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안에서의 '견딤'이 민주 시민을 만든다

한겨레 2021. 10. 20.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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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세상읽기] 이병곤|제천간디학교 교장

덴마크에 다녀왔다. 덴마크대안교육협회가 주관하는 학술대회 참여를 위해서였다. 행사를 관통하는 주제는 ‘세계시민교육’. 코로나19로 인해 유럽 전역은 물론 덴마크 국내에서조차 자국 대안교육 관계자들끼리 서로 만나지 못했던 아쉬움을 서로 달래고 있었다.

나는 ‘삶을 위한 교사대학’ 소속으로 그들과 만났다. 대안학교 교사를 양성하고 현직 교육을 실행하기 위해 조직된 작은 협동조합이다. 지난 10여년간 이 단체를 중심으로 이어진 한국-덴마크 사이의 대안교육 교류를 재개하고 지속하기 위한 ‘출장’이기도 했다.

영국 에든버러대학 거트 비에스타 교수의 기조 발제가 귀에 쏙 들어온다. 강연은 최근 그가 저술한 <세계-중심 교육>에 담긴 핵심 내용을 전한다. 비에스타 교수는 유럽 사회가 여전히 ‘민주주의의 위기’를 맞고 있다 바라본다. 멀리는 나치 독재의 홀로코스트부터 최근 영국의 브렉시트에 이르는 사례만 보아도 그렇다. 아직 민주주의는 세계 정치 체계에 안정적으로 자리잡은 제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비에스타 교수는 민주주의와 교육의 관계를 연결하면서 두가지 요인을 강조한다. 하나는 ‘개인의 욕망’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의 성숙함’이다. 한 사람의 시민이 공공의 영역에 관여하려면 어떤 방식으로든 ‘자제력’을 발휘해야 한다. 자신의 욕망이 빠르게 원하는 방식대로 구현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체계 안착은 절로 이뤄지지 않는다.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 내면화되고, 학습되어야 가능하다.

대안학교를 운영하다 보면 어떻게 의사결정을 하고, 어떤 속도로 일을 추진하는 것이 진짜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것인지 정말 잘 모를 때가 많다. 다수결로 밀어붙이지 말라, 소수 의견을 존중하라, 최종 결정에 이르는 과정과 절차를 지켜라…. 이러한 입장을 모두 반영한 결과는 되는 일도, 안 되는 일도 없는 어정쩡한 상태의 지속이다. 민주주의의 역설을 목격하면서 ‘합의 독재체제’에 대한 열망이 스멀스멀 밀려 올라올 때도 있다. 모호함을 견디는 힘이 아직 내게는 부족하다. 민주주의는 늘 위기다. 특히 ‘먹고사니즘’ 논리와 부딪히면 ‘밥 안 먹여주는’ 민주주의 체제가 쉽게 무너져내린다.

작년 2학기 동안 ‘모두를 위한 화장실’ 프로젝트가 추진됐다. 장애인, 성소수자, 여자, 남자가 모두 사용하기 맞춤한 구조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교사회와 학생회는 자신들이 원하는 화장실의 조건과 기능에 관해 토론했다. 교내 성소수자 그룹 역시 이 논의에 참여하여 의견을 냈고, 모두를 위한 화장실 설계가 왜 필요한지 전체 학생이 모인 자리에서 발표했다. 꼬박 한 학기가 지나 일곱칸의 화장실 최종 평면도에 합의할 수 있었다. 방문객이 우리 학교에 와서 본다면 일반의 그것과 다를 것 없는 평범한 화장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 모두를 위해 우리가 논의했던 우리의 화장실이다.

화장실 배치 방식을 논의하다 보니 참여자들이 약간씩 자신의 정체성을 어느 정도 부인해야 합의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한다. 예를 들어 갱년기를 지나고 있어서 화장실에 자주 가야 하는 나는 소변기를 없앤 지금의 설계가 마음에 안 들었다. 그럼에도 ‘중년 남자’의 특성을 앞세우지 않고, 매번 조용히 앉아서 일을 보기로 했다. 나와 비슷하게 ‘정체성 부인’을 겪은 다른 사람들도 있었으리라.

비에스타 교수가 주목한 지점이 바로 여기였다. 개인적 욕망을 좀더 숙고한 형태의 욕망으로 치환하는 작업이 민주주의를 배우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성숙한 방식으로 이 세계 안에서 존재하기 원한다면, 함께 살아가는 다른 인간 존재 안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불러내고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내가 욕망하는 것이 바람직한 욕망인가 아이들이 자문하도록 안내가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세계 중심 교육’의 바탕을 이룬다. 세계가 처한 현실과 정직하게 만날 때 비로소 우리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존재는 방해받으며, 원하는 일이 지연된다. 그 불편함을 계기로 우리는 ‘이야기’가 아니라 ‘대화’를 통해 다른 존재와 소통한다. 세계 안에서 세계와 만나는 교육과정, 미래 사회를 위해 도전해봄직한 매력적인 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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