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MZ세대 갈아버리기, 투쟁!

김남일 입력 2021. 10. 20. 18:16 수정 2021. 10. 20.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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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스타벅스워커스유나이티드 로고

김남일|사회부장

“버펄로 지역 스타벅스 노동자연합 조직위원회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리게 되어 자랑스럽습니다. 케빈 존슨에게 보내는 우리 편지를 보시죠.”

스타벅스를 상징하는 초록색 동그라미 안에 사이렌이 아닌 텀블러(종이컵이 아니다!)를 단단히 움켜쥔 손이 쭉 뻗어 있다. 동그라미에는 ‘스타벅스 워커스 유나이티드’라고 적혔다. 케빈 존슨은 스타벅스 최고경영자다.

“우리 파트너들 모두 회사가 성공하기를 바라며, 우리의 일과 삶도 최상의 것이 되기를 원합니다. 진정한 파트너십을 통해 우리는 회사가 공정선거 원칙에 동의해줄 것을 요청합니다. 이것은 스타벅스 파트너들이 어떠한 두려움과 보복 없이 노조를 세울지 말지 선택하도록 할 것입니다.”

케일라 스터너, 알렉시스 리조 등 미국 뉴욕주 버펄로 지역의 스타벅스 파트너(매장 직원) 49명은 지난 8월 말 연대의 뜻으로 자신들의 실명을 적었다. 이들이 최고경영자에게 서명을 요구한 공정선거 원칙 8개 조항에는 이런 내용이 담겼다. ‘노조를 조직할 권리는 민주주의에 반드시 필요한 기본적 시민권이다. 회사는 어떠한 암묵적, 노골적 위협도 하지 않는다는 데 동의한다. 회사가 매장에 노조 반대 자료를 게시할 경우, 파트너들에게도 노조 찬성 자료를 게시할 동등한 공간을 제공한다.’

산뜻한 초록색 로고와 세련된 굿즈 열풍에 가려졌지만, 미국 스타벅스는 노조 깨기(유니언 버스팅)로 악명 높은 기업이다. 커피콩은 물론 노조도 갈아버린다. 그러니 노조 만들겠다고 나선 엠제트(MZ) 세대 파트너들의 엄중한 요구가 무색하게 합법을 빙자한 사쪽의 탄압, 이로 인한 노사 긴장감은 스팀 꽉 찬 커피머신 같은 상태다. 최근 스타벅스 노동자연합 트위터엔 ‘우리가 노조를 결성하려는 이유’가 잇달아 올라온다. “인력 충원! 바리스타 부족으로 무지막지하게 일해야 한다.” “연공급! 5년 넘게 일해도 어제 입사한 사람보다 몇 센트 더 받는 게 고작이다.”

만성적 인력 부족, 불규칙한 노동시간, 연공급을 거부하는 임금 체계, 병가 쓰기 힘든 관행 등은 스타벅스코리아 파트너들도 마찬가지다. 한국 파트너들이 과중한 업무 개선 등을 요구하는 트럭 시위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앱 ‘블라인드’로 조직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미국 쪽 트위터엔 곧장 ‘한국 파트너들과 함께하겠다. #연대’라는 트위트가 올라왔다.

트위터와 블라인드를 통해 세계 최대 다국적 커피 체인 노동자들이 각자의 나라에서 노조 결성과 트럭 시위를 실행에 옮기고, 국제적 연대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은 혁명의 시대에는 꿈도 꾸지 못한 플랫폼 노동 시대의 역설이다. 다만 그 힘을 노조라는 공개적이고 집단적 형태로 구체화하는 데 쓰거나, 익명의 느슨하면서도 단발적 여론화에 쓰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한국 스타벅스 파트너 3명은 블라인드에서 뜻을 모아, 익명의 다른 파트너들로부터 돈을 모은 뒤, 노동조건 개선 요구안을 담은 전광판 트럭 시위를 조직했다. 효과는 회유와 탄압으로 번지는 미국 쪽 노조 결성 선언보다 즉각적이었다. 스타벅스코리아는 인력 충원과 임금 인상을 약속했다.

앞서 트럭 시위를 조직한 이들은 노조 설립을 돕겠다는 민주노총 제안에 ‘트럭 시위는 노조가 아니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노조 없는 세상을 꿈꾸는 게임 설계자들은 이런 모습이 너무 기특했나 보다. 숟가락 얹어 기어이 무노조 초과이익을 가져가겠다는 의도가 노골적이다. 민주노총 제안을 단칼에 잘랐다며 고소하다는 듯 전하거나, 엠제트 세대 여러 모습 중 하나를 마치 전체인 양 포장해 자신들이 꿈꾸는 반노조·무노조 세상에 통째 갈아 넣으려는 보수언론의 노력은 우습다. 정작 그런 언론사에도 노조는 있어 기자들은 노동강도 완화, 워라밸 필요성을 노조를 빌려 쏟아낸다.

노조를 바로 세워 승리하겠다는 이들이 에스프레소라면, 노조 없이도 승리하겠다는 이들은 아메리카노다. 매장별로 흩어져 있던 파트너들을 공동의 목표 아래 트럭 시위로 불러모은 것은 커피콩과 파트너를 함께 갈아 넣은 사쪽의 무분별한 판촉 이벤트였다. 이벤트는 계속될 것이고 바퀴 달린 전광판을 두번 무서워할 자본은 없다. 노동자는 호소하지만, 노동조합은 요구한다.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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