이 없더라고요. 한참 뒤에 한번 더 연락이 와서 똑같이 얘기했는데 역시 답이 없었어요.”

사고가 발생한 지 1년이 넘었지만, 산재 심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기간이 길어지자 동범씨는 지난 5월과 6월 근로복지공단에 관계자 면담을 요청했고, 처리 경과를 문의했으나 뚜렷한 답을 듣지 못했다. 공단의 업무상 질병 산재 처리기간은 올해 8월 기준 평균 183.6일로, 처리 지연 문제가 해마다 지적되고 있다. 동범씨는 이보다도 10개월가량 더 긴 시간 동안 ‘산재 심사’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경찰은 부검 결과 사고가 아닌 질병(급성심근경색)에 의한 사망이니 조사할 게 없다며 한달 만에 수사를 종결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동범씨는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정의당 국회의원에게 도움을 청했고, 수사 종결을 6개월 지연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받아낸 수사 결과에는 ‘고용노동부에서 조사해야 한다’는 내용뿐이었다.

동범씨가 산재 승인을 기다리며 할 수 있는 건 시위밖에 없었다. 그는 5월21일부터 6월1일까지 민주노총, 정의당과 함께 한 팻말 시위, 그리고 이어진 기자회견 등을 통해 고용부 천안지청에 ‘수사 및 조사 촉구’를, ㄱ사에 ‘책임 인정 및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이후엔 홀로 휴무일마다 1인시위에 나서고 있다.

여전히 동범씨는 산업재해 유가족이자 세 아이의 보호자, 거대 기업과 맞서는 활동가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그조차 이러한 이름표들을 언제 뗄 수 있을지 알지 못한다. “산재는 기약 없는 싸움”이기 때문이다.

사단법인희망씨와 (재 )공공상생연대기금이 함께 산재노동자가족지원사업으로 만난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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